오피니언 사외칼럼

[최영기 칼럼] 노동개혁, 방법이 문제다

최영기 한림대 객원교수

MZ·경단녀 등 다양한 근로자집단

시간 선택권 확대 차원서 접근하고

노동개혁 핵심 될 연공형 임금 개혁

사회적 기구 만들어 공감대 형성해야





문재인 정부가 지난 5년 동안 방치했던 산업과 노동·교육 개혁이 신정부에서는 국정 과제 우선순위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간사단 회의와 워크숍 등을 통해 경제가 가장 중요하며 만성적인 저성장 기조에서 벗어나 도약적인 성장으로 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산업 구조의 첨단화와 고도화, 노동과 교육 개혁을 강력히 추진하겠다고 했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이나 여성가족부 폐지가 인수위 단계에서 잠시 반짝할 이슈라면 구조 개혁을 통한 새로운 성장 경로의 탐색은 적어도 새 정부의 전반기를 관통하는 정책 기조일 가능성이 높다. 재정을 통한 경기 부양과 일자리 창출이 아니라 구조 개혁을 통한 생산성 향상과 성장 잠재력 확충에 나서야 한다는 것은 2월 한국경제학회가 공식적으로 제시한 처방이기도 하다.

문제는 처방이 아니라 실행이다. 모든 정책 개혁은 기존의 이익 균형을 변경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적 갈등을 수반한다. 설상가상으로 새 정부는 최소 2년간 비대한 야당의 비협조와 비토도 극복해야 한다. 지난 30여 년 역대 정권이 전봇대와 손톱 밑 가시 제거에 실패하고 교육과 노동·복지(연금) 개혁에서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한 이유도 갈등의 벽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만의 문제도 아니다. 수년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펴낸 주요 국가들의 사례 분석은 개혁의 과정 관리(process management)가 성패를 좌우한다는 교훈을 거듭 강조한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난제 중의 난제는 역시 노동 개혁이다. 흔히 영국이나 독일·네덜란드의 성공 사례가 거론되지만 정권이 명운을 걸고 달라붙었다는 점만 같을 뿐 성공 방정식은 서로 달랐다.



노동 개혁은 도약 성장을 위한 필수 코스지만 새 정부의 안정을 위협할 리스크도 크다. 다행히 대선 과정에서 보여준 윤 당선인의 노동에 대한 태도는 비교적 쿨(cool)했다. 특별히 호감을 보이지도 않았지만 적대감도 없는 중립적 태도였다. 주요 정책들도 노사 한쪽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기보다는 다양한 이해관계가 중첩된 것들이다. 근로시간 유연화만 하더라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근로자의 선택권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 역사적으로 스웨덴이나 독일에서 처음 제기될 때 노동시간 유연화는 노동의 인간화와 일·가정 양립 차원의 문제였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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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도 이 문제를 다룰 때 다양한 근로자 집단의 시간 선택권을 확대한다는 관점에서 출발하면 좋겠다. 워라밸에 민감한 MZ세대나 경력단절을 걱정하는 30~40대 여성, 고학력 전문직의 경우 근로시간에 대한 다양한 선택에 충분히 호응할 수 있다. 다만 기업의 자의적인 근로시간 운용에 대한 견제 장치는 있어야 한다. 최소 휴식 시간 보장이나 근로자 대표와의 합의 절차를 명확히 하는 등 법적 보완이 필요할 것이다.

노동시장 개혁의 핵심 고리는 임금 개혁이다. 특히 연공임금 체계의 개편은 폭넓은 사회적 공감대에도 불구하고 실패를 반복한 밀린 숙제와 같다. 연공임금 개혁을 모든 근로자가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세대별 이해가 갈리고 남녀의 입장이 다를 수 있다. 임금과 생산성의 괴리가 커지는 50대 장기 근속자의 경우에도 고용 지위에 따라 계산법은 제각각이다. 기술 변화가 빠르고 노동 이동이 빈번한 디지털 경제에서 장기 근속을 우대하는 연공주의가 모든 근로자에게 유리한 것만도 아니다.

임금과 근로시간 관련 법과 제도를 유연하게 개혁하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지만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여선 안 된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노사 대타협을 시도할 일도 아니다. 사회적 대화를 잘 설계해 노동 개혁이 노동 규범의 다양성과 노사 자율의 폭을 넓혀주는 혁신 정책의 일환이라는 사회적 공감대을 광범위하게 형성하는 것이 먼저다. 일부 노조의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책임을 추궁해야 할 뿐 제도 개혁이 노조 힘 빼기 수단이 돼서도 안 된다.

문 정부의 과잉 노동 정치를 반면교사로 삼아 7월 결정하게 될 내년도 최저임금에 새 정부의 정책 의지가 반영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상률과 업종별 차등 적용 등 일체를 최저임금위원회에 맡겨놓는 게 낫다. 준비 없는 싸움부터 시작하면 노동 개혁은 더욱 힘들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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