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의 왕'은 단순히 학교폭력만을 다루는 작품은 아닙니다. 폭력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다루죠. 세상이 왜 강자와 약자로 나눠지고, 서열화되었으며 폭력이 존재하는가를 다룹니다. 학폭은 그 주제를 다루기 위해 사용한 소재에요.” (탁재영 작가)
“이성과 감성이 동일한 메시지를 가지고 작동하는 게 좋은 작품입니다. ‘돼지의 왕’은 학폭에 대한 감정적 분노, 계급주의 문제에 대한 이성적 접근 둘 모두를 보여줍니다.” (연상호 감독)
관객들에게 학교폭력과 계급사회에 대한 불편한 묘사로 신선한 충격을 안겨 주었던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로 돌아왔다. 원작이 학교폭력이 벌어졌던 과거 학교 속 모습에 초점을 맞췄다면, 드라마는 학교폭력 피해자들이 성인이 된 후 가해자들에게 가하는 복수 스릴러의 외피를 둘렀다.
원작자로 드라마화에 일부 참여했던 연상호 감독과 드라마의 극본을 쓴 탁재영 작가는 지난 29일 인터뷰에서 원작 마니아들의 우려를 잘 알고 있고, 기존 팬들과 신규 팬들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게 신경쓰며 작업했다고 밝혔다. 연 감독은 “제작사는 ‘사이비’를 이미 드라마화한 경력이 있고, 원작은 드라마로 가기엔 내용이 부족해 연쇄살인물로의 시리즈화를 제안했다”며 “탁 작가가 스릴러 구성을 재밌게 만들어 주었고, 원작의 메시지인 계급사회 속에서의 역전현상과 감정들을 잘 담아 줬다”고 말했다.
드라마는 원작의 메시지를 그대로 가져가면서도 주요 배역의 현재 모습에 초점을 맞추며 차별화를 시도했다. 원작의 주인공 황경민(김동욱)과 정종석(김성규)은 각각 학교폭력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운수업체 대표와 형사로 바뀌었다. 여기에 사건을 풀어가는 여형사 강진아(채정안) 캐릭터를 추가했다. 원작과 달리 각색된 요소에 대해 탁 작가는 “원작이 사회드라마 성격이 강했다면, 일반 시청자들이 흥미를 더 느낄 수 있는 스릴러 요소를 접목시키고자 했다”며 “과거를 회상하는 것으로 전개가 이뤄지는 원작과 달리 성인 위주의 이야기로 각색했다”고 밝혔다. 성인 모습을 주로 다룬 것에 대해 연 감독은 “원작 당시에 관객들은 ‘가해자들이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를 많이 궁금해했다”며 “탁 작가가 미래 모습을 넣어보자고 이야기했고, 색다르게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OTT 플랫폼의 개방성과 자율성으로, 작품은 학교폭력과 복수를 매우 수위 높게 묘사한다. 탁 작가는 “자기검열 없이 자유롭게 썼지만, 아역 배우들의 상처가 걱정됐다”며 “그래도 시청자들에게 최대한 솔직한 학교폭력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고, 가해자들이 작품을 본다면 경종을 울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학교폭력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연 감독은 “성과주의를 중히 여기는 사회 풍조가 첫째 문제고, 학생들에게 학교라는 공간이 삶의 전부라 폭력에 쉽게 노출된다는 점이 둘째 문제”라며 “사람 하나의 세계가 너무 하나로만 되어 있다. 현대인들 모두가 여러 세계, 여러 커뮤니티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탁 작가도 “내가 받았던 상처를 서로 이해하고, 공유하고, 도움주는 연대가 필요하다”며 “어떤 연대에서는 또 다른 폭력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으니, 연대와 커뮤니티에 대한 판단도 잘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복수극에 대해서는 둘 다 “온당하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탁 작가는 “시청자들의 카타르시스를 위해 극 초반부에 복수극을 넣은 것”이라며 “이후 전개에서 카타르시스에 대한 배신감과 함께 도덕적 딜레마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연 감독은 ‘돼지의 왕’ ‘창’ ‘사이비' 등 사회적 현상과 메시지를 줄곧 다뤘던 전작들처럼 앞으로의 작품활동도 비슷할 것이라고 전했다.
“요새는 혐오로서 모이게 되는 이데올로기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데올로기의 형성 과정은 다양하지만, 요즘은 혐오로 뭉치고 있는 것 같아요. 그것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관심이 갑니다. 다음 작품에도 자연스럽게 반영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