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차별 통신 조회’ 논란으로 홍역을 치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전담 심사관에 의한 사전·사후적인 통제 절차를 거쳐 인권침해 가능성을 차단하기로 했다. 하지만 문제의 근본 원인으로 꼽혔던 통신 조회가 남발된 이유에 대해서는 별다른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통제 절차의 실효성과 함께 재발 방지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에 의구심이 나온다.
공수처는 1일 통신수사 실태 점검 및 수사자문단 심의를 거쳐 마련한 통신자료 조회 개선안이 이날부터 시행된다고 밝혔다. 개선안에 따르면 공수처가 수사를 목적으로 통신자료를 조회할 경우 통신자료조회 심사관에 의한 사전·사후적인 감독을 받아야 한다. 통신자료조회 심사관은 지난달 13일 공수처 직제개편을 통해 신설돼 인권수사정책관으로 보임된 예상균 검사가 맡는다.
‘단체 카카오톡(카톡방)’에 참여한 다수를 대상으로 일정 횟수 이상의 통신자료를 조회할 필요성이 있는 경우 검사 전결에서 부장검사 전결로 위임전결 권한을 높였다. 인권수사정책관으로부터 통신자료 조회의 필요성과 상당성·적정성 등에 대한 사전심사도 거치도록 했다. 사후적으로는 격월로 열리는 수사자문단 회의에서 통신자료 조회 현황을 정기적으로 보고할 방침이다. 부적정한 통신자료 조회가 발견되면 인권수사정책관이 즉시 공수처장에게 보고해 적정 조치가 이뤄지도록 했다.
법조계에서는 공수처가 개선안을 발표하면서 무차별 통신 조회를 한 이유에 대한 사과와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수처는 올 1월 통신자료 조회 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내부 점검에 착수했다. 동일인에 대한 중복 조회, 단체 대화방 다수 참여자들에 대한 통신자료 조회 등 여러 문제점을 확인했다고 밝히면서도 원인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특히 공수처가 김진욱 공수처장의 ‘황제 조사’ 논란을 비판 보도한 기자를 대상으로 수차례 ‘통신사실확인자료제공 요청 허가(통신영장)’를 청구하는 등 공수처에 반대되는 정치인·언론인·민간인에 대한 사찰 의혹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이다.
검찰 출신의 김종민 변호사는 “공수처는 대책 내지는 개선 방안을 발표하기에 앞서 무차별적인 통신조회가 왜, 어떻게 이뤄졌는지에 대한 원인 규명부터 하는 것이 순서에 맞다”며 “정확한 진단이 빠진 현재의 개선 방안은 지엽적인 대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