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스파라시> 이후 정말 오랜만에 영화 한 편 소개해 드릴까 해요. 88분의 러닝타임 내내 냥글냥글한 고양이들을 스크린 가득 볼 수 있는, 냥덕들에겐 실로 혜자스러운 영화인데요. 바로 지난달 17일 개봉한 따끈따끈한 신작 <고양이들의 아파트>에요. 재건축으로 철거가 결정된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아파트. 이곳에 살고 있는 250여 마리의 고양이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려는 우당탕탕 이사기를 담았어요. 다큐라 무겁고 진지할거라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텐데요. 제가 유심히 봤는데 영화 대부분이 고양이가 밥 먹고 간식 먹는 장면이니 안심해도 괜찮아요. 재건축 아파트 고양이들의 이사 스토리, 그럼 시작해볼게요! (주의! 이 콘텐츠에는 영화 주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고양이들은 모르잖아요. 여기가 헐리는지"
둔촌주공은 1979년 국내 아파트 단일 단지 중 가장 큰 규모인 143개동, 5930가구로 지어졌어요. 어느덧 40년의 세월이 흘러 둔촌주공도 재건축 절차를 밟게 됐는데요. 2018년 철거를 앞두고 주민들이 하나둘 이사를 떠날 무렵, 사람들에겐 걱정거리가 생겼어요. 바로 자신이 밥을 챙겨주던 ‘단지 고양이’는 과연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이었죠.
특히 고양이는 무서우면 지하실 등 어둡고 깊은 곳에 숨는 경우가 많아 건물 철거와 함께 몰살되는 경우가 많대요. 그렇게 되도록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던 주민들과 동물보호운동가가 모임을 만들어 고양이들을 이사시키기로 하는데요. 영화는 그 눈물 겨운 과정을 담고 있어요.
부지 면적 46만㎡에 달하는 둔촌주공에 사는 고양이는 파악된 개체만 무려 250여 마리. 조사된 고양이 중 일부는 입양을 가고, 일부는 구조해서 안전한 옆동네나 피난처로 옮겼어요.(이 과정에서 냥냥펀치에 맞고 피나도록 긁히는 일은 예사) 하지만 아파트가 다 무너지고 흙더미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도 남아있는 고양이들이 있었어요.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다시 돌아온 냥이도 있고요.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죠. 고양이는 영역동물이니까요. 공사 굉음과 낯선 사람들보다도 고양이에겐 익숙한 집을 떠나는 게 더 무서운 일인지도 몰라요.
아파트엔 사람만 사는 게 아니었네
사람을 위해 지어졌지만, 40년이 지난 아파트는 동식물의 터전이 돼 있었어요. 영화에 비친 둔촌주공은 고양이들에겐 정말 천국같은 곳이더라고요. 밥을 챙겨주는 친절한 주민들이 있고 큰 나무와 수풀이 우거져 은신이나 사냥 운동을 하기에도 좋아보였어요. 실제 촬영팀이 영화를 찍을 때에도 고양이들이 사람을 피하지 않고 뛰지도 않는(?) 여유로움을 보여줘 놀랐다는 후문이에요.
영화가 끝을 향해 갈 수록 아파트는 스산한 폐허가 돼 가고, 고양이들은 영문을 모른 채 그 자리에 남아있는 모습이 자주 나와요. 오랜만에 밥을 주러 온 주민을 보고 사람이 그리워 다가와 치대는 모습도 보이고요. 이곳이 무너진다는 것을 모르는 고양이들의 표정이 천진하기만 해서 더 쓸쓸하고 안타까웠어요.
개발은 느는데 동물 이주 정책은 뒷걸음
서울은 물론 지방 도시에도 둔촌주공처럼 노후돼 재건축을 기다리는 아파트가 많아요. 정부에서도 주택 공급을 위해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하겠다는 입장이고요. 하지만 개발 지역에 사는 동물을 안전하게 이주시키는 정책은 오히려 뒷걸음질치고 있어요.
현재 개발 지역의 동물을 구조해야한다는 의무가 담긴 법은 존재하지 않아요. 2019년 서울시에서 자체적으로 규정을 만들어 2020년과 2021년 개발 지역의 동물 구조를 진행했지만, 지구용이 다시 확인한 결과 올해는 고양이 구조 예산이 삭감돼 사업이 멈춰버렸더라고요. 보호 규정이 있어도 별 도움이 안되는 경우도 있어요. 바로 조경수 문제인데요. 수십년을 자란 단지 내 조경수도 극소수의 나무만 보호 규정이 있을 뿐이어서 대부분은 고사하는 신세라고.
동물을 대하는 태도는 한 나라의 품격이라는 말이 있죠. 아파트 빨리 올려야 하는데 고양이가 무슨 상관이냐고 하는 나라와 한 마리의 생명이라도 구하기 위해 시간과 인력을 투입하는 나라. 어떤 나라에 살고 싶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