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기고] 반도체 공급망 위기, 통상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조중휘 인천대 임베디드시스템공학과 교수

공급망 관리가 국가 경쟁력과 직결

주요 강대국 '국가안보 관점'서 관리

산업·기술·실물경제 깊이 이해하고

기업과 유기적 연계로 위기 대응해야





최근 공급망 관리가 국가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자동차를 구매하기 위해서는 출고까지 15개월을 기다려야 된다고 한다. 출고가 늦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차량용 반도체 공급 차질이다. 지난해에 발생한 요소수 부족 사태로 물류 대란을 걱정하던 시기를 모두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중국의 자동차 부품(와이어링 하니스) 공장 가동이 멈춰 국내 완성차 업체가 휴업을 했던 사례도 있다. 바야흐로 공급망 관리가 국가의 경쟁력과 국민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최우선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주요 강대국들은 국가 안보 관점에서 공급망 관리를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산업의 쌀’이라고 불리는 반도체는 각국이 공급망 강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미중 패권 경쟁이 공급망이라는 전장에서 펼쳐지고 있다. 미국은 중국을 반도체 공급망에서 배제하기 위해 미국 기술과 소프트웨어가 포함된 전 세계 첨단 반도체 장비를 중국으로 수출하는 것을 금지한 적도 있다.



미국은 올 3월에 하원을 통과한 경쟁 법안(COMPETES Act)을 통해 반도체 연구·설계에 520억 달러, 제조업·공급망 강화에 45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일본의 새로운 내각이 추진 중인 경제안보추진법에서도 반도체를 포함한 공급망 강화를 첫 번째 과제로 명시하고 있고, 유럽연합(EU)도 반도체 산업 경쟁력 향상을 위한 EU 반도체법 제정을 추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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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선진국들의 글로벌 공급망 구축 경쟁이 격화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 기업들은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하루하루 사활을 걸고 있다. 민관의 긴밀한 소통과 협력이 시급한 지금 한가롭게 조직 개편을 논하는 것은 실익 없는 불필요한 소모전일 뿐이다.

공급망 관리가 곧 국가 안보인 시대에 효율적인 정부 조직은 어떤 형태일까. 업계는 공급망과 관련한 신속하고 효과적인 대응을 위해서는 산업·기술·실물경제에 대한 깊은 이해와 기업과의 유기적인 연계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현재 산업통상자원부 형태가 가장 효과적인 조직이라고 평가한다.

2019년 일본의 반도체 수출규제 당시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고 소재·부품·장비 전반의 대일 의존도 감소의 계기로 만들었던 것은 통상과 산업 조직이 한 부처 내에서 유기적으로 협력한 결과로 봐야 할 것이다. 지난해 미국 정부가 우리 반도체 기업에 기업 영업 비밀을 포함한 자료 제출을 요구했을 때에도 산업통상자원부가 산업 현장의 이해를 바탕으로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간 면담, 한미 상무장관 회담 등을 통해 미국 정부와 협의를 이끌어내 반도체 공급망과 관련된 양국 협력을 강화했다.

통상이 산업과 분리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통상이 외교 영역과 합쳐지게 된다면 공급망과 같은 경제 안보 이슈는 전통적인 외교 영역의 정무적 판단에 밀려 후순위가 될 가능성이 높다. 요소수 사례의 경우에도 당시 주중 대한민국대사관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감지했던 사람은 정무적 외교 업무를 담당하는 외교관이 아니라 산업부에서 파견한 상무관이었다고 한다.

산업과 통상을 담당하는 정부 조직이 나눠질 수도 있다는 최근의 논의를 보면서 현재와 같이 경제가 안보고 안보가 곧 경제인 시대에 우리 산업이 외교 논리에 희생될 우려에 걱정이 앞서지 않을 수 없다. 일 잘하는 정부, 능력 있는 정부를 표방하는 차기 정부에서 현명한 판단을 내릴 것으로 기대한다.

한때 미국을 꺾고 세계 반도체 점유율 1위에 올랐던 일본이 1986년 산업계의 목소리를 등한시하고 ‘미일 반도체 협정을’ 맺은 결과 현재 반도체 제조 변방으로 밀려난 전철을 우리나라는 밟지 말아야 한다.


강해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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