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자나 수화는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장애인들의 고유 언어입니다. 법정 기념일도 존재하지요.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아는 국민은 5%도 채 안 됩니다. 서울에 사는 비장애인이 쓰는 말을 표준어라고 한다면 수화나 점자는 청각 또는 시각장애인들이 쓰는 사투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국내에서 유일하게 수화 공연 활동을 하는 ‘조용한 수다’ 김석휘 대표는 10일 부산 동래구 사무실에서 진행된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수화나 점자는 장애인들의 소통 수단이지 이상한 것이 아니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조용한 수다는 스스로를 음악·무용·뮤지컬 등 공연을 중심으로 예술과 나눔을 융합하는 예술 단체로 규정한다. 2013년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수화 정기 공연에 나선 것이 출발점이다. 2016년에는 자체 강사 풀을 갖춘 교육팀을 만들어 지역 주민을 위한 수화·점자 교육으로 범위를 확대했고 2년 전부터는 음악에까지 발을 넓혔다. 지금은 공연과 음악·교육 등 3개 분과에서 12명의 전문가들이 활동하고 있다.
조용한 수다의 출발은 단순했다. 수화·점자가 공통의 언어라는 점을 비장애인들에게 알려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수화 공연은 그래서 등장했다. 수화 공연은 2020년 코로나19로 중단될 때까지 7년간 주말마다 한번도 쉬지 않고 이어졌다. 횟수로 치면 500회가 넘는다. 김 대표는 “수화를 보면서 아름답다고 생각했다”며 “여기에 예술성을 더하고 흥미와 재미를 입혀 보여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길거리 공연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공연에서 아이돌의 노래를 수화로 개사해 넣은 것도 알림 효과를 좀 더 높이자는 취지였다. 공연만이 아니다. 일상 생활에서도 수화를 알리기 위한 노력은 계속됐다. 그는 “장애인은 119에 신고해도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경찰서에 가서도 제대로 의사 소통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라며 “지금은 지나가다 경찰서에 들러 간단한 수화를 알려주는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화가 대중적으로 많이 노출되고 공연이 나름 성공적으로 이뤄지면서 처음 목표를 달성했다는 게 김 대표의 평가다. 그렇다고 조용한 수다의 활동이 끝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높은 곳을 향하고 있다. 이제는 장애 예술인으로 키우는 것이 새로운 목표가 됐다. 그는 “공연을 장기화하고 전문 예술인들이 합류하면서 질을 더 높여야 한다는 요구가 많아졌다”며 “지금은 장애 예술인들을 많이 배출해 이들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게 새로운 과제”라고 밝혔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해 말부터 시작한 ‘누(누구나)누(누구든지) 프로젝트’. 장애 예술인들을 지원하기 위해 대중 예술인이 협업하는 이 프로젝트를 위해 음악 프로듀서 정용석 씨와 부산에서 가수로 활동하는 박지은 씨(예명 엘로은) 등 전문 예술인이 합류했다. 공연 내용도 달라졌다. 이전에는 기존 가요를 차용했다면 지금은 창작곡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이렇게 탄생한 노래가 벌써 2곡. 모두 시각 장애인이 스스로 연출하고 기획해 만든 곡이다. 김 대표는 “자라나는 예비 장애 예술인에게 ‘너희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라며 “핑계 대지 말고 대중 예술인과 동등하게 경쟁하도록 하면 이들도 언젠가는 당당한 예술인으로 클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연 분야도 달라질 준비를 하고 있다. 수화 공연을 하다 보면 장애인들은 신나 하는데 함께 온 보호자나 지인들은 별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수화 뮤지컬이다. 이를 위해 뮤지컬용 창작곡도 준비하고 있다.
그에게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봉사 활동을 하러 오지만 재능 기부라기보다는 이력서에 경력 한 줄 넣기 위함이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김 대표는 “요즘은 어떤 마음으로 봉사 활동을 하는가 의문이 드는 친구들이 많다. 오히려 실적과 스펙 쌓기로 이용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라며 “재능 기부를 본인 신체의 일부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