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골프 골프일반

오거스타에 내려온 하얀 천사들의 이야기

‘코스에 목례’ 마쓰야마 캐디 이어 올핸 ‘기도하는 캐디’ 스콧 눈길

셰플러 제안에 2주 간 가족과 기도하며 고민, 이후 PGA 4승 합작

10년 넘게 우즈 부상·내리막 지켜본 라카바, 기적의 재기도 함께해

마스터스 우승 확정 순간 스코티 셰플러(오른쪽)의 볼을 매만지는 캐디 테드 스콧. AP연합뉴스마스터스 우승 확정 순간 스코티 셰플러(오른쪽)의 볼을 매만지는 캐디 테드 스콧. AP연합뉴스




올 화이트 점프 수트와 그 위에 새겨진 초록색 선수 이름은 캐디를 원래보다 더 특별한 존재로 보이게 한다. 마스터스가 남긴 캐디 스토리는 그래서 더 특별하게 들린다.



1년 전 마스터스에서는 우승자 마쓰야마 히데키(일본)의 캐디 하야후지 쇼타의 행동이 화제였다. 그는 경기 후 18번 홀 그린에서 티잉 구역쪽으로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었다”는 설명. 평생 못 잊을 추억을 안겨준 오거스타 내셔널 코스(또는 코스에 산다고 믿는 神)에 예를 표한 것이라는 해석이 많았다.

마쓰야마의 학교 후배인 골프 선수 출신 하야후지는 선배와 호흡을 맞춘 뒤 첫 우승으로 아시아 최초의 마스터스 제패 기록을 함께했다.

코스를 향해 목례하는 마쓰야마 히데키의 캐디. 출처=트위터코스를 향해 목례하는 마쓰야마 히데키의 캐디. 출처=트위터



10일 끝난 제86회 마스터스에서는 스코티 셰플러(미국)를 도운 테드 스콧이 조명을 받았다. 셰플러는 스콧을 성경 연구 모임에서 만난 뒤 같이 일하고 싶다고 제안했는데 이미 캐디 은퇴를 생각하고 있던 스콧은 2주일 간이나 가족과 함께 기도로 고민한 뒤 셰플러의 골프 백을 메기로 했다. 둘은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지금도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내 성경 연구 모임에 나가고 있다.

관련기사



우승이 없던 셰플러는 스콧과 함께한 뒤 다섯 번째 대회 만에 첫 우승에 성공했고 이를 시작으로 5개 대회에서 3승을 쌓는 기적을 경험했다. 마스터스를 포함해 6개 대회 4승이다. 셰플러는 단 57일 동안 약 109억 원을 벌었는데 스콧도 셰플러 덕분에 엄청난 돈을 만지게 됐으니 누가 누구의 천사인지 확실하게 말하기 어렵다. 계약마다 다르지만 캐디가 받는 우승 보너스가 보통 상금의 10% 안팎이라는 점에 비추면 스콧은 우승 보너스로만 84만 3600 달러(약 10억 4000만 원)를 받게 된다. 버바 왓슨(미국)의 마스터스 2승에 이어 마스터스에서만 3승을 캐디로 경험했다. 최종 라운드 직전 스콧이 점프 수트의 지퍼를 내려 셰플러에게 보여준 티셔츠에는 이런 글이 있었다. ‘신이 주재하신다(God is in control)’.

기적을 경험한 캐디는 스콧만이 아니다. 타이거 우즈(미국)의 캐디 조 라카바는 목숨을 잃거나 최소한 필드 복귀는 어려울 것이라던 우즈가 멀쩡히 72홀을 완주하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봤다.

우즈는 불같은 캐디로 유명했던 스티브 윌리엄스와 13년을 함께했는데 라카바도 우즈와 함께한 세월이 어느덧 10년을 훌쩍 넘겼다. 프레드 커플스(미국), 더스틴 존슨(미국) 등의 백을 메던 라카바는 2011년부터 우즈 곁을 지키고 있다. 우즈의 ‘절친’인 커플스는 “이제 젊은 사람을 도와줘라”며 자신과 열 두 번의 우승을 합작한 라카바를 놓아줬다고 한다.

올해 마스터스 최종 라운드 후반 홀에서 타이거 우즈(오른쪽)가 캐디 조 라카바와 공략을 상의하고 있다. EPA연합뉴스올해 마스터스 최종 라운드 후반 홀에서 타이거 우즈(오른쪽)가 캐디 조 라카바와 공략을 상의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차량 전복 사고 후 14개월 만의 복귀전을 마친 뒤 캐디 조 라카바(왼쪽)의 손을 잡는 타이거 우즈. 로이터연합뉴스차량 전복 사고 후 14개월 만의 복귀전을 마친 뒤 캐디 조 라카바(왼쪽)의 손을 잡는 타이거 우즈. 로이터연합뉴스


라카바는 한 시대를 풍미한 우즈가 선수 생활의 황혼을 함께할 존재감 없는 캐디로 보였지만 10년이 지났어도 우즈는 여전히 화제의 중심에 서있다. 그리고 라카바는 그의 가장 충직하고 의지할 만한 보좌관으로 소리 없이 빛나고 있다. 윌리엄스와 180도 달리 조용하고 차분하며 신중한 라카바는 비공식 복귀전인 지난해 말 PNC 챔피언십부터 다시 우즈와 같이 코스를 걷고 있다. 지난해 커플스와 패트릭 캔틀레이(미국)의 백을 잠시 메기도 했지만 ‘본캐’는 어디까지나 ‘우즈의 남자’다.

숱한 부상과 곡절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보는 괴로움보다 골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의 곁을 지킨다는 자부심이 더 크다는 라카바. 그는 병상을 박찬 우즈의 프러포즈를 어느 때보다 감사하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우즈는 ‘나는 실전 경험이 부족하고 몸도 아픈 선수지만 가능하면 이런 나와 한 번 더 같이 해줄 수 있느냐’고 예를 다해 부탁했다는 후문이다.


양준호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