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Global What] 내년엔 달러당 150엔 전망도…"셀 재팬 도화선 되나" 초긴장

■경제 '구원 투수'서 '위기 복병' 된 엔저

환율 126엔 넘어 20년만에 최고

주요국 통화중 가장 빠른 상승세

지난 2차례 엔저 분위기와 정반대

원자재값 치솟아 물가난 '부채질'

美금리 인상發 '머니무브' 가능성





지난 수십 년간 일본 경제의 ‘구원투수’ 역할을 해온 ‘엔저’가 이제 위기의 전조 현상이 됐다는 우려가 일본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기업의 해외 생산이 늘면서 환율이 수출 기업의 실적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은 많이 줄어든 반면 에너지와 원자재 가격이 오르는 상황에서 가파른 엔화 약세가 수입 가격을 끌어올리며 서민 물가난을 부채질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미국과의 금리 차이 때문에 일본 자산을 팔아 치우는 ‘셀(sell) 재팬’이 시작될 수 있다는 지적마저 제기된다.



14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엔·달러 환율은 한 달 전 달러당 117엔대에서 이날 125.23엔에 거래되며 약 8엔(6.16%)이나 올라(엔화 가치 하락) 주요국 통화 중 가장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엔·달러 환율은 전날 126엔을 돌파하며 2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40년래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타개하기 위해 공격적인 긴축에 착수한 반면 일본은 완화적 통화정책을 고수하자 환율이 급등하는 것이다.

엔화 약세는 일본에서 재정·통화정책의 손발이 묶일 때마다 정부가 ‘비빌 수 있는’ 언덕이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2000년 이후 겪은 세 차례의 엔저에 모두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BOJ) 현 총재가 관여해왔다. 그가 일본 재무성 관료였던 2002년(1차 엔저)에는 부실채권 처리, 디플레이션 등 현안이 산적한 가운데 구조 개혁을 추진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가 공공투자를 줄이면서 재정정책의 여력이 줄었다. BOJ도 제로금리와 세계 첫 양적완화 도입으로 추가 정책 수단이 마땅치 않았다. 이때 엔저가 유력한 처방전으로 부상하면서 당시 엔·달러 환율은 135엔에 육박했다. 2차 엔저 시기는 구로다의 BOJ 총재 재임 시인 2015년으로 경기 부양을 위한 ‘아베노믹스’와 맞물려 환율이 125.63엔까지 올랐다.



이처럼 지난 20년간 엔화 약세는 일본 경제에서 ‘좋은 현상’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구로다 엔저 3.0’으로 부를 수 있는 지금의 엔저는 경제에 부정적 영향이 더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른바 ‘나쁜 엔저’다. 로이터통신은 “최근의 급격한 엔화 약세는 원자재 비용 상승과 가계 지출 증가로 이어져 경제적 고통이 극명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외식 체인 요시노야의 가와무라 야스타카 사장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식자재를 전 세계에서 수입하기 때문에 지나친 엔화 약세를 환영하지 않는다”며 산업계의 분위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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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 기업이 누려온 긍정적 효과도 줄었다. 로이터는 정부의 최신 데이터를 인용해 일본 제조 기업 생산량의 약 25%가 해외에서 나온다며 이는 10년 전의 17%, 20년 전의 15%에서 크게 오른 수치라고 전했다. 20년 전만 해도 판매 차량의 60%를 국내에서 생산하던 일본 자동차 회사들은 현재 3분의 2를 해외 생산분에 의존한다. 지난해 말 시장 조사 업체 도쿄쇼코가 70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엔저가 사업에 부정적이라는 응답은 30%에 달한 반면 긍정적이라는 대답은 5%에 그쳤다.

문제는 엔저 현상이 더욱 진전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블룸버그는 “시장에서 몇 달 안에 환율이 130엔까지 오를 것이라는 컨센서스가 형성돼 있다”고 전했다. 파이브스타애셋매니지먼트의 이와시게 다쓰히로 애널리스트는 “130엔은 단지 통과점일 뿐이며 내년 3월 말까지 150엔에 달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일각에서는 투자자들이 일본 자산을 팔아 치우는 ‘셀 재팬’ 우려도 나온다. 야마모토 유리 닛케이머니 에디터는 “2015년 당시 환율인 125엔이 뚫렸으니 다음 고비는 2002년의 135엔이 될 것”이라며 “아직 조짐은 보이지 않지만 엔저로 경상적자가 고착되면 국소적인 셀 재팬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미국을 비롯해 세계 주요국들이 앞다퉈 금리를 올리고 있어 투자자들이 일본 주식·채권 등을 팔고 미국 등으로 ‘머니무브’를 단행할 가능성도 있다.

1990년대 ‘미스테 엔’으로 불린 사카키바라 에이스케는 "이제 국민들 사이에서 엔고가 더 플러스로 작용한다는 인식이 정착되고 있다”며 “일본에서도 슬슬 ‘강한 엔화가 국익에 부합한다’는 생각이 대두되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이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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