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여성이 더 분명히 거부해야" 성폭행 무죄 판결에 日민심 폭발

꽃 시위 3주년…가해자 옹호 잇딴 판결에 시위 번져

"시위지속, 성범죄 시효 철폐해야"

지난 11일 성폭력 피해자를 위로하기 위해 일본 도쿄에서 열린 '플라워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꽃을 들고 있다. 주니치신문 캡처지난 11일 성폭력 피해자를 위로하기 위해 일본 도쿄에서 열린 '플라워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꽃을 들고 있다. 주니치신문 캡처




지난 11일 도쿄도를 포함한 일본 전국 31개 도도부현(광역자지단체)과 영국 런던 등지에서 ‘플라워 데모(꽃 시위)' 3주년 행사가 열렸다. 성범죄를 당한 여성에게 법원이 가혹하리만큼 부당한 판결을 내린 것을 계기로 시작된 집회였다.



플라워 데모 촉매제는 지난 2019년 잇따라 나온 법원 판결이었다.

주니치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후쿠오카지방법원은 2019년 3월 준강간 혐의로 기소된 남성 A씨에 무죄를 선고했다,

사건은 이렇다. 일본 후쿠오카현에 사는 20대 여성 B씨는 2017년 2월 스포츠 동아리 모임에 친구와 함께 참석했다. 게임을 해서 지는 사람이 벌칙으로 술을 마시는 게임을 하던 B씨는 자기 주량을 훨씬 초과했다.

B씨는 몸을 가누지 못해 쓰러졌고, 40대 남성 회원 A씨는 B씨를 성폭행했다. 정신을 차린 B씨는 경찰서로 가 자신이 겪은 내용을 전했고, 결국 A씨는 재판에 넘겨졌다.

그러나 재판부가 A씨를 엄벌에 처할 것이라는 B씨의 예상은 빗나갔다.

재판부는 “그동안의 동아리 모임에서 성적인 행위가 자주 이뤄졌기 때문에 A씨는 성관계로 가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B씨가 분명한 거부 의사를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에 성관계를 허용하는 것으로 피고가 잘못 이해할 수 있는 정황이 있었다”며 A씨의 손을 들어줬다.

항거 불능 상태였던 B씨의 사정을 감안하지 않은 판결이라는 비난이 빗발쳤다.



문제는 비판 여론에도 이 같은 판결이 또 다시 나왔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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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 법원의 판결이 나온 지 얼마 안돼 나고야지법 재판부는 친딸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친부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딸이 성관계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항거불능 상태는 아니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시즈오카현에서 비슷한 취지의 판결이 나왔다.

심야에 편의점에 들렀던 여성을 뒤쫓아가 성폭행한 외국인 남성이 무죄를 선고받은 것이다. 재판부의 논리는 경악할 수준이었다.

법원은 “여성이 동의하지 않았음을 남성이 제대로 알아차리기 어려웠다”고 판시했다.

후쿠오카, 나고야, 시즈오카 사례를 포함해 3월 한 달 동안 성폭행 가해자에 대한 무죄 판결 건수는 4건에 이른다.

이에 참다 못한 성폭력 피해자 지원단체 및 인권단체 등 회원들은 같은해 4월 11일 꽃을 들고 거리로 나왔다.

수도 도쿄도와 오사카부에서 시작된 꽃 시위는 이후 일본의 전국 47개 도도부현 전체로 확대됐다.

그나마 다행인 건 4건의 무죄 판결 중 3건은 이후 바로 잡혔다. 2심 재판부는 가해자에게 유죄를 인정, 실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꽃 시위는 멈추지 않고 있다. 성폭행 가해자에 대한 사법부의 처벌 의지가 약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집회 참여자들은 오히려 형법 개정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시위에 참여한 키타하라 미노리씨는 “성행위 동의 연령(현재 13세)의 인상과 성범죄의 시효 철폐를 주요 골자로 하는 형법 개정을 요구하며 시위를 계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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