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잇따라 무대에 오른 국내의 신작 창작뮤지컬 가운데 눈에 띄는 작품들 가운데 ‘쇼맨’과 ‘아몬드’가 있다. ‘아몬드’는 판매량 90만부의 베스트셀러 소설이 원작이란 점에서, ‘쇼맨’은 한정석 작가 등 뮤지컬계 스타 제작진들이 다시 뭉쳤다는 점이 흥밋거리다. 또한 두 작품 모두 각각 선천적 병으로 남들과 다른 감정을 갖게 된 인물, 남을 대신하는 삶을 살다가 스스로를 잃어버린 사람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개인의 정체성’ 문제를 화두로 던지고 있다
‘쇼맨’은 주인공 네불라가 공원에서 우연히 한국계 입양아인 수아가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과거 역정을 사진으로 남겨달라고 부탁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는 과거 고향인 파라디수스에서 독재자의 대역을 연기했던 배우로, 작품은 인생 역정을 주요 장면 중심으로 따라가며 전개된다. 그는 독재자의 모든 것을 그대로 흉내 내면서 자신의 정체성까지 거기에 의탁하며, 대역인 자신에게도 환호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가짜 인생이라도 자신에게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수아 역시 사진가라고 자신을 소개하지만 마트 점원일 뿐인 가짜로, 미국에 입양돼서 동생의 보모 역할을 하며 누군가의 ‘대신’으로 살았던 과거가 있다. 두 사람의 삶을 병치시키며 그들, 더 나아가서는 우리네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이야기하는 전개가 인상적이다.
뮤지컬계의 스타인 한정석 작가, 이선영 작곡가, 박소영 연출 콤비는 ‘여신님이 보고 계셔’, ‘레드북’에 이어 세 번째 협업인 이번 작품에서 ‘개인이 사회 안에서 얼마나 주체성을 지킬 수 있느냐’는 밀도 높은 질문을 던진다. 극의 시작과 함께 나오는 ‘인생은 내 키만큼 깊은 바다 / 파도는 계속 쉼 없이 밀려오는데 / 나는 헤엄칠 줄을 몰라 제자리에 서서 뛰어 오른다’는 노래 가사가 이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음악과 노래는 전면에 나서기보다 전반적 스토리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하며, 배우의 연기력을 효과적으로 부각한다. 다음 달 15일까지 국립정동극장.
‘아몬드’는 선천적으로 남들과 다른 정체성을 갖게 된 주인공을 통해 타인과의 공존, 진정한 공감의 의미를 묻는 작품이다. 주인공 윤재는 뇌 속 편도체가 선천적으로 작아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감정표현불능증(알렉시티미아)를 앓고 있으며, 사람들은 그를 ‘로봇’ 아니면 ‘괴물’이라고 부른다. 윤재는 엄마,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평범하게 살 수 있도록 감정을 학습하지만, 가족들은 불의의 사고로 한순간에 곁을 떠나게 된다. 이후 윤재가 혼자서 학교에 다니면서 ‘깡통’이라 불리는 소년 곤이, 육상선수를 꿈꾸는 소녀 도라 등을 만나며 믿음과 사랑 등을 배우게 되는 과정을 담는다.
지난 2017년 출간된 손원평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2019년부터 창작뮤지컬 공모 프로그램에서 4년간의 개발 과정을 거쳤다. 원작의 장면과 스토리 등 서사를 충실하게 따라가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너무 소설과 똑같이 옮긴 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다. 윤재가 감정적 소용돌이가 몰아치는 여러 사건을 경험하고도 무감각하게 대하는 모습을 소설 속 활자로만 보다가 실제 연기를 통해 눈으로 직접 확인할 때의 느낌이 인상적이다. 작품을 만든 김태형 연출가는 “윤재가 한 명 두 명에게 공감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우리는 감정을 충분히 느끼면서 왜 남의 감정에 온전히 공감하지 못하나 질문하고자 했다”고 설명한다. 다음 달 1일까지 코엑스아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