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해외농장 샀다 5년 안돼 포기"…국가전략 없인 해외진출 농기업 뿌리 못 내린다

[흔들리는 식량주권]

<상>위기의 식량 공급망…백년대계 세워야

작물 편중·농촌 고령화에 '지정학 위기' 겹치며 초비상

곡물 자급률 10%대로 추락 코앞…현지 반입은 쥐꼬리

"ODA 통한 인프라 구축 절실…민관합심 정착률 높여야"








률신화연합뉴스률신화연합뉴스


식량안보 정책의 두 축은 자급률 제고와 식량 공급망의 안정적 확충이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듬해인 2018년 곡물자급률을 21.8%에서 올해까지 27.3%로 끌어올리겠다고 호기롭게 발표했다.

하지만 결과는 21.8%에서 2020년 20.2%로 되레 후퇴했다. 경지면적 감소, 일부 작물에 편중된 기형적 공급과잉, 농촌 인구의 고령화로 구조적인 한계가 뚜렷한 탓이다.



전문가들이 자급률 제고의 한계를 인정하고 우리 기업의 해외 진출을 도와 안정적인 식량 공급망 구축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문제는 식량 공급망의 확충도 여의치 않다는 데 있다. 해외농업개발을 위해 현지에 진출한 우리 기업 206곳(2021년 말 농림축산식품부 기준) 가운데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 곳은 75개사에 불과하다는 조사 자체가 충격적이다. 업계에서는 이런 수치도 과장된 측면이 많다고 말한다. 한 국내 곡물 기업 관계자는 “러시아·중국 등에 나가 농장을 사들인 국내 업체들은 대부분 5년도 안 돼 도중에 포기한다”며 “곡물을 현지에서 들여오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관리 노하우가 없다 보니 국내 업체 간 손바뀜만 잦다”고 꼬집었다. 현대중공업의 연해주 지역 농장을 롯데상사가 인수한 사례(2017년), CJ제일제당의 중국 곡물 가공 사업 철수 사례(2013년) 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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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물자급률이 곧 10%대로 추락할 위기에 놓인 우리 입장에서 더 답답한 것은 악재가 쌓이고 있는 점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 지정학적 위기에 따른 공급망 붕괴와 혼선, 기후변화로 인한 작황 악화 등으로 식량안보가 벼랑 끝에 설 가능성이 크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해외농업개발에 진출한 우리 기업이 확보한 곡물량은 215만 4930톤이다. 이 중 실제 국내로 반입된 곡물량은 63만 3975톤에 그친다. 지난해 우리나라가 수입한 전체 곡물량 1668만 3404톤(관세청 기준)과 비교하면 3.8% 비중이다. 2020년 우리 기업의 수입 곡물량(10만 8846톤)보다 늘었지만 여전히 식량주권을 말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농업정책 연구원은 “우리 기업이 의욕을 가지고 진출하더라도 현지의 농업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지 않고 좋은 인력을 확보하기도 쉽지 않다”며 “현지에서 제대로 정착한 기업이 10개 중 4개도 채 안 되는 현실이 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현지 진출 기업이 설령 반입 규모를 늘리더라도 국내에서 가격 경쟁력을 갖기 어려운 점도 문제”라며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 기업의 현지 개발 면적이 넓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해외농업개발 분야에서 활동하는 우리 기업 한 곳당 평균 개발 면적은 지난해 3924㏊이다. 옥수수를 재배하면 약 2만 3000톤(지난해 수입량의 0.1%)만을 수확할 수 있는 면적이다. 밖으로 나가더라도 꼼꼼한 계획과 비전 없이는 말짱 도루묵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정부도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다. 해외농업개발에 진출했거나 진출하려는 기업에 대한 융자 지원 규모는 2017년 30억 원에서 지난해 68억 7000만 원까지 늘었다. 해외 농업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보다 큰 틀에서 각종 지원 대책을 종합적으로 관리할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곡물자급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 수준인 우리나라로서는 해외로 진출할 지역과 진출 방식, 목표 등을 분명하게 정하고 정부 지원 로드맵도 보다 체계적으로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농업연구소 관계자는 “일본이나 영국처럼 공적개발원조(ODA) 등과 직간접적으로 연계된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해외에서 식량 공급망을 구축하는 방안도 고민해봐야 한다”며 “정부가 전략적 마인드를 갖고 경제 외교에 나서듯 식량 문제도 외교적 차원으로 접근할 여지가 많다”고 조언했다.

임정빈 서울대 농업·자원경제학 교수도 “현지 진출한 기업의 정착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이 함께 현지 조사를 철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인프라 구축 상황 및 다른 기업의 진출 상황 등도 고려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되는지, 어떤 작물을 재배해야 성공률이 높을지 등을 꼼꼼히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관점에서 지금이 식량주권 강화를 위한 마스터플랜을 짜야 할 호기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우리 정부는 해외농업·산림자원개발협력법 제5조에 따라 5년마다 해외농업자원개발에 관한 종합 계획을 수립하는데 2023~2027년 종합 계획 발표가 1년도 안 남았다.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러시아가 이미 우리나라를 포함한 비우호국에 대한 식량 수출을 제한할 수 있다는 위협을 가하고 있는 상황이 아니냐”며 “공급선 다변화와 첨단 기술 접목으로 선진 농업을 강화하지 않으면 식량 위기가 현실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세종=곽윤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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