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꽂이]'남의 떡'이 커 보인다면…행복은 단지 '그림의 떡'

■지적 행복론

리처드 이스털린 지음, 윌북 펴냄

 97세의 '행복경제학' 창시자

"연소득 7만5000달러 넘으면

 행복지수는 더 이상 증가 안해"

 남들과 비교할수록 불행 느껴

 가족·건강에 시간 더 사용하고

 정부는 복지·사회안전망 확충

 삶의 질 높이는 '행복혁명' 제시





‘지금보다 지위와 권한, 연봉이 더 높은 새로운 일자리를 제안 받았다고 하자. 그만큼 야근을 많이 해야 하고 직장이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당신은 이 제안을 받아들일 것인가’



미국의 한 설문조사 질문이다. 제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에 대해 응답자의 각각 3분의 1은 ‘아주 많다’, ‘어느 정도 있다’고 답했다. 나머지는 3분의 1만 ‘별로 없다’고 답했고 ‘거의 없다’는 전무했다. 또 다른 설문조사에서는 본인을 가장 행복하게 했던 것을 물었다. 성생활, 스포츠, 전시회 및 연주회 감상, 술집 및 카페, 아이들과 놀거나 책 읽어주기, 독서, 산책, 휴식 등이 상위권을 휩쓸었다. 대부분 돈이 별로 들지 않거나 전혀 들지 않는 활동이었다. 다만 한 가지가 필요했다. 바로 ‘시간’이다. 요즘 사람들은 돈을 버느라 행복에 필요한 시간을 써버리면서 살고 있는 셈이다.

신간 ‘지적 행복론’은 소득과 행복의 관계를 중심으로 행복한 삶을 위한 개인적, 사회적 조건을 제시한 책이다. 저자는 ‘행복경제학’의 창시자인 리처드 이스털린 미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다. 그는 1974년 ‘소득이 일정 수준에 이른 다음에는 더 이상 행복이 커지지 않는다’는 이른바 ‘이스털린의 역설’을 주장해 경제학에 일대 파란을 일으킨 석학이다. 그는 당시 주류 경제학계가 사람들의 행동을 주로 분석했던 것과 달리 인간의 감정에 주목했다.

올해 97세인 저자는 최근 몇 년 간 대학에서 진행한 행복경제학 강의를 바탕으로 ‘진짜 행복’을 찾기 위한 방안을 할아버지가 손자들에게 말하듯 다정하게 들려준다. 책은 나이와 성별은 물론 환경오염, 종교, 자원봉사, 정치체계 등 사회적 요인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을 두루 살핀다.



그는 원래 경제학은 공공의 행복이 궁극적인 관심사였다고 말한다. 데이비드 리카드, 제임스 밀과 존 스튜어트 밀, 제러미 벤담 등 고전학파들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원리를 고수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탈리아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 이후 경제학은 행복이나 결과에 대한 학문이 아니라 의사 결정과 선택에 관한 학문으로 변질됐다. 인간은 생산 요소로만 치부됐고 행복은 단순히 1인당 공급되는 재화의 양과 직결된다는 관점이 경제학을 지배했다. 현대 주류 경제학은 소득과 경제 성장이 지속된다면 사람들이 행복해질 것으로 믿으면서 국내총생산(GDP)를 절대신처럼 믿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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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이스털린은 “사람들은 물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많을수록 갖고 싶은 것도 함께 많아진다”며 “가정생활과 건강을 희생시켜서 돈이 많으면 더 행복해질 것이라는 기대는 환상에 불과하다”고 단언한다. 국민 복지에 생긴 변화는 GDP보다는 행복이라는 지표가 더 잘 포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1990년부터 2012년까지 브라질 국민들의 행복 수준은 올라간 반면 더 빠른 속도로 1인당 실질 GDP가 상승한 중국은 오히려 삶의 만족도가 하락했다.

물론 저자도 기본적으로 소득이 증가하면 행복 수준도 높아진다고 말한다. 실제 국민이 행복한 나라는 스웨덴·덴마크·핀란드·캐나다·호주 등 부유한 국가들이다. 흔히 국내에서 아시아 빈국 부탄의 행복지수가 높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는 잘못된 상식이다.

다만 저자는 국가간 횡단면 비교 연구가 아니라 한 나라 내부의 시계열 분석을 통해 소득이 낮은 경우 소득이 늘면 행복감도 증가하지만 연 소득이 7만5000달러를 초과하면 행복이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소득이 임계치에 이르면 같은 사회내에서 다른 사람보다 돈을 더 많이 받을 때만 행복감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의 소득이 증가하면 평균적으로 볼 때 아무도 행복해지지 않는다. 행복을 증진하기 위한 처방으로서 소득 증가는 제로섬 게임이다.”

그렇다면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쉽지는 않겠지만 소득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이 정말 갖고 싶은 것에 집중하라고 권고한다. 특히 저자는 “가정 생활과 건강을 위해 시간을 더 많이 쓰라”고 조언한다. 이 두 가지는 다른 사람과 비교 대상이 아니며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이다. 가령 자신이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불치병에 걸렸다고 덜 불행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정부에 대해서는 복지정책과 사회안전망 확충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북유럽 국가들의 행복도가 1인당 GDP가 비슷한 영국, 프랑스, 독일 등보다 높은 이유는 보건, 교육, 보육, 노인 부양, 연금 등에서 공공 서비스의 혜택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어떤 경우에서든 행복의 공통적인 원인은 민주주의, 사회주의 독재 체제 같은 정치 체제가 아니라 국민에게 가장 중요한 경제 상황, 건강, 가정생활을 증진시키는 정책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특히 그는 덴마크는 오늘날 가치로 환산해 GDP가 3000달러 수준이던 1880년대에 복지정책을 도입했다며 사회안전망은 고소득 국가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나아가 저자는 행복혁명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다. 인간은 산업혁명과 인구혁명을 거쳐 이전보다 훨씬 더 나은 생활 여건에 살 수 있게 됐고 이런 조건을 바탕으로 이제는 삶의 질에 눈을 돌릴 때라는 것이다. 1만7800원.


최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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