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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다방] 시대와 성장 엮어낸 은희의 이야기, '벌새'

전 세계 휩쓸었던 벌새 신드롬…

'지금 우리 학교는' 박지후의 장편 데뷔작 '벌새' 리뷰


직접 맛보고 추천하는 향긋한 작품 한 잔! 세상의 OTT 다 보고 싶은 'OTT다방'


벌새, 1초당 90번의 날갯짓으로 벌처럼 공중에서 정지해 꿀을 빨아 먹는 새다. 상징하는 건 사랑, 희망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생명력. '벌새'(감독 김보라)는 세상을 향해 포기하지 않고 날갯짓하는 모든 벌새단을 위한다. 영화는 1994년을 배경으로 90년대 결코 정상적이지 않았음에도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들과 묵묵히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상처에 대해 말하고 있다. 우리 모두가 겪었을 이야기, 혹은 겪지 않아 느껴지는 기시감같은 것까지 영화는 담아낸다.

영화 ‘벌새’ 스틸영화 ‘벌새’ 스틸




분명 주인공 은희의 이름이 익숙한 이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 '벌새'는 김보라 감독의 단편 영화 '리코더 시험'에 등장했던 그 9살 은희의 성장담을 그린다. 영화를 보다 보면 은희의 지극히 개인적인 삶을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마치 내 삶을 전시하는 것 처럼 마음이 아리다. ‘벌새’는 우리 모두를 소녀 은희로 만드는 구체적이지만 포괄적인 이야기다.

■한국 아파트, 중산층, 그 속 수많은 은희들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은희는 늘 사랑받고 싶다. 매일같이 싸우는 부모님에게도 남자친구 지완에게도 관심과 사랑을 원한다. 세상은 그런 은희를 향해 바람을 맞힌다. 살아가기도 바쁜 엄마와 춤바람 난 아빠, 폭력적인 오빠와 사고 치는 언니, 내 연락을 받지 않는 남자친구까지. 은희의 염원은 매번 외면 당한다.

이런 은희의 불안함은 영화의 오프닝에서 함축적으로 드러난다. 학교에 다녀온 은희는 집 앞에서 엄마를 부르짖으며 문을 열어달라 외친다. 굳게 닫힌 문은 고요하고, 그 순간 은희는 엄마의 부재를 느낀다. 이어 무언가 깨달은 아이는 계단을 올라 또 다른 집 앞에 멈춰 선다. 그제서야 열리는 문. 은희가 자신의 집을 찾지 못해 극도로 불안한 장면은 가족 안으로 들어가려는 아이의 심리를 표현한다. 가족 구성원 안에서 은희가 겉돌고 있다는 정서를 부여하는 것. 이후 은희가 들어간 문에서 줌아웃 쇼트로 아파트 전체가 연결된다. 한국의 아파트, 중산층, 그 속 수많은 은희들. 작은 이야기에서 좀 더 보편적이고 커다란 무언가를 말하고자 한다는 의도를 내포한다.

은희는 한문 학원에서 새로 온 선생님, 김영지를 만난다. 그는 은희에게 귀감이자 모범이고 거울이다. '나는 노래방 대신 서울대 간다!' 외치게끔 하는 담임 선생님, 언제나 바쁜 학원 원장님과 달리 영지는 은희를 귀찮은 아이가 아니라 한 명의 인격체로 대한다. 은희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고 공감해주며 아이를 위로한다.

"은희야, 힘들고 우울할 땐 손가락을 봐. 그리고 한 손가락, 한 손가락 움직여. 그럼 참 신비롭게 느껴진다?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은데 손가락은 움직일 수 있어."

극 중 영지 선생님은 "상식만천하 지심능기인" 얼굴을 아는 사람은 천하에 가득하지만 마음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되겠는가, 명심보감 교우편을 칠판에 적는다. 이는 영화를 관통하는 구절이다. 내가 너무 좋다고 말하며 장미꽃까지 쥐여주던 후배가 '그건 지난 학기의 일'이라며 돌아서고, 내 눈이 사슴 같다 말했던 남자친구가 예고 없이 배신 하기도 하며 엄마를 아무리 소리쳐 불러도 당신은 듣지 못 하는 순간까지. 상대를 재단함으로써 안정을 얻기엔 은희는 너무 많은 것을 알지 못한다.





■영화 곳곳에서 드러나는 상징들

영화에서 절친 관계인 은희와 지숙의 다툼씬은 은희의 불안함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싸움의 발단은 두사람이 문방구에서 도둑질을 하다 주인에게 들켜버린 것. 지숙이는 두려움에 은희를 고자질하고 그렇게 두사람 사이는 금이 간다. 영화는 은희의 마음이 평안한 순간, 그러니까 남자친구와 함께 걷거나 친구와 트램펄린을 타는 순간은 마치 꿈을 꾸듯 화사하게 표현한다. 반대로 은희와 지숙이 다투는 장면은 높은 색온도로 화면이 푸른 빛을 띄며 차가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나아가, 장면을 핸드 헬드 기법으로 촬영함으로써 은희가 느끼는 불안함과 격한 감정을 배가시킨다.

은희와 지숙이의 위치에서는 둘의 관계성을 짐작할 수 있다. 사과를 받아야 하는 은희가 계단 아래에, 잘못을 한 지숙이가 되려 계단 위에 서 있다. 이로써 사과하라고 소리치는 은희가 을의 입장이 된다. 친구를 붙잡고 싶고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이 관계에 더 마음을 쏟는 사람은 은희라는 걸 알 수 있다. 두 인물의 위치는 이 갑을 관계를 간접적으로 표현한다. 은희는 애초에 친구의 '뒤'를 쫓아 올라간다. 둘의 말다툼이 끝나고 친구는 계단을 올라 아예 시야에서 사라져버린다. 은희는 그런 친구를 바라보며 계단 아래 머무른다. 상대적으로 위 그리고 앞에 위치한 지숙이와 아래, 뒤에 위치한 은희를 통해 관계의 아이러니를 느낄 수 있다.



은희의 귀 아래 ‘혹’은 아이가 지닌 내면의 고통을 의미한다. 은희가 남자친구와 행복한 시간을 보낼 때, 혹은 그때부터 점점 자라나기 시작한다. 은희는 혹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함을 온전히 혼자 견뎌야 했다. 은희는 오빠처럼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는 딸이 아니다. 그렇다고 언니처럼 일탈을 일삼으며 쾌락을 즐기지도 않는다. 그 속에서 은희는 갑갑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고 귀밑 혹은 아이의 이런 불편한 현재를 의미한다. 결국 은희를 불편하게 했던 혹은 제거를 해야 할 정도로 자라났고 수술이 진행된다. 그럼에도 은희에게 드라마틱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되려 믿었던 후배가 떠나가고 아버지는 여전히 강압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는 1994년이 되어도 사회는 여전히 물질의 가치가 우선시 되고 가부장적 태도와 권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한계를 보여준다. 은희가 한참 후 소파 밑에서 깨진 유리 조각을 발견했던 것처럼 은희의 귀 아래 흉터 또한 아이에게 옅은 흉터로 늘 남아있다.

1994년, TV에는 월드컵 축구 개막 소식과 김일성 사망 소식으로 시끄럽다. 뒤숭숭한 사회 분위기와 그럼에도 살아갔던 사람들, 당연하게 여겨졌을 비정상적인 것들에 대해 영화는 말하고 있다. 은희와 지숙은 서로의 오빠에게 당한 폭력을 무용담처럼 공유한다. 이때 영화는 어떤 카메라 움직임도 사용하지 않고 두 사람을 담담하게 담아낸다. 오빠가 은희에게 폭력을 행사할 때 역시 카메라는 한 발짝 뒤로 물러나 그저 가만히 장면을 보여준다. 어떤 과장도, 어떤 움직임도 없기에 폭력은 더 아프게 느껴진다.

1994년 10월 21일, 검은색 바탕에 흰 글씨가 떠오른다. 성수대교가 무너진 그날, 은희를 비롯해 모든 이의 마음이 무너져내렸다. 역사적 사건은 우리의 몸과 마음에 트라우마로 남는다. 은희의 몸에도 은희 언니의 마음에도 잊히지 않는 상처로 남는다.

영화의 후반부에는 은희네 가족이 식탁에 모여 앉아 함께 밥을 먹는 장면이 그려진다. 영화에서 밥을 먹는 엔딩은 '그럼에도 다시 살아간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시대가 우리를 쓰러뜨리고 마음에 생채기를 낼지라도 그렇게 힘을 내 살아간다. 영지 선생님은 말한다.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한다,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 살아갈 힘을 잃어버린 것 같아도 그 속에 맺게 되는 인연에 다시 힘을 얻어 일어난다. 세상을 향한 수없는 날갯짓과 포기하지 않는 생명력이 우리 삶을 더 빛나게 만든다.

◆시식평- 세상 모든 은희에게 바치는 감독의 편지



전세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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