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28일. 삼성가(家)는 고(故) 이건희(1942~2020) 삼성 회장의 평생을 두고 수집한 미술품·문화재 2만3000여점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전국 각지의 공립미술관 등에 기증함으로써 ‘재산 사회환원’의 약속을 지켰다. ‘세기의 기증’은 각 미술관·박물관의 전시로 이어졌고, 이른바 ‘이건희 컬렉션 신드롬’을 일으키며 31만 2000명을 전시장으로 끌어모았다. 코로나19로 인한 관람인원 제한 때문에 예매 경쟁은 대학 수강신청을 방불케 했고, 무료전시임에도 암표가 성행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이건희컬렉션 관람의 경제효과 분석’ 보고서를 통해 연간 예상 방문객 310만명, 경제 유발 효과 약 3500억원을 내다봤다.
[표] 이건희 회장 기증전 관람객 수 (자료출처:각 기관)
기관명 | 전시기간 | 관람객(명) |
국립중앙박물관 | 2개월 | 2만3000 |
국립현대미술관 | 9개월~ | 13만2000 |
전남도립미술관 | 2개월 | 3만 |
대구미술관 | 2개월 | 4만 |
광주시립미술관 | 1.5개월 | 1만4000 |
양구 박수근미술관 | 5개월 | 2만2000 |
서귀포 이중섭미술관 | 6개월 | 5만5000 |
관람객 총계 | 31만6000 |
벌써 1년이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은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를 기획해 28일부터 8월 28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개최한다. 청동기부터 도자기, 목가구, 조각, 서화, 유화 등 총 295건 355점이 공개됐다. 이 중 국가지정문화재만 33점이다. 겸재 정선이 그린 ‘인왕제색도’(국보)를 비롯해 김홍도의 말년작 ‘추성부도’(보물), 14세기 고려 불화 ‘천수관음보살도’(보물) 등을 만날 수 있다.
이건희 회장이 극진히 아껴 자택에 걸어두기도 했다는 인상파 거장 클로드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이 기증 이후 최초로 공개됐다. 모네가 자택이 있는 지베르니의 정원 연못을 그린 것으로, 기증 직후인 지난해 5월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비슷한 크기·시기의 작품이 약 800억원에 낙찰돼 화제를 더했다. 만년의 모네가 오직 수련과 물 표면의 변화에만 집중해 대상을 모호하게 표현한 것이 추상화의 출현을 예고한 것이라 더욱 중요하게 평가받는 작품이다.
‘저의 집을 소개합니다’는 제목으로 꾸며진 전시 1부는 컬렉터의 집을 상상하게 만든다. 권진규의 테라코타 ‘문’을 지나, 임옥상의 부조회화 ‘김씨 연대기’ 속 친숙한 한옥을 마주하는 식이다. 좁은 집에 벌거벗은 가족들이 모여 앉은 장욱진의 ‘가족’, 숭고한 사랑을 보여주는 김정숙의 돌조각 ‘키스’가 눈길을 끈다. 석물 동자상을 배치해 정원처럼 꾸몄는가 하면, 소반과 청화백자로 운치있는 찻상을 펼쳐놓았다.
최초로 공개되는 정약용(1762~1836)의 ‘정효자전(鄭孝子傳)’과 ‘정부인전(鄭婦人傳)’도 챙겨봐야 한다. 전남 강진에서 유배 중이던 정약용이 마을사람 정여주의 부탁을 받아 써 준 글이다. 그의 일찍 죽은 아들과 홀로 남은 며느리의 안타까운 사연도 처음 밝혀졌다.
고미술과 현대미술이 조우해 이루는 한국적 정서도 느낄 수 있다. 18세기 ‘백자 달항아리’와 김환기의 1950년대 ‘작품’은 김환기의 추상 회화가 전통 문화와 자연에 대한 향수에서 출발했음을 한 눈에 보여준다. 제1부 중간에 작은 정원을 연출해 ‘동자석’을 전시하고, 마지막에는 프랑스 인상주의의 거장 클로드 모네가 만년에 그린 ‘수련이 있는 연못’을 국내 최초로 전시한다.
고미술과 현대미술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며 한국적 정서를 드러내는 것이 이번 전시의 특징으로 꼽힌다. 18세기 ‘백자 달항아리’와 김환기의 1950년대 ‘작품’은 김환기의 추상 회화가 전통 문화와 자연에 대한 향수에서 출발했음을 한눈에 보여준다. 19세기 책가도 병풍과 이를 현실로 끄집어낸 듯 백자청화 문방구와 칠보무늬 접시, 나전상자와 연적 등을 배치한 것은 전시의 백미다. 우리 전통문화가 현대적이라 할 법한 세련미를 품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반복 관람을 뜻하는 ‘N차관람’이 예상된다. 일부 작품이 교체전시되기 때문이다. ‘인왕제색도’와 ‘추성부도’는 빛에 쉽게 손상되는 고서화라 한 달 동안만 전시되고 이후 박대성의 ‘불국설경’, 이경승의 ‘나비’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14세기 고려불화도 첫 2개월간은 ‘수월관음도’가, 다음 2개월은 보물 ‘천수관음보살도’가 전시된다.
전국 각지 미술관에서 기증작을 모아 한 곳에서 볼 수 있다는 점도 이 전시의 매력이다. 김환기의 ‘26-Ⅰ-68’(광주시립미술관), 이인성의 ‘노란 옷을 입은 여인’(대구미술관), 유영국의 ‘무제’와 천경자의 ‘만선’(전남도립미술관), 박수근의 ‘한일’(박수근미술관), 이중섭의 ‘현해탄’(이중섭미술관) 등 한국 근대미술사의 주요 작품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생전 이건희 회장은 “전통문화의 우수성만 되뇐다고 해서 우리 문화의 정체성이 확립되는 것은 아니다. 보통 사람들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상이 정말 ‘한국적’이라고 느낄 수 있을 때 문화적인 경쟁력이 생긴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번 특별전이 열리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