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美日中 겹악재에 원화 '날개없는 추락'…환율, 금융위기 수준 위협

[원·달러 환율 1270원 돌파]

높은 中 의존도 리스크-中봉쇄 직격탄…위안화 동조 현상도

美 '자이언트 스텝' 우려-공격적 긴축 행보에 强달러 이어져

정부 방어카드 마땅찮아-미리 금리인상…관찰대상국도 제약

서학개미 열풍 부담-해외투자 늘며 달러화 수요 급증

원·달러 환율이 장중 1270.10원까지 오르면서 최고치를 나타낸 28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를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원·달러 환율이 장중 1270.10원까지 오르면서 최고치를 나타낸 28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를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달러화 대비 원화 가치가 한 달도 안 돼 무려 60원 넘게 떨어졌다. ‘날개 없는 추락’이란 표현이 나올 만한 상황이다. 미국의 초긴축 행보에 우리 경제의 지나친 중국 의존, 일본 중앙은행의 통화 완화 기조 유지, ‘서학 개미’로 대변되는 해외 주식 투자 증가 등이 동시 다발로 맞물리면서 원화 가치를 끌어내리고 있다.



갑갑한 것은 선제적 금리 인상과 환율 관찰 대상국 지위 등을 감안할 때 우리 정부의 대응 카드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원·달러 환율의 1300원 돌파 가능성까지 열어 두고 있다.

먼저 달러화 대비 원화 가치가 연일 가파른 하향 곡선을 그리는 데는 미국이 빠르게 속도를 높이는 통화 긴축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다음 달 3~4일(현지 시간)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0%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을 기정사실화한 데 이어 6월에는 0.75%포인트씩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을 밟을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리는 상태다. 김승혁 NH선물 연구원은 “연준의 자이언트 스텝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데 유럽과 중국·일본 모두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고수하면서 달러 강세 흐름이 더 뚜렷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 인덱스는 28일 103 선까지 올랐다. 이는 2017년 1월 이후 최고치다. 미국이 공격적인




통화 긴축 속에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로 대외 불확실성이 커져 투자자들의 안전 자산 선호 현상이 커지고 있는 것도 한몫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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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경제의 지나친 중국 의존도도 원화 약세에 기름을 붓고 있다. 중국이 오미크론의 확산을 막기 위해 상하이와 베이징 등 주요 대도시에 대한 봉쇄 조치에 나서면서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올해 중국 경제가 5% 성장도 어려울 경우 우리 경제에 후폭풍은 불가피하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 원화가 위안화 움직임을 따라가는 동조화 현상마저 두드러지고 있다.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은 “대중 의존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중국 경기 둔화에 따른 달러 강세기에 통화 가치의 절하 폭이 상대적으로 더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원화 가치가 다른 통화보다 더 심하게 떨어진 것은 경제 구조상 해외 원자재와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은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우리나라의 대(對)중국 교역 의존도는 24.6%로 신흥국 평균(13.3%)보다 두 배 가까이 높다.

우리와 수출 경쟁 관계인 일본의 엔화 가치가 연일 급락하는 점도 악재다. 일본은행이 이날 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하고 금융 완화 정책을 유지하기로 결정하자 엔화 가치는 2002년 4월 이후 20년 만에 달러당 130엔마저 돌파했다. 강삼모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의 수출 경쟁국인 일본의 가파른 엔저가 한국의 무역수지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시장에 미리 반영된 측면도 있다”고 진단했다. 한마디로 미국·일본·중국의 움직임 자체가 원화 가치 절하를 유인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는 진단이다.

특히 ‘서학 개미 열풍’이라 불릴 정도로 국내 투자자들이 최근 해외 주식 투자를 늘려가는 것도 부담을 키우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해외 주식 순매수 금액은 219억 달러 규모로 2년 전보다 9배 가까이 늘었다.

원화 가치 하락 요인은 차고 넘치지만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정작 정부가 쓸 수 있는 수단은 마땅치 않다. 유럽중앙은행이나 일본은행이 아직 제로 금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과 달리 우리는 지난해 8월부터 4차례에 걸쳐 금리를 미리 올렸다. 여기에 가계 부채가 1862조 원에 이르고, 기업들은 원자재 가격 급등에 채산성이 악화돼 한국은행도 추가 금리 인상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날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필요하면 시장 개입에 나설 것임을 시사했지만 시장에서 약발은 전혀 없었다. 백석현 신한은행 연구원은 “미국의 자이언트 스텝과 중국의 봉쇄 조치가 장기화되는 시나리오가 현실화하면 환율이 1300원을 넘어설 수도 있다”고 짚었다.


김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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