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전역 후 윤지성의 삶은 쉴 틈이 없었다. 하루빨리 팬들과 만나고 싶어 팬미팅을 마련했고, 활동 영역을 넓혀 드라마·뮤지컬에서도 활약했다. 말 그대로 앞만 보고 달렸다. 하지만 뿌듯하기만 할 것 같은 1년이 허무하게 느껴지는 순간 무너졌다. 그는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며 깨달았던 것을 새 앨범에 고스란히 녹여냈다.
윤지성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담긴 세 번째 미니앨범 ‘미로(薇路)’는 중의적인 의미다. 한자로 장미 미(薇), 길 로(路)를 사용해 “(장미) 꽃길로 가자”는 의미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길을 뜻하는 미로(迷路)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됐다.
“우리 삶이 복잡하고 답도 없는 것 같고 미로 속에 갇혀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당신이 밟고 있던 땅은 미로(迷路)가 아닌 미로(薇路)였다’는 의미예요. ‘우리는 함께 꽃밭을 걷고 있던 거야.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항상 길을 알려줄게. 나의 길은 네가 알려줘’라는 마음으로 앨범을 작업하게 됐어요.”
이번 컴백은 딱 1년 만이다. 앨범 공백기가 걸어진 탓에 괜스레 긴장도 됐다. 지난해에 이어 봄에 컴백하면서 ‘일부러 봄을 노린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지만 의도한 것은 아니다. 시기가 잘 맞물렸다는 그는 “지난해에는 ‘지성이면 감성’을 밀었는데 올해는 ‘스프링돌’을 밀고 싶다. 봄의 아이돌을 한 번 노려보고자 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타이틀곡 ‘블룸(BLOOM)’ 이른바 윤지성의 입봉곡이다. 데뷔 후 처음으로 작사·작곡 참여한 곡인 것. 이번 앨범을 위해 작업한 것은 아니고, 군 복무를 하면서 만들어 뒀다. 작곡 경험이 없었지만 휴대폰에 목소리로 녹음을 하고 피아노를 치는 친구에게 전달했다. 그렇게 악기가 입혀진 파일을 작곡가에게 다시 전달해 편곡하는 과정을 거쳤다.
“제가 비트 같은 걸 미리 받아 놓은 상태에서 멜로디 작업을 했으면 좀 더 거기에 맞게 잘 나왔을 것 같긴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목소리로만 작업하다 보니 조금 더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었어요. 한 번에 마음에 들지는 않겠지만 전 팬들에게 보컬적인 면이든 퍼포먼스든 작사, 작곡 등에서 항상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드려야 하는 직업을 가졌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만큼 제가 가수라는 직업에 대해 열의를 갖고 있고 도전 의식이 있기 때문이죠. 어떻게 보면 이 앨범이 그런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완성도보다는 ‘저는 앞으로 이렇게 작업을 할 예정이고, 이번에는 이렇게 준비를 했으니 제 입봉작 예쁘게 봐주세요’라는 느낌이요.”
콘셉트 구상도 오래전부터 하고 있던 것이다. 팬덤명 후보기도 했던 ‘미로’는 지난해에 이미 앨범에 쓰기로 결정했다. 원래 타이틀곡 제목을 ‘미로’로 정해놓고 작업을 시작을 했는데, 곡 작업을 하다 보니 담고 싶은 내용이 많아져 앨범명으로 하게 됐다.
“팬덤명 후보가 ‘미로’ ‘동화’ ‘밥알’ 이렇게 세 개 후보가 있었는데 제가 밥알로 픽하게 됐죠. ‘동화’와 ‘미로’는 제가 노래로 잘 풀어보겠다고 약속했었고요. ‘동화’는 제가 군 입대하면서 팬송 제목으로 했고, 그다음에 ‘미로’라는 콘셉트에 맞춰서 앨범 곡 구상을 한 거예요.”
앨범 작업에 참여한 아티스트들도 눈에 띈다. 그룹 워너원 활동을 함께한 에이비식스(AB6IX) 이대휘가 수록곡 ‘서머 드라이브(SUMMER DRIVE)’ 작사·작곡을 했다. 여기에 ‘프로듀스 101’에 이어 드라마 ‘너의 밤이 되어줄게’에서 인연을 맺은 그룹 뉴이스트 출신 김종현이 피처링했다.
“앨범에서 환기를 시켜줄 곡이 정말 필요했는데 가이드 곡을 아무리 찾아봐도 없더라고요. 저의 이야기를 많이 담기 시작하면서 저를 잘 아는 작곡가님들의 도움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저를 잘 아는 대휘가 곡을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대휘에게 전화해서 맡겨놓은 것처럼 ‘곡 좀 줘’라고 했더니 선뜻 3~4곡을 주더라고요. 그중 ‘서머 드라이브’가 정말 좋았고요.”
“대휘가 랩까지 해서 가이드를 보내줬는데 자꾸 종현이 목소리가 들리더라고요. ‘이건 종현이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확 들어서 바로 종현이에게 전화했어요. 종현이가 정말 고맙게도 바로 수락해 줬죠.”
‘서머 드라이브’는 제목처럼 여름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청량한 댄스 곡이다. 윤지성이 특별히 이대휘에게 “너만이 할 수 있는 힙하고 MZ세대 같은 댄스곡이 팔요하다”고 주문한 결과다. 윤지성이 이대휘와 함께 작사해 더욱 뜻깊다.
“가사에 우리의 추억이 담겼어요. 워너원 활동 당시 대휘, (김)재환이와 함께 샌프란시스코 금문교를 간 적이 있거든요. 막내인 대휘가 영어를 잘 하니까 음식 주문도 다 해주고 덕분에 즐겁게 지낸 기억이 있어요. 원래 가사는 ‘열심히 달려보자’ 이런 식이었는데 제가 그걸 바꿔서 ‘금문교를 달리자’로 바꿨어요.”
앨범 수록곡의 공통점은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이지 리스닝(easy listening) 곡이라는 것. 윤지성이 추구하는 음악 스타일이다. 방대한 세계관이나 앨범 사이 연결성도 없다. 단지 편안하게 산책하는 길이나 친구를 만나러 갈 때 들을 수 있는, 항상 곁에 있는 음악을 하고 싶은 마음이다.
“제 앨범 수록곡도 들어보시면 진짜 좋은 곡들이 많거든요. 이런 점들을 많이 보여드리면 나중에 제가 활동한 지 오래됐을 때나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때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을 남긴 가수로 기억이 되지 않을까요?”(웃음)[인터뷰②]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