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생산성 등 지표에서 일본은 이미 한국에 추월 당했다. 가장 기본적 지표인 1인당 국내총생산(GDP)까지 밀린다면 일본은 경제적 풍요를 나타내는 거의 모든 수치에서 한국에 뒤지게 된다. 동시에 선진 주요 7개국(G7) 중 가장 가난한 나라로 추락하게 된다.”
일본 원로 경제석학인 노구치 유키오 국립 히토쓰바시대학 명예교수가 또 다시 일본 정치권과 경제계에 직격탄을 날렸다.
노구치 교수는 지난해 말부터 "20년 후 일본의 1인당 GDP는 한국에 2배 이상 뒤질 것", "G7 회원국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바뀌어도 일본은 할 말이 없을 것", "일본의 반도체 메이커는 현재로서는 절대 삼성을 따라갈 수 없다"는 등의 뼈 있는 분석을 내놓으며 자국 경제 정책을 비판해왔다.
그런 그가 또 다시 경고를 날린 이유는 일본 정부의 잘못된 경제정책으로 엔화 하락 추세가 꺾이지 않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일본 경제가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마저 사라지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구치 교수는 지난 24일 일본 경제매체 겐다이비즈니스에 기고한 ‘마침내 도래! 1달러 135엔이 되면 일본은 한국·이탈리아보다도 가난한 나라가 된다’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엔저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당국이 금융정책을 근본적으로 전환할 때”라며 이 같이 전망했다.
일본 엔화는 1달러당 128엔대로, 20여년 만에 130엔대를 바라보고 있다. 연초 110엔 수준과 비교하면 주요국 통화 중 가장 가파른 평가절하가 나타났다.
노구치 교수는 그 이유를 “미국이 금융완화의 종료를 서두르고 여타 국가들도 이에 대응해 필사적으로 금리를 올리고 있는 상황에서 유독 일본은행 만큼은 금리 상승을 억누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일본 정부가 금리 인상으로 인한 가계, 기업의 부담을 고려해 유동성을 회수하지 않으면서 엔저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지금은 엔저로 인한 수출 증대 등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오히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원자재 가격이 급격히 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엔저는 경제에 부작용만을 낳고 있다.
엔화의 가치가 하락하면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 원자재를 사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물가상승-경기 침체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노구치 교수는 “우크라이나 사태 때문에 원유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이 가파르게 올랐고, 그것이 국내 소비자 물가를 더욱 높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판국에 엔화 가치가 더 떨어지면 엔화를 기준 가격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1달러당 130엔대에 접어들면 중대한 국면이 나타날 것”이라며 “지난해 일본의 1인당 GDP는 한국보다 15.7% 높았다. 그러나 올들어 엔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이달 12일 환율로 계산하면 한국과의 격차는 석달 반 사이에 7.2%로 줄어들었다. 대만과의 격차도 같은 기간 21.9%에서 9.1%로 축소됐다”고 짚었다.
그는 한국의 달러 환율이 현 수준을 유지한다는 것을 전제로 “1달러당 135엔이 되면 국제통화기금(IMF) 전망치 기준 일본의 올해 1인당 GDP는 3만4073달러로 줄어들면서 한국(3만 4189달러), 이탈리아(3만4356달러)에 뒤지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정책에서 한시라도 빨리 탈피해 엔저 악순환을 막을 필요가 있다”며 “일본은행이 ‘통화가치 안정’이라는 중앙은행 본연의 사명으로 돌아가 금리 억제책으로부터의 전환을 밝힌다면 사태는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필요시 당국이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