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인터뷰]'서울대 10개 만들기' 김종영 경희대 교수 "경기 남·북부에 세계적 수준 대학 만들자”

"韓 교육지옥, 대학 병목 현상에 기인해"

"서열화 완전 해소 못하더라도 완화효과"

"세계적 대학 없인 지방시대도 성공 못해"

"대책 없는 완벽주의보다는 시작부터"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남·북부에 각각 스탠퍼드와 UC버클리가 있듯, 서울을 중심으로 경기도 남·북부에도 세계적인 수준의 대학을 만들어야 합니다.”

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을 ‘교육 지옥’으로부터 해방시키는 방법으로 지역 거점 국립대 9곳의 서울대 화(化)를 제안한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저자다. 그는 지역 국립대에 서울대만큼의 예산을 쏟아 연구중심 대학으로 길러낸다면 교육 지옥의 근원인 ‘대학 서열 체제’를 타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10여년 간 제안됐지만 결국 이뤄지지 못한 ‘대학통합네트워크론’에 세계적으로 성공한 대학체제로 평가받는 미국 캘리포니아대학(UC) 모델을 접목시켰다. 이러한 방안은 교육계에서도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런 김 교수가 이번엔 서울대 10곳뿐 아니라 경기도에 세계적인 대학 2곳을 더 만들라고 제안했다. 6월 1일 지방선거 최대 격전지로 떠오른 경기도 도지사에 도전한 후보들을 향해서다. 그는 “경기도 인구가 1400만 명이 되지만 소위 명문 대학은 없고 모두 서울에 몰려있다"며 "경기도 내 우수 대학 육성은 수도권 내 불균형을 해소하고 반도체 등 지역 산업과 시너지 효과를 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최대 광역자치단체인 경기도의 움직임이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촉진하는 파급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지난달 28일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에서 김 교수를 만나 ‘서울대 10개 만들기’ 구상을 비롯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가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서울대 10개 만들기’ 구상을 설명하고 있다. 신중섭 기자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가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서울대 10개 만들기’ 구상을 설명하고 있다. 신중섭 기자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한국 교육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나.

"한국의 교육 지옥은 대학 서열화와 병목현상 때문에 발생한다.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로 향하는 고속도로가 하나밖에 없는데 여기에 학생들이 몰리는 것이다. 이런 고속도로를 10개로 만들어주면 병목 현상이 해소될 수 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교육 지옥에서의 해방 외에도 여러 가지 문제를 풀 수 있는 신의 한 수다. 국토 균형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고 지식경제·사회 속에서 4차산업혁명을 선도하는 전진기지로서의 기능도 할 수 있다. 아울러 많은 청년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대학의 접근성, 공공성을 높이는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지역에 명문대를 육성하는 것이 지역 사회 발전을 이끌 수 있다는 소리로 들린다.

"윤석열 정부에서 지방 시대를 선언했는데, 노무현 정부에서도 선언했고 어느 정부건 다 선언했다. 그런데 다 실패했다. 왜일까. 지역혁신체제(RIS) 연구의 기원은 매사추세츠공대(MIT)였고 가장 성공적인 케이스는 실리콘 밸리와 스탠퍼드대다. RIS가 성공하기 위해선 7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세계적인 대학의 존재, 대규모 연구개발(R&D)투자, 비즈니스 환경, 법적 환경, 인적자본, 정치적 리더십, 높은 삶의 질 등이다.

우리나라가 실패한 근본적인 이유는 지역에 세계적인 대학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지역에 내려가려면 세계적인 대학이 있어야 한다. 대학은 인적 자원, 자녀 교육, 삶의 질 등 여러 요소를 충족시킨다. 고속도로 뚫고 철도를 깐다고 안 된다. 단순히 KTX가 간다고 해서 그 지역이 살아났는가. 통계적으로도 인재를 끌어모을 수 있는 지역은 무조건 발전한다. 실리콘 밸리도 옛날에는 농촌이었지만 지금은 가장 비싼 부동산 가운데 하나다. 실리콘 밸리 이후 RIS 성공 사례 중 하나로 꼽히는 샌디에이고도 그렇다. UC샌디에이고는 1960년에 설립된 신생 대학이었다. 샌디에이고에서 가장 유명한 기업이 바로 글로벌 빅테크 기업인 퀄컴이다. UC샌디에이고 공대 교수인 어윈 제이콥스가 만들었다. 이후 샌디에이고는 무선 통신 사업의 메카가 됐고 지역민들은 ‘UC샌디에이고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발전하게 됐다’고 말한다.

국내에서도 지방선거를 앞두고 경기도가 최대 격전지로 떠오르고 있는데, 만약 내가 경기도지사라면 경기 북부와 남부에 이러한 대학을 만들고 싶다. 서울대 10곳과 별개로 말이다."

-경기도에 대학 2개를 더 만들어 서울대 12개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인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일단 수도권 내에서도 불균형이 심하다. 경기도민이 1400만 명이나 되는데 명문대가 없고 서울에 몰려 있다. 수많은 경기도민이 서울로 통학한다.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모델인 캘리포니아를 보면, 샌프란시스코 도심에서 꽤 떨어진 북부에 UC버클리가 있고, 남부에 스탠퍼드 대학이 있다. 서울을 샌프란시스코라고 보면 경기 북부와 남부에 각각 지역에 특화된 명문대를 만들자는 거다. 예를 들면 반도체 공장들이 몰린 남쪽에선 동탄, 화성, 오산, 평택, 안성 등을 기반으로 반도체 특성화 대학을 만들 수 있다. 의정부, 양주 등 북부 지역엔 환경이나 소프트웨어 등에 특화된 대학을 만들면 된다. 미국에서도 MIT와 하버드 등 명문대가 외곽에 있는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경기도 발전 차원에서 좋은 전략이 될 거다. 그뿐만 아니라 경기도가 움직이면 다른 지역들도 이러한 움직임을 가져가려 할 것이고 이는 ‘서울대 10개 만들기’로도 이어질 수 있다.”


-지금도 대학이 너무 많다는 지적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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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경기도의 대학을 통합하고 확장하면 된다. 한경대·한국복지대가 통합돼 내년부터 출범하는 한경국립대를 중심으로 여러 대학들을 통합시켜 기존 인프라를 이용하고 확장하는 것이 좋다. 경기 북부에도 경기북부연합대학이 있고 이를 통합해 세계적 대학 수준으로 성장시키는 것도 방법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과감한 투자를 하는 대신 통합을 이끌어 세계적인 수준의 대학으로 발전시키는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

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가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경기도에 세계적인 대학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신중섭 기자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가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경기도에 세계적인 대학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신중섭 기자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뿌리는 2000년대 초 정진상 경상대 교수가 제시한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로 꼽히기도 했으나 결국 이뤄지지 못했다.

"국립대 통합네트워크는굉장히 창조적인 안이었다. 존경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이론이 없었고 설득력이 부족했다. 학벌을 타파하기 위해서 직관적으로 서울대 학부제를 없애고 공동 학위를 10개 대학에 주자는 것이었다. 왜 ‘교육 지옥’이 발생하는지 학문적으로 풀어내지는 못했다. 또한 대학을 ‘창조 권력’으로서 보지 못했고 경제 발전 측면 등에서 전 국민을 설득시킬 수 있는 논리가 부족했다.

기존 대학통합네트워크는 국립대 통합, 입시개혁 등 모든 것을 한꺼번에 고치려는 ‘최대주의'로 접근했다. 나는 이를 ‘대책 없는 완벽주의’라고 부른다. 하지만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일단 시작 지역거점 국립대를 서울대처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하자는 ‘최소주의' 전략이다. 이 문제는 장기적으로 풀어야 한다. 단칼에 모든 걸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서울대를 10개 만든다고 해도 서열화가 없어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서울대 외의 명문대는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가.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모델인 캘리포니아 대학체제도 서열화가 돼있다. 연구중심대학 10개, 교육중심대학 23개, 커뮤니티 칼리지 116개 등으로 이뤄져 있다. 서열화가 있음에도 잘 작동이 되는 이유는 대규모 편입을 가능하게 하는 등 병목 현상을 제거했기 때문이다.

완벽한 평준화는 불가능하다. 갑자기 모든 대학을 서울대로 만들어주는 건 불가능한 거다. 다만 학벌 체제를 최대한 완화할 수는 있다. 서울대 10곳을 만들면 전체 수험생의 20%를 흡수할 수 있다. 현재 서울의 엘리트 대학 인원을 상위 10%라고 볼 때 이 인원을 더하면 명문대 인원을 전체의 30% 수준까지 늘릴 수 있다는 거다. 이후에도 장기적으로 차츰 차츰 서열화가 완화되는 변화가 이어질 것이다."

-서열화를 없애기 위해선 대학을 굳이 가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미국도 고졸과 대졸자의 임금격차가 꽤 난다. 유럽의 경우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착각하기 쉬운데, 국가 복지 시스템이 잘 돼있기 때문이다. 미국에는 ‘칼리지 포 올’(College for All)이라는 구호가 있다. 모든 학생들이 대학을 갈 수 있게 하자는 거다. 대학을 가게 만드는 건 개인에게 더 나은 임금과 정신적인 풍요로움을 제공하고 사회 전체 발전으로도 이어진다. 지금은 지식 경제다. 대학을 가지 않게 하는 건 세계 흐름에 반하는 거다. 대학을 나오는 게, 그걸 또 권장하는 게 사회적으로 훨씬 좋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대학 경제가 핵심이다. 대학 경제는 부동산이나 도시계획, 녹색경제와도 연관돼 있다. 이걸 이해해야 한다. 차기 정부가 지방 시대를 선언했지만 세계적인 대학 없이 지방 시대는 불가능하다. 공공기관 이전과 같은 정책도 중요하지만 지방 시대가 열리려면 민간 기업이 내려가야 한다. 기업을 내려오게 할 수 있는 건 대학밖에 없다.”

신중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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