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가 시계 제로다. 도시 봉쇄 조치로 핀치로 내몰리고 있는 중국 경제, 코로나19 대유행·자원 민족주의 등과 맞물린 만성화된 공급난, 원자재 가격 급등을 유인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 미국의 통화 긴축에 따른 외환시장의 불안감 등 악재가 하나둘이 아니다.
지난달 29일 서울경제와 만난 김흥종(사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은 이런 우환거리가 우리 경제를 괴롭히고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희망을 말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역대 정부 중 최단 기간인 취임 11일 만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만나게 된다는 점에 주목했다. 김 원장은 ‘한국 경제를 둘러싼 총체적 위기를 돌파할 모멘텀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한미 정상회담이 우리에게는 전략적 기회”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한미 통화 스와프를 얻어내 환율을 안정시키고 희토류 공급망 구축을 추진해 한국의 전략적 입지를 다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21일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역대 정부 출범 이후 가장 최단 기간에 양국 정상 간 만남이 성사되는 데다 미 대통령이 1993년 이후 29년 만에 일본보다 한국을 먼저 찾는 사례기도 하다. 한미 동맹 강화를 핵심 외교정책으로 삼고 있는 윤석열 정부에 대한 미국의 기대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특히 미국이 일본에서 열리는 대중 견제 협의체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 정상회의 직전에 한국을 찾자 미국이 중국 견제에 초점을 맞춘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인정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김 원장이 이번 정상회담을 경제 위기의 돌파구로 삼아야 한다는 견해를 내놓은 것도 같은 맥락의 연장선에 있다. 미국이 한국의 중요성을 인정한 만큼 우리도 이 기회를 잘 살려 국익을 챙겨야 한다는 것이다. 김 원장은 먼저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글로벌 위기가 있을 때마다 원화 디스카운트(저평가)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며 “정상회담에서 한미 통화 스와프 체결을 얻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2008년 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19 사태 때 한미 통화 스와프가 우리 경제의 안전판 역할을 한 것처럼 이번 경제 위기의 해법으로 이를 다시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원장은 “미국의 1분기 경제성장률(-1.4%)이 좋지 않지만, 올해 금리를 가파르게 올릴 것은 확실시되기에 (한미 양국의) 금리 역전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며 “금리 역전이 반드시 우리 경제에 충격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통화 스와프 등 여러 가지 환율 안정책을 확보해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다만 환율 급등세가 오래 가지는 않을 것으로 봤다. 그는 “(한미 금리 역전이 발생한다고 해도) 초유의 상황은 아니고, 환율이 오른다 해도 모든 것을 (한미 간 금리 차이로) 설명하는 것도 무리”라며 “새 정부의 한미 동맹에 대한 의지가 강한 만큼 환율 안정을 꾀해 대외 신인도에 문제가 없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대중 견제를 목적으로 한 미국의 경제안보 동맹에서 우리가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도 주문했다. 특히 김 원장은 “한국이 희토류 공급망 구축에 앞장서야 한다”고 진단했다. 희토류는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등 핵심 산업에 필수적인 원료다. 하지만 중국이 세계 희토류 공급의 70%를 차지하고 있어 언제든 중국이 희토류를 무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실제 중국은 2010년에도 일본과 외교 분쟁 후 희토류의 일본 수출을 제한한 바 있다. 김 원장은 “미국과 호주에 매장돼 있지만 환경오염 문제 때문에 희토류는 다자간 협력이 긴밀하게 필요하다”며 “미국도 제3국과의 희토류 공급망 사슬을 구축하고 싶어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은 물론 미국도 희토류 공급망 구축에 관심이 클 것이고, 이를 한국이 전략적으로 이용해야 한다는 게 김 원장의 분석이다.
김 원장은 인터뷰 내내 공급망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더 길어질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김 원장은 “러시아는 전쟁을 쉽게 끝낼 수 있다고 오판했다”며 “우크라이나 군대는 2014년 크름반도를 뺏기고 난 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지원 등에 힘입어 서방의 직접적인 군 병력 지원 없이도 러시아 침공을 잘 견뎌내고 있다”고 짚었다. 또 “크름반도 병합에 이어 러시아가 돈바스까지 가져가면 나중에는 다른 영토를 탐내지 않겠느냐”며 “그렇기 때문에 서방은 러시아의 돈바스 병합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특히 김 원장은 “전쟁이 당장 끝나도 공급망 차질은 내년 말까지 이어질 수 있다”며 “공급망 차질의 핵심 원인인 서방의 대(對)러 제재가 당장 풀리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모든 제재가 사실상 풀리는 효과가 나타나려면 2년까지 걸린다는 분석도 있다”고 경고했다. 전쟁으로 니켈 등 이미 각종 산업 소재 수급난이 발생하고 있고, 러시아에 대한 각종 제재 등으로 생각지도 못한 공급 병목현상이 나타나고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로 코로나’ 정책을 고수하는 중국의 도시 봉쇄 조치가 우리에게는 큰 악재가 될 것이라는 점도 빼놓지 않았다.
김 원장은 “중국이 경제 둔화에도 제로 코로나 정책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제로 코로나를 풀어 확진자가 많이 생기고, 고령자를 중심으로 사망자가 늘어나면 시노팜과 시노백 등 자국산 백신의 효능이 낮다는 걸 자인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김 원장은 “중국은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과 가을 20차 당대회를 마무리할 때까지는 제로 코로나를 유지할 것”이라며 “그때까지는 경제 타격을 감수하겠다는 입장”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상하이뿐만 아니라 중국 주요 도시 봉쇄가 잇따를 수 있다는 뜻이라 이에 따른 타격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받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지난해 한국의 대중 무역액은 3015억 달러로 전체 무역액의 25%에 육박한다.
공급망 차질 장기화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등 다자간 공급망 재편 논의가 활발한 가운데 김 원장은 “호주, 유럽·인도와 전략적으로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김 원장은 “한국은 신냉전 구도 속에서 미국과 중국 모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며 “이렇게 끼어 있는 입장에서는 다른 국가와의 관계를 전략적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 원장은 “호주는 전략 자원 부분에서, 유럽과 인도와는 인적 교류와 연구개발(R&D) 부분에서 협력 범위를 넓혀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김 원장이 기술 협력을 강조하는 데는 미래에는 세계가 ‘표준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김 원장은 “앞으로 신기술이 잇따라 개발되면 어떤 국가의 기술을 표준으로 정하고 통용시킬 것인지에 대한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표준을 확보하는 것은 관련 기술의 시장을 선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의미다. 이미 세계 각국은 신기술의 표준을 확보하기 위해 물밑 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해 출범한 한중관계 미래발전위원회의 위원으로 참여 중인 김 원장은 “중국이 한국의 협력을 구하는 부분 중 하나가 표준 협력”이라고 말했다.
유럽연합(EU) 역시 인도에 첨단 기술 협력 확대를 위한 무역기술위원회(TTC) 발족을 제안한 상태다. 이미 미국과 EU는 중국과의 기술 표준 경쟁에서 협력을 확대하겠다며 지난해 10월 TTC를 발족했다. 김 원장은 “미국과 EU·중국 등에 비해 시장이 작은 한국은 표준 선점에서 앞서나갈 수 없다”며 “한국은 최대한 여러 표준에서 양립 가능한 기술을 개발하는 방식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정리=곽윤아 기자 사진=오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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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서울 △서울 경복고 △서울대 경제학과 △영국 옥스퍼드대 경제학과 △2007년 한국국제통상학회 부회장 △2007년 외교통상부 한·EU FTA 자문위원 △2010년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2012년 서강대 기술경영대학원 겸임교수 △2020년 한국태평양경제협력위원회 회장 △2020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 △2021년 한국·EU학회 회장 △2021년 한중관계 미래발전위원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