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아파트에서 주민들이 고통받고 도심 공급도 부족해진 문제가 있어 안전진단 기준을 합리적으로 개선할 필요성이 있다.”(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오는 10일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가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완화를 예고하면서 사업 추진에 탄력을 받는 노후 단지들이 크게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특히 현 정부의 규제 강화로 재건축 안전진단에서 탈락한 서울 양천구 목동신시가지 아파트 등 전국 13개 단지 중 9개 단지는 바뀌는 기준에 따라 재건축 추진이 가능해진다.
2일 서울경제가 홍기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과 함께 2018년 3월 이후 재건축 안전진단 적정성 검토(2차 안전진단) 결과를 전수 조사한 결과, 재건축 불가 판정인 C등급 단지는 전국 13곳(1만 3063가구)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 △서울 목동9·11단지 등 7곳(8235가구) △경기 남양주 진주아파트 1곳(2296가구) △대구 서구 광장타운1차 등 4곳(1352가구) △부산 수영구 현대아파트 1곳(1180가구) 등이다.
이들 단지는 준공 30년 이상인 노후 단지다. 1차 정밀안전진단에서 D등급을 받아 조건부 통과했지만 한국건설기술연구원과 국토안전관리원의 적정성 검토 문턱을 넘지 못해 재건축이 좌절됐다. 정부가 2018년 3월 안전진단 평가 항목인 구조안정성 가중치를 20%에서 50%로 높이는 등 기준을 강화하면서 재건축 추진에 필요한 D·E등급을 받기가 어려워진 탓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대로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이 완화되면 상황은 반전된다. C등급 단지 13곳 중 9곳(9895가구)은 D등급을 받으며 재건축을 확정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들 단지는 1차 안전진단부터 다시 받아야 한다. 새 정부는 윤 당선인의 공약을 반영해 구조안정성(현재 50%), 건축마감 및 노후도(25%), 주거환경(15%) 평가 항목의 가중치를 모두 30%로 조정할 방침이다. 나머지 비용분석 항목은 현행대로 10% 가중치를 유지한다.
서울에선 △목동9단지(2030가구) △목동11단지 △은평구 미성아파트(1340가구) △노원구 태릉우성아파트(432가구) 등 4개 단지가 D등급으로 바뀐다. 목동9단지와 11단지의 경우 적정성 검토 당시 평가항목별 원점수에서 조정된 가중치를 적용하면 각각 52.90점, 53.87점으로 D등급을 받는다. 기존 점수인 58.55점(9단지), 58.78점(11단지)보다 점수가 낮아지며 등급도 조정된 것이다. 미성아파트는 기존 60.23점에서 53.69점으로, 태릉우성아파트는 60.07점에서 54.25점으로 바뀌며 D등급 단지가 된다.
수도권과 지방 노후 단지들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3월 적정성 검토에서 61.72점으로 탈락한 남양주 진주아파트는 새 기준 적용 시 54.53점으로 D등급 판정을 받게 될 전망이다. 이밖에 대구 광장타운1차(61.21→50.74점), 북구 칠성 새동네 아파트(57.15→48.13점), 달서구 한신아파트(59.60→52.86점), 부산 현대아파트(55.05→50.14점)도 재건축 첫 관문을 넘게 된다.
반면 강동구 고덕주공9단지, 구로구 동부그린 등 4개 단지는 C등급을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계에선 이들 단지의 안전진단 통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적정성 검토 이후 현재까지 수년이 지나며 노후화가 진행된 점을 고려하면 유리한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서울에서 준공 30년이 경과했지만 안전진단을 통과하지 않은 약 30만 가구의 단지들도 새 기준을 적용받는다.
문제는 재건축 추진 단지를 중심으로 집값을 자극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안전진단 통과 가능성이 커지며 사업 초기 단지에 투기 수요가 몰릴 우려가 크다. 이에 조합원 지위 양도 금지 시점을 ‘조합 설립 이후’에서 ‘안전진단 통과 이후’로 앞당기는 등 보완 장치부터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홍기원 의원은 “섣부른 규제 완화는 시세차익을 노린 투기 세력의 배만 불리며 시장 불안을 키우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투기 수요를 적극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방안부터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 후보자는 시장 불안 가능성을 감안해 규제 완화에 신중히 접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이날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제출한 답변자료에서 “안전진단 대상이 되는 아파트가 많아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경제 여건, 시장 상황, 규제 간 연관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