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해외 미술거장 몰려드는 서울…뉴욕이 안 부럽다

페레스프로젝트, 글래드스톤 등 유력 갤러리

아시아 첫 분관으로 홍콩·상하이 아닌 서울

배경엔 젊은 고액 자산가층의 높은 구매력

미술시장 규제 적고 현대미술 수용력 높아

도나 후앙카의 'Fire Clit' /사진제공=페레스프로젝트도나 후앙카의 'Fire Clit' /사진제공=페레스프로젝트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과의 콜라보레이션으로 200개 한정판(2020년) 백을 선보이며 인기를 누린 미국의 현대미술가 도나 후앙카가 신라호텔의 부티크 베이커리 ‘다쿠아즈’와 한정판 패키지를 선보였다. 이 다쿠아즈 세트가 제공되는 신라호텔의 호캉스 패키지 ‘오픈 유어 아트’도 한시적으로 출시됐다. 오직 서울에서만 누릴 수 있는 이 예술적 경험의 배경에는 아시아 최초로 서울에 분관을 연 독일 갤러리 ‘페레스프로젝트’가 있다. 베를린에서 출발한 20년 전통의 페레스프로젝트는 이탈리아 밀라노 지점에 이어 타 대륙 진출의 거점을 모색하던 중 뉴욕도, 홍콩·상하이도 아닌 서울을 택했다.




도나 후앙카의 서울신라호텔 전용 '다쿠아즈 패키지' /사진제공=페레스 프로젝트도나 후앙카의 서울신라호텔 전용 '다쿠아즈 패키지' /사진제공=페레스 프로젝트


조은혜 페레스프로젝트 서울 디렉터는 “경영진의 네트워크로만 보자면 중화권이 더 유리하지만 중국은 미술품 거래에 규제가 많고, 홍콩은 정치 및 방역 상의 이유로 어려움이 큰 데 반해 한국은 미술품에 대한 세금(관세)도 없고 규제가 적다”면서 “최근 2~3년간 아트부산·키아프(KIAF) 등의 아트페어에 참여하면서 만난 한국의 젊은 컬렉터들은 국내외의 경계 없이 차세대 작가를 먼저 찾아 확보하려는 호기심과 경쟁심도 있어 그 열정과 수요를 믿고 서울 진출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신라호텔 아케이드에 갤러리를 연 페레스프로젝트는 오는 11일까지 ‘봄’을 주제로 전속작가 7인의 신작으로 개관전을 연다.

제임스 터렐, 로버트 어윈 등 빛을 소재이자 주제로 삼은 작가들을 모은 페이스갤러리의 '벤딩 라이트' 전시 전경. 페이스갤러리는 최근 국내 고객의 수요에 맞춰 한남동 전시장을 확장했고, 1층을 대규모 쇼룸으로 활용하고 있다. /사진제공=페이스갤러리제임스 터렐, 로버트 어윈 등 빛을 소재이자 주제로 삼은 작가들을 모은 페이스갤러리의 '벤딩 라이트' 전시 전경. 페이스갤러리는 최근 국내 고객의 수요에 맞춰 한남동 전시장을 확장했고, 1층을 대규모 쇼룸으로 활용하고 있다. /사진제공=페이스갤러리


제임스 터렐, 로버트 어윈 등 빛을 소재이자 주제로 삼은 작가들을 모은 페이스갤러리의 '벤딩 라이트' 전시 전경. 페이스갤러리는 최근 국내 고객의 수요에 맞춰 한남동 전시장을 확장했고, 1층을 대규모 쇼룸으로 활용하고 있다. /사진제공=페이스갤러리제임스 터렐, 로버트 어윈 등 빛을 소재이자 주제로 삼은 작가들을 모은 페이스갤러리의 '벤딩 라이트' 전시 전경. 페이스갤러리는 최근 국내 고객의 수요에 맞춰 한남동 전시장을 확장했고, 1층을 대규모 쇼룸으로 활용하고 있다. /사진제공=페이스갤러리


뉴욕의 거물화랑 글래드스톤 갤러리가 최근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아시아 첫 분관을 열었다. /사진제공=글래드스톤 갤러리뉴욕의 거물화랑 글래드스톤 갤러리가 최근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아시아 첫 분관을 열었다. /사진제공=글래드스톤 갤러리


글래드스톤 서울 개관에 맞춰 세계적 미술계 필립 파레노가 별도로 제작한 최근작. /사진제공=글래드스톤갤러리글래드스톤 서울 개관에 맞춰 세계적 미술계 필립 파레노가 별도로 제작한 최근작. /사진제공=글래드스톤갤러리



미술계의 변방이었던 서울이 글로벌 아트마켓의 주목을 받고 있다. 세계적 화랑들이 속속 한국 분점을 여는가 하면, 거장급 작가들이 서울 전시를 위해 신작을 선보이는 등 ‘공들이는’ 기색이 역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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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는 42년 전통의 뉴욕 거물 화랑 글래드스톤 갤러리가 강남구 청담동에 개관했다. 1980년 뉴욕에서 문 연 글래드스톤은 뉴욕의 3개 전시장 외에 LA 분관을 두고 있으며 벨기에 브뤼셀과 이탈리아 로마에 이어 아시아 첫 분점으로 서울을 택했다. 바바라 글래드스톤 대표는 “지난 2005년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선보인 매튜 바니 전시 등을 통해 한국과 인연을 맺었고 주목해 왔다”면서 “한국 진출은 우리 소속 작가들을 폭넓고 새로운 시장에 선보이게 돼 기쁘다”고 밝혔다. 개관전을 맡은 세계적 미술가 필립 파레노는 서울 전시장에 맞춰 별도의 작품을 제작했고, 직접 방한했다. 마찬가지로 뉴욕 출신인 글로벌 화랑 페이스 갤러리와 리만머핀 갤러리는 최근 한남동 전시장을 각각 확장, 이전했다. 페이스는 빛의 물성을 탁월하게 다루는 메리 코스의 개인전을 2·3층 전시장에서 선보이는 동시에 1층 쇼룸에서는 제임스 터렐·로버트 어윈·피터 알렉산더 등 빛을 주제로 한 ‘미술관급’ 작가들을 모아 짜임새 있는 전시를 개최했다. 리만머핀 갤러리는 안국동에서 한남동으로의 이전을 기념해 갤러리 공동대표가 함께 한국을 방문했다.

최근작들로 채운 국제갤러리의 우고 론디노네 개인전 전경. /사진제공=국제갤러리최근작들로 채운 국제갤러리의 우고 론디노네 개인전 전경. /사진제공=국제갤러리


로버트 테리엔은 평범한 철제 의자와 탁자를 거대한 설치작품으로 만들어 놓음으로써 일상을 생경한 풍경으로 바꿔놓는다. /사진제공=가나아트갤러리로버트 테리엔은 평범한 철제 의자와 탁자를 거대한 설치작품으로 만들어 놓음으로써 일상을 생경한 풍경으로 바꿔놓는다. /사진제공=가나아트갤러리


외국계 갤러리 못지 않게 한국 화랑들도 국내 미술애호가들의 수요와 눈높이에 맞추고자 노력하고 있다.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는 사물을 아주 크게 혹은 아주 작게 제작해 일상을 생경한 풍경으로 바꿔놓는 미국의 현대미술가 로버트 테리엔의 작고 후 첫 개인전을 열고 있다. 2019년에 타계한 작가는 세계 최정상 화랑인 가고시안갤러리 전속이라 국내에서는 쉽게 만나기 어려웠다. 국제갤러리는 우고 론디노네의 개인전을 열고 석상 형태의 청동조각 등 최신작들을 선보였다. 독일의 여성 추상화가 사빈 모리츠는 아시아 첫 개인전을 최근까지 갤러리현대에서 열었고, 한국 전시만을 위해 ‘4’를 주제로 그린 사계·동서남북 등의 최신작을 내놓았다.

이 같은 움직임의 배경에는 신규 컬렉터로 급부상한 한국의 젊은 고액 자산가층의 높은 구매력이 있다. 동시대 현대미술에 대한 거부감이 적은 한국문화 특유의 역동성도 한몫했다. 아시아 미술시장의 허브로 꼽히던 홍콩이 정치적 이유로 주춤하고, 중국 베이징 미술시장의 폐쇄성과 일본 도쿄의 보수성이 두드러지는 것에 비해 한국은 새로운 미술을 받아들이는 데 적극적이다. 세계 최정상 아트페어인 ‘프리즈(Frieze)’가 오는 9월 서울에서 열리는 것이나, 글로벌 미술전문매체 ‘아트뉴스’ 등이 서울에 아시아 특파원을 두는 것도 한국 미술시장의 바잉파워(Buying Power)가 커졌기 때문이다. 영화감독 팀 버튼이 전 세계 순회 특별전의 첫 개최지로 서울을 택한 것이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큰 미술가 중 하나인 히토 슈타이얼이 아시아 첫 대규모 개인전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여는 것도 한국 미술계의 위상이 높아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

독일의 추상화가 사빈 모리츠는 갤러리현대에서 자신의 아시아 첫 대규모 개인전을 열고, 이 전시에 맞춰 제작한 신작들을 선보였다. /사진제공=갤러리현대독일의 추상화가 사빈 모리츠는 갤러리현대에서 자신의 아시아 첫 대규모 개인전을 열고, 이 전시에 맞춰 제작한 신작들을 선보였다. /사진제공=갤러리현대


세계 최정상 아트페어인 아트바젤이 글로벌 금융그룹 UBS와 공동으로 발간한 ‘아트마켓 2022’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동시대미술 경매시장’에서 국가별 점유율 5위로 이름을 올렸다. 김상훈 서울대 경영대학장은 일련의 미술시장 변화에 대해 “과거 기업미술관과 문화재단이 주도했던 미술시장에 고소득 개인 컬렉터, 즉 ‘HNWI(high net worth individual)’가 다수 등장하면서 판도가 바뀌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아트마켓 2022’는 지난해 미술품을 수집하는 고액자산가 비중이 가장 크게 증가한 국가로 인도(57%)에 이어 2위로 한국(46%)을 지목했다.


조상인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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