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경제·마켓

사람이 모이는 생태계, 떠나는 생태계 [정혜진의 Whynot S밸리]

실리콘밸리 인구 감소세 뚜렷해지며

생태계 지속가능성에 잇단 적색경보

'실리콘힐스'로 뜬 텍사스 오스틴에는

이용자 중심 일자리·물가 사람 몰려


지난해부터 실리콘밸리에서 유독 바람 잘 날 없었던 기업 하면 메타(옛 페이스북)가 떠오르지만 최근에 메타 직원들도 안타까워한다는 기업이 등장했다. 지난해 10월 전 직원의 내부 고발을 시작으로 사명 변경, 실적 부진 등에 시달려온 메타보다도 사정이 딱하다고 여겨지는 곳은 바로 넷플릭스다. 올 1분기 유료 구독자 수가 11년 만에 처음으로 순 감소로 돌아서면서 넷플릭스는 주가가 하루 만에 35% 이상 폭락하는 등 ‘위기론’에 직면해 있다. 반면 지난해 4분기에 일간 활성 이용자 수(DAU)가 처음으로 감소하며 주가 폭락 사태를 겪었던 페이스북은 한 분기 만에 이용자 지표를 회복하며 악몽에서 벗어났다. 이처럼 ‘얼마나 많은 이들이 플랫폼에 오래 머물렀는가’를 보여주는 기업들의 이용자 지표는 해당 플랫폼의 성장 전망은 물론 지속 가능성까지 담보하며 기업들의 웃고 울게 만든다.

이 지표를 도시 생태계에 적용해보면 어떨까. 미국 내 최대 인구를 자랑하는 캘리포니아주는 2020년 7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26만 명이 순 감소하며 2년째 인구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빅테크들이 모여 있는 실리콘밸리가 캘리포니아 인구 이탈의 진앙이다. 미 경제 방송 CNBC의 집계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9년까지 1만 8000여 개의 기업이 캘리포니아를 떠났고 이어 사람들이 도시를 빠져나갔다. 글로벌 리서치 회사인 에델만인텔리전스가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는 1900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서 응답자 중 53%가 높은 물가를 이유로 캘리포니아를 떠나는 것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밀레니얼 세대로 국한하면 그 비중은 무려 63%에 달했다. 젊은 층의 이탈은 실리콘밸리의 지속 가능성에도 위험한 신호다.

4일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LA)에서 열린 ‘2022 밀컨 글로벌 콘퍼런스’의 ‘최고의 성과를 내는 도시들’ 세션에서 각 도시의 시장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에릭 가세티(왼쪽부터) LA시장, 스티브 애들러 오스틴시장, 케빈 클라우덴 밀컨연구소 선임 디렉터, 마이클 행콕 덴버시장, 미셸 카우푸시 프로보시장, 프랜시스 수아레스 마이애미시장. 로스앤젤레스=정혜진 특파원4일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LA)에서 열린 ‘2022 밀컨 글로벌 콘퍼런스’의 ‘최고의 성과를 내는 도시들’ 세션에서 각 도시의 시장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에릭 가세티(왼쪽부터) LA시장, 스티브 애들러 오스틴시장, 케빈 클라우덴 밀컨연구소 선임 디렉터, 마이클 행콕 덴버시장, 미셸 카우푸시 프로보시장, 프랜시스 수아레스 마이애미시장. 로스앤젤레스=정혜진 특파원






이달 1~4일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LA)에서 열린 ‘2022 밀컨 글로벌 콘퍼런스’에서는 ‘최고의 성과를 내는 도시들’이라는 제목의 흥미로운 세션이 열렸다. 세션에는 LA를 비롯해 텍사스 오스틴, 콜로라도 덴버, 유타 프로보, 플로리다 마이애미의 시장들이 연사로 참여했다. 모두 지속 가능한 일자리 창출, 경제성장, 혁신, 인구 유입 등의 측면에서 밀컨연구소가 최고의 성과를 낸다고 꼽은 도시들이다. 이 중 가장 주목을 받는 도시는 ‘실리콘힐스’라는 애칭을 얻으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텍사스 오스틴이다. 지난 10년간 오스틴시 인구는 33.7%가 늘었는데 이는 미 전역 인구 증가율의 5배에 달한다. 지난달 테슬라가 텍사스 기가팩토리 개관을 기념해 연 ‘사이버 로데오’ 행사는 전 세계로 생중계되며 오스틴의 존재감을 알렸다. 이날 세션에서 스티브 애들러 오스틴시장은 ‘실리콘밸리 엑소더스’ 인구들이 오스틴으로 향하는 이유를 두고 법인세·소득세 0% 정책 외에 ‘경제적 부담 능력(affordability)’과 ‘가성비 높은 삶의 질’을 언급했다. 그가 말하는 경제적 부담 능력은 집값이나 장바구니 물가 등 절대적인 가격 수준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애들러 시장은 “10만 달러 이상의 중급 훈련 일자리(middle skilled jobs)가 늘어나고 있는 데다 이들이 집값을 감당할 수 있다는 점 등이 매력”이라며 “동시에 ‘오스틴을 별나게(Keep Austin Weird)’라는 슬로건 아래 높은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스틴의 집값도 오르고 있지만 다른 도시가 겪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도록 LA·샌프란시스코 등을 방문해 노숙인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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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실리콘밸리에서 만난 많은 사람은 실리콘밸리의 매력으로 ‘좋은 회사’와 ‘많은 기회’를 꼽는다. 하지만 거주지로서의 매력은 크게 줄고 있다고 아쉬워한다. 체감 물가 중 가장 비중이 높은 월세만 봐도 미국 내 1위인 샌프란시스코를 비롯해 샌터클래라·새너제이 등 15위권 안에 캘리포니아 10개 도시가 포진해 있을 정도다. 월 4000달러의 월세를 내던 사람들이 직장과 보험 혜택을 잃으면 수 개월 내 집 근처 트레일러로 쫓겨나게 된다는 말이 비현실적으로 들리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캘리포니아주는 최근 ‘주 4일 근무 의무화’ 법안을 발의하며 또 한 번 실리콘밸리 엑소더스 우려를 낳았다. 실리콘밸리 생태계의 가장 큰 원동력은 ‘사람’이다. 높은 물가에 떠밀려 사람이 떠나가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제아무리 ‘혁신의 메카’라도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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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정혜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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