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군이 점령 중인 우크라이나 남부 도시 헤르손주(州)의 친러 지역정부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영토 병합을 요청하기로 했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의 지지가 미약해 러시아 측이 요청을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11일(현지시간)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에 따르면 헤르손의 민군 합동 정부 부책임자인 키릴 스트레무소프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헤르손 지방정부는 푸틴 대통령에게 이 지역을 러시아의 일부로 만들어 달라고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병합 요청은 지역정부의 호소를 근거로 이뤄질 것"이라며 "별도의 KNR(헤르손 인민 공화국·Kherson People's Republic) 선언이나 국민투표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러시아는 2월 개전 초기 헤르손을 장악한 뒤 현지에 친러 성향의 민군 합동 정부를 세웠다. 이후 러시아 측은 헤르손에 러시아 화폐 루블 도입을 강행하고, 희망자에 한해 러시아 여권을 발급할 계획을 밝히는 등 꾸준히 러시아화를 진행해 왔다. 러시아 여당인 통합러시아당 관계자는 헤르손을 장기적으로 러시아의 통제 아래 둘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헤르손 친러 정부는 현지 주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크라이나 씽크탱크 '일코 쿠체리우 민주 이니셔티브'의 마리아 졸키나 분석가는 영국 가디언에 국민투표를 배제한 병합 요청은 이 지역에서 러시아의 입지가 약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신호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러시아는 헤르손에서 안정감을 느끼지 못해 2014년 크름 반도 병합 때처럼 국민투표조차 할 수 없는 것"이라며 "헤르손 지역 주민들의 지원을 전혀 못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 탓에 러시아 정부도 표면적으로는 헤르손 지역정부의 주장과 거리를 뒀다. 크렘린궁은 "어떤 요청도 헤르손 지역 주민들에 의해 결정돼야 한다"며 "과거 크름에서 그랬던 것과 같은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고 논평했다. 러시아의 대응에 대해 가디언은 "러시아가 실제로 헤르손 병합을 추진할 것인지, 아니면 우크라이나 정부를 압박하기 위한 위협으로 (병합 요청을) 이용하고 있는 것인지 아직 분명하지 않다"고 분석했다.
한편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특별 군사 작전'이라고 주장하며 동부의 돈바스(도네츠크·루한스크) 지역 장악을 위해 공격을 이어가는 중이다. 앞서 미국 국무부의 발표에 따르면, 미국은 러시아가 5월 중 가짜 주민투표를 통해 돈바스 병합을 시도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