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무실 이사 올 때 함께 왔죠. 5년 동안 1인 시위를 했는데 용산에서 한 지는 3일 됐어요.” “대통령한테 우리 이야기 좀 들어 달라고 하려고 왔어요. 안 들어주면 또 와야죠.”
윤석열 대통령 취임 3일째인 12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는 아침부터 집회에 나선 시민들이 틀어놓은 확성기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비상 상황에 대비해 수십 명의 경찰이 집회 장소를 에워싸자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은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불과 얼마 전까지 청와대나 광화문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장면이다.
그동안 청와대 앞 분수대 주변에서 1인 시위를 해왔던 시민들도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맞춰 용산으로 대거 이동했다. 5년 동안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는 우순자(79) 씨는 “대통령이 이동했으니 우리도 이동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청와대 인근에 있던 사람들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시위를 하던 사람들도 이쪽으로 넘어왔다”고 말했다.
다만 집회 공간이 협소하다 보니 위험한 장면도 종종 연출됐다. 1인 시위를 하던 한 시민이 고성을 지르며 차도로 뛰어들자 달리던 자동차가 크게 경적을 울렸다. 이에 주변 경찰들이 우르르 달려 와 상황을 수습하기도 했다.
경찰도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으로 집회와 시위가 늘어나자 잔뜩 긴장하고 있다. 인근 지구대의 한 관계자는 “집회·경비 1번지가 종로에서 용산으로 이동했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라며 “과거와 비교해 용산에 집회 신고가 많이 늘어났다”고 했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도 “보통 2~3일 전에 집회 신고가 들어오지만 최근에는 일주일 전부터 집회 신고가 들어온다”며 “이전에는 종로·남대문·영등포 순으로 집회·시위 신고가 많았다면 이제는 용산이 부동의 1위가 됐다”고 귀띔했다.
용산 일대의 집회 열기가 갈수록 뜨거워지자 용산경찰서도 경비와 경호·집회 등에 대응하기 위해 최근 7명을 추가 증원하는 등 철저히 대비하는 모양새다. 다만 삼각지역을 포함한 대통령 집무실 인근의 도로가 협소한 탓에 집회·시위가 늘어날 경우 시민 불편이 가중될 것으로 전망이다.
이날 오후 벌어진 집회에서도 폭 4~5m 정도의 인도를 시위대와 60여 명의 경찰 병력이 점령하는 바람에 시민들이 통행에 불편함을 겪어야 했다. 집회 인근을 지나던 김 모(30) 씨는 “좁은 길에 사람이 저렇게 많이 서 있으니까 지나가기 너무 불편하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일각에서는 기존 ‘집회 메카’였던 광화문과 청와대 일대가 광장 본연의 역할을 맡을 것이라는 관측도 조심스레 나온다. 김광현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광장이라는 공간은 본래 시위하는 공간이 아닌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라며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따라 광화문광장은 시위를 위한 전용 공간에서 벗어나 불특정 다수가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