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폼랩스가 발행한 스테이블코인 테라USD(UST)가 폭락하면서 암호화폐 예치 서비스를 제공하는 헤이비트에도 불똥이 튀었다. 헤이비트는 고객이 맡긴 암호화폐를 다양한 방식으로 운용해 수익을 낸 뒤 이 중 일부를 고객에게 이자로 돌려주는데, 이번 ‘테라-루나 쇼크’ 사태를 키운 탈중앙화금융(DeFi·디파이)인 앵커프로토콜에 고객 자산 일부를 맡긴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헤이비트는 사태 발생 초기 UST를 테더로 전환해 고객 피해를 최소화했다는 입장이지만, 애초에 안정성이 검증되지 않은 앵커프로토콜에 고객 자산을 예치한 것 자체가 잘못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고객이 맡긴 암호화폐를 UST로 전환해 보유했거나 테라 블록체인 위에서 운영되는 디파이 서비스에 맡긴 기업들이 ‘테라-루나 쇼크’로 막대한 손해를 입었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국내 암호화폐 예치 서비스 헤이비트가 대표적이다. 헤이비트를 운영하는 업라이즈는 고객이 맡인 암호화폐를 다양한 방식으로 운용해 높은 수익으로 돌려주면서 업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카카오벤처스와 KTB네트워크 등으로부터 성장성을 인정받아 총 460억원의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헤이비트는 고객에게 높은 수익을 보장하기 위해 디파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했다. 고객 자산 일부를 UST로 변환해 테라 디파이 서비스인 앵커프로토콜에 예치했다. 앵커프로토콜은 UST를 맡기면 약 20%에 달하는 연이자를 제공한다. 보통 3%~5.5% 이자율을 제공하는 다른 디파이 서비스와 비교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헤이비트 입장에선 고객에게 최대 9.4% 수익률만 지급하면 되니 높은 이득을 거둘 수 있는 선택지였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난 주말 UST가 1달러 아래로 떨어진 뒤 회복되지 못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12일 오후 5시 38분 코인마켓캡 기준 UST는 0.6359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같은 시간 UST의 가격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 활용되는 루나(LUNA)는 하루 새 97.87% 폭락해 0.119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헤이비트가 제때 UST를 환전하지 않았다면 상당한 손해를 봤을 것이란 추측이 나오는 이유다. 헤이비트 관계자는 “앵커프로토콜에 일부 예치 중인 자금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문제 발생을 초기에 인지하고 테더(USDT)로 전환했다”고 밝혔다. UST를 USDT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손실이 발생하긴 했지만 전체 예치 금액 대비 미미한 수준이란 설명이다. 그는 “지급보증율은 1배 이상이라 고객이 자산을 다 빼고 싶다 해도 지급할 수 있다”며 “회사 재정 상황도 거의 타격이 없다”고 강조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실제 피해액이 적더라도 헤이비트가 고객 자산을 앵커프로토콜에 맡긴 건 위험한 선택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한 전문가는 “대량 출금이 발생했는데 유동성 풀(pool)이 마르거나 급격한 하락이 있다면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디파이에 고객 자산을 예치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앵커프로토콜의 높은 이자에 혹하긴 했지만 위험성이 크다고 판단해 선택지에서 제외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고객 자산으로는 안전한 차익 거래만 하고 있다”며 “디파이는 쓰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일각에선 가상자산 예치 서비스 기업의 자산운용 방식에 대한 법적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단 주장도 나온다. 이번 테라-루나 쇼크 처럼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최악의 경우 고객이 예치한 자산을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