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7개국(G7) 재무장관, 중앙은행 총재들이 19일(현지 시간) 회의에서 금융안정위원회(FSB)에 암호화폐 규제 마련을 촉구한 것은 사실상 암호화폐의 국제표준 규제를 만들겠다는 의지 표명으로 풀이된다. FSB는 한국·미국·독일 등 24개국과 세계은행·국제통화기금(IMF)·유럽중앙은행 등 13개 국제기구가 참여하는 글로벌 금융규제협의체다. 이에 FSB가 암호화폐 거래 관련 규제를 구축할 경우 사실상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주요 국가의 규제표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이번에 G7이 FSB에 ‘신속한 암호화폐 규제 마련’을 요청한 만큼 제도화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FSB는 앞서 올 2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급증하는 암호화폐 시장이 금융 안정에 심각한 위협을 가할 수 있다”며 각국이 협력해 적절한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달러 등 법정화폐와 1 대 1로 가치를 고정한 스테이블코인의 위험성을 부각했다. 스테이블코인이 실물자산이나 다른 코인을 보유자산으로 삼아 가치를 유지하기 때문에 구조가 취약해 투자자들이 갑작스러운 가치 폭락에 노출될 수 있어서다. 이른바 ‘테라·루나 폭락 사태’ 발발 석 달 전에 이미 암호화폐, 더 나아가 스테이블코인의 한계에 대해 경고한 것이다.
각국도 개별적으로나마 암호화폐 규제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거세다. 미국의 경우 마이클 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금융감독 담당 부의장 지명자가 이날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스테이블코인 같은 경우 금융 안정 리스크가 있을 수 있다”며 “의회와 규제 기관들이 이 리스크를 다루고 규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역시 이날 “모든 투자는 위험을 수반하지만 규칙이 없는 시장은 절도와 같다”며 “현재 스테이블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 투자자들은 금융시장에서 기본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신속한 규제 마련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금융 당국 수장들이 잇따라 암호화폐 규제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미 정가에서 논의되던 규제안들도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현재 미 의회에는 여러 건의 스테이블코인 규제 법안이 발의돼 있다. 특히 곧 발의될 예정인 알고리즘 기반 스테이블코인 발행 금지 법안이 업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이와 별도로 미 재무부가 주도하는 규제위원회는 스테이블코인 발행 시 은행과 같은 요건을 충족하도록 하는 법안이 필요하다고 지난해 의회에 권고하기도 했다.
이밖에 유럽연합(EU)은 올 3월 역내 국가들에 동일한 암호화폐 규제를 적용하기 위해 ‘가상자산규제기본법안(MiCA)’을 도입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EU는 곧 암호화폐에 대한 구체적인 규제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블룸버그통신은 포르투갈이 모든 암호화폐에 과세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보도했다. 포르투갈은 현재 사업 활동 이외의 암호화폐 수익에 세금을 부과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통신은 “관련 규제 미비로 많은 암호화폐 회사를 끌어들였던 포르투갈도 대대적인 변화에 착수했다”고 평가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에 대한 논의가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CBDC가 각국 중앙은행에서 발행하는 디지털화폐인 만큼 일반 암호화폐보다 안정성이 높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크리스틴 스미스 미국 블록체인협회 이사는 블록체인 매체 블록웍스에 “테라 사태는 CBDC에 대한 논의를 가속화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면서도 “다만 CBDC 관련 기술이 발전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앞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올 3월 관련 미국 기관에 CBDC 연구를 촉구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