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 등의 직격탄을 맞아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했던 ‘고밸류(주가수익비율·PER) 성장주’에 대해 저가 매수세가 꿈틀대고 있다. 연초 대비 70% 이상 급락한 성장주들이 줄지어 등장하는 가운데 ‘더 떨어지기는 어렵다’며 ‘줍줍(저가 매수)’에 나서는 서학개미들이 부쩍 늘어난 것이다.
20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최근 6거래일간 서학개미들이 주로 사들인 종목은 팰런티어·코인베이스·플러그파워 등 현재 벌어들이는 이익 대비 주가가 비싼 이른바 ‘고PER’ 주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종목들은 최근 금리 인상의 직격탄을 맞아 모두 크게 하락한 바 있으며 일부 기업의 경우 연초 대비 주가가 최대 73% 가까이 내려앉았다.
일례로 팰런티어(PLTR)의 경우 군사정보를 분석하는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미 중앙정보국(CIA)과 미 연방수사국(FBI)이 주요 고객이라는 사실이 화제를 모으면서 주가가 급등했다. 하지만 올해 1분기 기대 이하의 실적을 발표하며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1분기 주당순이익(EPS)이 2센트를 기록하며 시장 눈높이였던 4센트의 절반 수준에 그쳤던 것이다. 이후 팰런티어의 주가는 줄곧 하락해 이달 11일에는 6.71달러까지 추락했다. 연초 대비 주가가 55.15% 떨어진 셈이다. 하지만 서학개미들은 지난 6거래일간 팰런티어를 553만 달러가량 사들이며 이 기간 미국 증시에서 열아홉 번째로 많이 사들였다.
연초 대비 73.14% 폭락한 코인베이스(COIN)에도 매수세가 몰렸다. 같은 기간 서학개미들은 코인베이스를 400만 달러가량 사들였다. 앞서 코인베이스는 ‘테라’ 사태로 비트코인 시장이 흔들리자 11일 하루에만 26.40% 폭락한 바 있다. 올해 초 251달러 선에서 거래되던 코인베이스는 19일 67.42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코인베이스처럼 가상자산에 간접투자하는 기업인 매러선디지털홀딩스(MARA)에도 서학개미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최근 6거래일간 서학개미들은 매러선디지털홀딩스를 590만 달러가량 집중 매수하며 순매수 16위까지 끌어올렸다. 매러선디지털홀딩스 역시 낙폭 과대 성장주로 최근 연초 대비 67.64% 하락한 10달러 내외에서 거래되고 있다.
이외에도 서학개미들은 미국 수소 연료전지 관련 기업인 플러그파워(PLUG)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19일 16.57달러에 거래를 마친 플러그파워에 대해 서학개미들은 지난 6거래일간 398만 달러를 사들였다. 플러그파워 역시 연초 대비 주가가 42.44%가량 하락하며 저가 매수세가 유입된 것으로 풀이된다.
‘고밸류 성장주’에 대한 저가 매수의 주체는 서학개미뿐만이 아니다. 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연초 대비 55.63%가량 하락한 ‘아크 이노베이션 상장지수펀드 (ARKK ETF)’에는 최근 투자금이 대거 유입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블룸버그는 이달 11일 급락장에서도 ARKK에 4500만 달러의 자금이 유입됐다고 밝혔다. ARKK는 줌비디오·코인베이스 등 대표적인 성장주에 투자하는 ETF다.
반면 애플(AAPL)이나 미국 주요 반도체주의 3배 레버리지 ETF 상품인 ‘디렉시온 데일리 세미컨덕터 불 3X’ 등에는 연초 대비 투자금이 오히려 줄어들었다. 최근 6거래일간 서학개미들은 애플을 5141만 달러가량 순매수했다. 올해 초(1월 3~10일) 애플을 1억 4263만 달러가량 사들였던 것과 비교된다. SOXL 역시 연초 4608만 달러에서 최근 2444만 달러로 매수금이 반 토막 났다.
문남중 대신증권 수석연구위원은 “비교적 낮은 가격에 주식을 매수한 후 중장기적으로 수익을 내려는 ‘역발상 전략’으로 보인다”며 “미국 경제는 디지털·플랫폼 기업에 의해 성장했기에 이러한 투자 전략은 유효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다만 문 연구원은 “탈코로나 시기에 접어들며 성장주 내에서도 옥석 가리기가 진행되고 있다”며 “성장 가능성이 뚜렷한 기업을 선별해 투자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