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유행이 안정 궤도에 들어서며 일상을 되찾은지 얼마 되지 않은 가운데 아프리카 풍토병인 ‘원숭이 두창’이 때 아닌 기승을 부리면서 긴장감을 키우고 있다. 이달 초 영국에서 첫 환자가 발생한 이래 통상적으로 원숭이 두창 감염이 보고되지 않았던 국가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세가 퍼져나가는 형국이다. 국제 통계 사이트 아워월드인데이터에 따르면 27일(현지시각) 기준 전 세계 22개국에서 400명이 넘는 '원숭이 두창' 환자가 발생했다.
원숭이두창은 천연두(두창)와 유사한 바이러스성 질환이다. 최근 세계보건기구(WHO) 발표에 따르면 전염성은 코로나19보다 낮지만, 치명률은 3~6% 내외로 전 세계 코로나19 치명률인 1.2%보다 3~5배 가량 높다. 발열과 오한, 두통, 근육통을 동반한 수포성 발진이 얼굴을 시작으로 전신에 퍼져 2주 이상 지속되는 것이 특징이다. 대부분 4주 이내 자연 회복되지만, 일부 환자들의 경우 중증으로 진행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문제는 원숭이 두창의 수포성 발진이 수두와 유사한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외형만 봐서는 다른 수포성 질환과 구별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아직 국내 감염 사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질병관리청은 입국자를 통한 국내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감시를 강화하고 있다. 의정부을지대병원 의료진들의 도움말로 원숭이 두창과 유사한 감염성 피부질환들을 살펴봤다.
◇ 성인형 수두, 합병증 발생률 높아 심하면 사망까지도
수두는 수두 대상포진 바이러스(VZV)에 의한 급성 감염질환이다. 피부병변에 직접 접촉하거나 비말 등 호흡기 분비물의 공기전파를 통해 감염된다는 특징을 갖는다. 수두에 감염되면 10~21일의 잠복기를 거친 후 가려움증을 동반한 발진이 얼굴, 팔, 다리 등 전신에 퍼진다. 1~2일이 지나면 붉은 발진이 염증성 물집(수포)으로 모습을 바꾸는데, 이때부터 피부병변에 전염력이 생기므로 격리해야 한다.
병변이 모두 딱지로 변하면서 자연치유된다. 성인의 경우 발열 및 전신 증상이 소아보다 심하게 나타나고 합병증의 빈도도 높다. 또한 임신 초기에 감염되면 선천성 기형이 생길 수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다행히 백신 접종으로 예방이 가능하다.
박경찬 의정부을지대병원 피부과 교수는 “수두는 공기 중 강한 전파력을 지니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접촉을 피해야 한다”며 “면역력이 낮은 경우 뇌수막염, 폐렴 등의 합병증 발생률이 높고, 이로 인해 사망에 이를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 대상포진, 흔하지만 방치하면 실명할 수도
수두를 앓은 사람도 방심은 금물이다. 면역력이 약해지면 몸속에 잠복해 있던 수두 대상포진 바이러스가 재활성화되어 피부 발진뿐 아니라 극심한 통증을 유발하는 ‘대상포진’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대상포진은 특정 부위에 국소적인 통증이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초기에는 피곤함, 발열, 몸살 등 전조증상을 보이다가 흉부나 허리와 같은 몸통 한쪽 부위에 가려움증, 통증을 동반한 띠 모양의 붉은 발진이나 수포가 생긴다. 조기에 적절한 치료가 이뤄진다면 항바이러스제와 같은 간단한 치료만으로 통증이 완화된다.
하지만 바이러스가 안면신경이나 청신경, 뇌수막까지 침투하면 안면마비, 이명, 뇌수막염이 발생할 수 있고, 눈 주위에 발생할 경우 실명까지도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치료 후에도 △바늘로 찌르는 느낌 △불에 타는 느낌 △만성통증 등 극심한 통증(대상포진 후 신경통)이 지속될 수 있으므로 유의해야 한다.
김형균 의정부을지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김형균 교수는 “대상포진에 걸리면 바이러스로 인해 신경세포가 손상되기 때문에 피부 발진이 사라진 후에도 신경분포를 따라 다양한 통증이 나타날 수 있다”며 “대상포진 후 신경통으로 발전시 만성적으로 통증이 지속되므로 발병 초기에 약물요법, 신경차단요법(신경치료) 등 다양한 치료를 통해 통증을 조절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농가진, 임의로 항생제 연고 바르면 오히려증상 악화
무더운 여름철에 걸리기 쉬운 ‘농가진’은 전신에 분포하는 모양이 원숭이두창과 흡사하다. 농가진은 전염성이 매우 높은 박테리아 감염성 피부질환으로, 소아와 영유아 사이에서 쉽게 전염된다. 세균이 감염돼 발생하는데, 무력증과 발열, 설사 등이 동반되기도 한다.
농가진은 주로 6세 미만의 영유아에서 발생한다. 발열, 설사를 동반한 크고 작은 물집이 전신 곳곳에 퍼지는데, 이때 두꺼운 딱지를 형성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패혈증이나 폐렴, 뇌수막염이 동반될 경우 사망할 위험도 있으므로 빠른 치료가 필요하다.
주로 농가진은 진물의 접촉에 의해 전파되는데 코와 입 주위, 팔, 다리에 작은 물집이나 붉은 반점으로 시작해 물집이 터지면서 두꺼운 딱지로 변하는 것이 특징이다. 림프선이 붓거나 발열, 인후통 등이 함께 나타나기도 한다.
박경찬 교수는 “농가진은 두창, 수두 등과 원인 및 감염경로는 전혀 다르지만 수포 등 피부병변 형태가 비슷한 편”이라며 “가정에서 보관하는 일반 항생제 연고를 임의로 바를 경우 내성 때문에 증상이 악화될 수 있으므로, 최대한 빨리 병원에 방문해 전문의의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