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영화 '파닥파닥'(감독 이대희)은 바다에 살던 고등어 한 마리가 어부에게 낚여 횟집 수족관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바다 출신 고등어의 이름은 파닥파닥, 같은 수조 놀래미가 지어준 이름이다. 파닥파닥은 보이지 않는 벽(유리)를 뚫고 바다로 돌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살고 싶고, 바다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죽을 위험을 무릅쓰며 탈출을 감행한다.
그런 파닥파닥을 지켜보는 놀래미, 올드 넙치, 줄돔, 농어, 도다리, 뱀장어 등 양어장 출신들은 이미 수족관에서 그들만의 규칙으로 질서정연하게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그중 가장 오랜 시간 수족관에 몸을 숨긴 올드 넙치는 그야말로 수족관의 독재자, 그의 눈에 파닥파닥은 자신이 만든 룰을 어기려 드는 방해꾼일 뿐이다. 그럼에도 파닥파닥은 수족관의 이들에게 바다로 나갈 수 있다 희망을 심어준다. 수족관 넘어 바다로 돌아가면 오징어 떼, 불가사리 심지어는 하늘을 나는 물고기도 만날 수 있다며 광활한 바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바다로 돌아갈 거란 당찬 희망과는 달리, 횟집 수족관 신세는 위태롭고 참혹하다. "비상! 비상! 죽은 척해!" 수조 속 일곱 마리 물고기는 횟감으로 선택당하지 않기 위해 죽은 척을 해야 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주방에서 잔인하게 죽어가는 물고기를 지켜봐야 한다. 언제 인간에게 선택돼 손님 상에 나갈까 한 시도 평온할 수 없는 것이 이들의 현실. 파닥파닥은 살기 위해 유리에 몸을 부딪히고, 튀어올라 탈출을 시도하고, 킹크랩 수조에 들어가 도움을 요청한다.
사실 ‘파닥파닥’이란 이름에는 무모한 도전을 계속하는 그의 움직임을 비꼬는 어감이 담겼다. 나가기 위해 유리에 부딪히고 기절하기를 반복하는 그를 본 놀래미가 "완전 죽으려고 파닥파닥하네!" 라고 말 한 것이 시초다. 놀래미의 이 대사 한 줄은 살기 위해 죽을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죽은 척을 해야 살 수 있는 수족관의 암담한 현실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파닥파닥 역시 살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쳐보지만 수조 속 물고기들 눈엔 죽고 싶어 안달 난 행동으로 비칠 뿐이다. 파닥파닥, 작은 물고기가 가볍고 빠르게 잇따라 꼬리를 치는 소리. 작고 아름다워야 할 누군가의 움직임 소리가 횟집 수족관에선 그 어떤 소리보다 잔혹하고 참담하다.
2012년 이 애니메이션이 처음 등장했을 때 순수하고 맑은 아동용 만화로 착각해 낭패를 본 관객들도 있었다고. 이들은 포스터 속 생명력 넘치는 고등어의 모습에 '귀여운 고등어의 바다 모험 이야기', '해양 생물들의 우당탕탕 어드벤처!', '니모를 찾아서' 같은 이야기를 기대했을 것. 바다에 미치도록 가고 싶었던 한 마리 고등어 이야기를 통해 잔혹한 실상을 담은 ‘파닥파닥’은 제13회 전주국제영화제 무비꼴라쥬상, 제16회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며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충격적인 비주얼과 스토리를 담고 있는 만큼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묵직한 무게감을 지니고 있음을 입증하는 수상이었다.
영화 속 OST는 작품의 몰입을 더한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2D씬과 OST '악몽(nightmare)', '용서해요'는 영화의 세련된 연출 방식 중 하나다. 특히 '용서해요' 속 '그 무엇도 우리를 막을 수는 없어요', '운명이 짓궂은 장난을 치네요, 바보처럼요' 라는 가사는 영화의 현실을 더욱 비참하게 만든다. 다채로운 연출 방식과 극의 몰입을 높이는 OST는 영화에서 느껴지는 바다같이 깊은 슬픔, 그리고 참혹함을 더한다.
수조 바닥에 몸을 숨겨 연명하던 올드 넙치, 결국 횟감으로 선택돼 도마 위에 오른다. 날카로운 칼이 넙치 위로 그늘을 드리우는 순간 고등어로 바꿔 달라는 손님의 요구가 들려온다. 그 덕에 올드 넙치는 다시 수족관으로 돌아가 목숨을 구제하지만 파닥파닥은 끝내 회 쳐져 손님 상에 오른다.
언제나 희망을 갖고 바다로 가고자 했던 파닥파닥은 인간의 한 마디에 목숨을 잃었다. 권위적이고 해방된 삶을 포기했던 올드 넙치는 다시 삶의 기회를 얻는다. 살고자 했던 고등어는 죽고, 탈출 시도조차 하지 않고 체념했던 넙치는 살았다. 뒤바뀐 운명, 그리고 운명을 뒤바꾼 인간의 한 마디는 둘에게 닥친 비극을 더욱 극적으로 끌어올린다. 사실 횟집 수족관 속 물고기의 삶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는 것이라는 점에서 또 하나의 아이러니다. 넙치는 살았지만, 결코 살았다고 할 수 없다.
◆ 시식평 -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라는 말은 '파닥파닥'을 위한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