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브로커'가 "과연 나는 태어나길 잘한 것일까?"라는 생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던진다. 그리고 "태어나길 잘했다"고 묵직하게 위로한다. 개봉 전부터 국내외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이 작품, 한 번씩 곱씹고 생각해 볼 만하다.
31일 오후 서울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브로커'의 언론배급시사회 및 기자간담회가 개최됐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배우 송강호, 강동원, 이지은(아이유), 이주영이 참석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브로커'는 베이비 박스에 아이를 놓고 간 엄마 소영(이지은)과 몰래 그 아이를 팔려고 한 상현(송강호)과 동수(강동원)가 만나 예기치 못한 특별한 여정을 그린 작품으로, 세계적인 거장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첫 한국 영화 연출작이다. 작품은 제75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하고 인간 존재를 깊이 있게 성찰한 예술적 성취가 돋보이는 영화에게 수여되는 상인 에큐메니컬상을 수상했다. 주연 배우 송강호는 이 작품으로 대한민국 역 상 첫 남우주연상의 주인공이 됐다.
고레에다 감독은 특유의 따듯한 시선으로 이야기를 전달했다. 각기 다른 사연과 상처를 지닌 인물이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 그리고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마음으로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깊은 위로를 전한다. 고레에다 감독은 이런 지점에서 한국어의 미묘한 뉘앙스를 캐치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배우들과 소통했다. 그는 "내가 한국어를 알지 못하는 부분에 배우들도 불안감을 많이 느꼈을 것"이라며 "촬영 시작 전에 손편지로 내 마음을 전달했고 현장에서도 밀도 있게 소통하고 의견 교환을 많이 했다"고 밝혔다. 이어 "송강호가 내가 했던 편집본을 항상 꼼꼼하게 봐주고 테이크마다 차이점을 많이 피드백 해줬다. 거기에 대해 신뢰를 많이 하고 의지했다"며 "크랭크인부터 크랭크업 때까지 그렇게 쭉 이어가면서 큰 도움을 받아 끝까지 완성할 수 있었다"고 공을 돌렸다.
베이비 박스를 둘러싼 이야기라는 점에서 한국의 실태와 정서를 알아가는 과정도 있었다. 고레에다 감독은 "입양 제도 등 사회적 배경의 이유가 있겠지만 일본에서 (아이가) 맡겨지는 수보다 한국에서 베이비박스에 맡겨지는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시나리오 준비하면서 입양제도에 관여한 변호사, 쉼터, 아이를 둘러싼 사회적 상황이나 현재 상황들에 대해 광범위하게 취재를 해나갔다"며 "그 취재 과정들이 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야기가 베이비박스라는 상자에서 시작되는 것은 고레에다 감독의 연출 의도가 숨겨져 있다. 그는 "수진(배두나)이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버리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아이를 안으면서 말한다. 그런데 수진이 처음에 안고 있었던 부정적 생각들이 이 영화에서 이뤄지는 2시간 안에 어떻게 달라지는지가 이 이야기의 핵심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처음 3가지의 박스를 생각했다"는 그는 "첫 번째 박스는 아이가 들어가는 작은 박스, 두 번째는 아이를 팔려고 하는 브로커가 타고 있는 차량, 그리고 그 브로커를 쫓는 형사의 차량이다. 세 번째는 선악의 경계선이 허물어진 주인공들의 관계나 심경의 변화를 담은 사회를 큰 박스로 봤다"고 점점 커져가는 박스의 크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배우들의 연기는 따스한 이야기를 더 빛나게 했다. 자신의 아이를 베이비박스 앞에 두고 갔다가 다시 찾아온 소영 역을 연기한 이지은은 이 작품이 첫 상업영화다. 그는 팍팍한 삶을 살아오며 벼랑 끝에 내몰렸지만 자신을 이해해 주고 감싸주는 상현과 동수를 만나면서 서서히 달라지는 모습을 인상 깊게 연기했다. 데뷔작부터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 후보까지 거론된 그는 "멋진 선배님들과 작업할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다. 어제 칸에서 입국했을 때부터 많은 분들이 환대해 주셔서 얼떨떨하고 설레는 마음이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이지은은 극의 절정이자 가장 가슴을 울리는 "태어나줘서 고마워"라는 대사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는 "시놉시스 단계에서 그 지점에서 눈물이 고였다. 막연하게 이 장면을 연기할 때 슬프게 연기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며 "순서대로 촬영을 하다 보니 마지막에 촬영하게 됐는데, 막상 그 현장에 갔을 때는 굳이 내가 슬프게 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었다. 듣는 사람에게는 슬플 수 있어도 내가 말에 힘을 줘서 슬프게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라 담담하게 했다"고 감정 연기에 대해 짚었다.
고레에다 감독은 작품의 핵심 주제이기도 한 이 대사에 대해 "영화 준비를 위한 취재를 하는 가운데 보육 시설 출신 분들을 만나면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줄곧 '내가 태어나길 잘한 것인가?'라는 의문을 품은 채 살아가고 있더라. 근본적인 불안을 안고 어른이 된 모습과 감정을 접했을 때 그 인생을 생각한다면 '그 책임이 과연 그 어머니에게만 있는 것인가' '나를 포함한 사회의 책임, 어른의 책임이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며 "그런 분들을 위해 한마디 할 수 있는 걸 생각해 보고 소영의 입을 통해 말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에는 직설적인 메시지의 대사를 잘 쓰지 않은 편"이라며 "그런 측면에서 동수가 불을 끄게끔 만들어서 어둠 속에서 그 대사가 울려 퍼지게 만들었다"고 의도를 설명했다.
이 대사를 받아들이는 극 중 인물들은 저마다 다양한 사연을 갖고 있다. 강동원이 연기한 동수는 고아원에 버려지고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교회의 직원으로 일하고 있지만 상현과 함께 몰래 아기를 파는 인물로, 소영을 보며 자신을 찾아오지 않은 어머니를 이해하는 인물이다. 단지 돈 때문이 아닌 새 부모를 찾아주기 위한 진심이 있다는 것이 이질적이지만, 동수이기에 이해되는 대목이다.
강동원은 "촬영하기 전에 보육원 출신 분들, 관계자분들을 만나서 대화를 나눴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두 가지가 있다"며 "보육원 관계자분들이 말하기를 어린 친구들은 보육원에 차가 오면 '혹시 자기를 데리러 온 게 아닌가' 기대를 한다고 하더라. 동수 역시 그런 마음으로 늘 엄마를 기다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보육원 출신 신부님과 대화가 무르익었을 때 꼭 하고 싶던 질문을 했다. '혹시 어머니가 안 보고 싶으시냐' 여쭤봤는데 그분께서는 지금 연세가 있으셔서 지금은 그런 감정은 남아있지 않는데 돌아가시기 전에 꼭 뵙고 싶다고 하더라. 나도 그런 마음을 관객들에게 꼭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송강호가 맡은 상현 역은 오래된 세탁소를 운영하는 평범한 소시민 같지만 빚 때문에 아이를 파는 일을 한다. 그럼에도 함부로 아이를 건네주지 않고 아이를 진심으로 키워줄 양부모를 찾는 자칭 선의의 브로커다. 송강호는 특유의 자연스러운 연기로 허술하면서도 인간적인 상현을 현실감 있게 그려냈다.
이번 작품이 일본 감독과의 첫 작업인 그는 "고레에다 감독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 차가운 현실을 보여주고 아름답고 따뜻한 휴머니즘으로 끝내는 구조라고 생각했는데 '브로커' 첫 장면을 보고 오히려 따뜻했다"며 작품의 의외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아기를 버리는 것이) 잔혹하고 잔인하고 차가운 행위이지만 아기가 처음 화면에 잡히게 했다. 고레에다 감독이 아기가 갖고 있는 소중함의 이미지를 (관객들에게) 심어주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따뜻하게 느껴졌다"며 "마지막으로 갈수록 냉정해지고 차가운 현실을 그대로 그림으로 보여줬다. 우리가 생각하는 따뜻함은 무엇인지, 따뜻함을 가장해서 살아가지 않는지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형사(이주영) 대사 중 '브로커는 우리가 아닐까?'라는 대사가 이 작품의 놀라운 지점"이라며 "작품이 생명을 다루면서 풀어가는 방식이 가슴으로 깊이 있게 받아들이도록 설계되고 연주되지 않았나 싶다. 일본과 한국을 떠나서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작품의 의미를 되새겼다.
고레에다 감독은 한국 배우들과의 작업에 만족해했다. 그는 "한국이나 일본을 나눠서 생각하지 않고 기본적으로 함께 작업해 보고 싶은 배우들이 한국에 많이 있었다. 긴 시간이 걸렸지만 함께 의기투합해서 이 영화가 실현된 것에 굉장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송강호가 이 영화의 출발점이었다"며 "송강호가 자상한 미소로 베이비박스의 아기를 안고 있지만 아기를 팔아버리는 신, 선악이 존재하는 송강호의 모습 담긴 신이 먼저 떠올랐다"고 강조했다.
'브로커'는 칸 국제영화제 통산 8회, 경쟁 부문으로는 총 6회 칸 영화제에 초청된 고레에다 감독에게 에큐메니컬상을 품에 안기고, 송강호에게는 한국 배우 최다 초청 기록(7번)과 한국 남자 배우 최초 칸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이라는 영광을 얻게 했다. 고레에다 감독은 "내 작품으로 배우가 상을 받은 것이 두 번째"라며 "난 삐딱한 성격이라 내가 상을 받으면 '어디가 좋았던 걸까'' 정말 좋았던 걸까'라는 생각을 한다. 순수하게 나에 대한 평가를 누리지 못한다"고 털어놨다. 이어 "반면 배우가 칭찬받으면 마음껏 기쁨을 누린다. 그래서 이번에도 가장 기뻤다"며 "이렇게 진심으로 기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기쁨을 누렸는데 이런 경험을 처음이다. 내가 뭔가를 했다기보다는 송강호가 그동안 이룬 성과가 아닐까 싶다"고 축하했다. 오는 6월 8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