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단독]C등급 건설사 '돈 가뭄' 해갈 기대…13兆 출자 부담은 걸림돌

■ 정부 '건설전문 금융기관' 검토

정책지원금 부족에 해외수주 급감

건설銀 현실화땐 보증 확보 수월

尹 공공효율화 기조와 거리 멀고

빠듯한 재정에 단기 추진 '불투명'





2일 서울경제가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실에서 단독 입수한 ‘건설금융 혁신방안’ 보고서에는 만성적인 자금난에 허덕이는 건설 업종에 대한 정부의 고민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국토교통부가 발주하고 한일회계법인이 작성한 이 보고서의 요지는 건설은행처럼 건설금융을 전문적으로 하는 금융기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제도 금융권으로부터 자금 마련이 힘들고 해외 수주 경쟁력도 추락하고 있는 열악한 건설 업체의 현실을 바꾸려면 건설은행과 같은 도우미가 필요하다고 결론 냈다. 돈 가뭄에 원자재난까지 겹친 건설 업체로서는 정책자금 지원에 대한 요구가 커질 대로 커진 상황이다. 하지만 13조 원에 달하는 대규모 정부 출자가 필요한 점은 건설은행 설립 추진의 부담으로 꼽힌다.

일단 보고서를 보면 건설은행 설립 추진의 배경이 잘 나타나 있다. 중소 건설 기업의 신규 자금 조달 수단 중 은행과 정책자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57.2%(2021년 기준)에 그쳤다. 제조업(88.1%), 서비스업(80.7%) 대비 크게 낮다. 사채 비중은 6.9%로 여타 업종 대비 높았다. 사채 조달 이유를 묻는 질문에 기업들은 ‘대출 한도·담보 부족 등으로 금융권 대출이 어렵다'는 점을 꼽았다. 평균 사채 차입 금리는 22.1%였다. 제조업(2.78%), 서비스업(2.18%) 대비 8~10배 높아 살인적 수준이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다.



보고서에서는 정책자금 지원의 부족으로 해외 수주에서도 우리 건설 업체들이 불리한 위치에 서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건설 업체의 해외 매출은 2016년 339억 달러에서 2019년 246억 달러로 27.4% 줄었다. 점유율도 같은 기간 7.2%에서 5.2%로 쪼그라들었다. 반면 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은 25.4%(2019년 기준)의 점유율로 해외 건설 수주 1위에 올랐다. 그만큼 정책금융의 지원이 해외 수주에 큰 힘이 된다는 얘기다.

관련기사



기업들은 건설은행의 설립 추진을 반겼다. 만약 현실화되면 자금 조달 문제 외에도 해외로 진출할 때 필수인 건설 보증을 확보하기 수월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신용도가 높은 대기업 계열 건설사들보다는 C등급 이하 신용도를 기록하고 있는 중견·중소 건설사들이 정책의 수혜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 건설 업계의 한 임원은 “중견·중소 건설사의 경우 낮은 신용도가 문제가 돼 수주전에서 고배를 마시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2014년 중견·중소 건설사를 위한 공동보증제도를 도입했지만 보증에 나서야 하는 금융기관들이 프로젝트의 사업성보다는 개별 기업의 신용도를 중시하는 관행이 고쳐지지 않아 무용지물이었다”고 전했다. 다른 관계자는 “보증 등 금융 측면의 문제 외에도 법률·인사 등 종합적인 경쟁력 측면에서 우리 기업이 모자라는 게 현실”이라면서도 “해외 진출의 발목을 잡아왔던 해외 보증 문제가 (건설은행 설립으로) 해결될 수 있다면 대환영”이라고 말했다.

물론 기존에도 건설업을 지원하는 공공기관이나 단체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건설공제조합·전문건설공제조합 등 건설 관련 공제조합이 있다. 하지만 자금 조달 능력 부족으로 건설 업체들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나 해외 건설 수주를 지원하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주택금융공사(HF) 등도 주택 또는 특정 사업에 한정된 보증 및 대출만을 제공하는 한계가 있다. 건설금융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신규 금융기관, 특히 건설 산업 전반의 여·수신과 보험까지 가능한 건설은행 설립을 정부가 검토하고 있는 이유다.

다만 정부에서 건설은행 설립을 단기에 추진하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고서는 당장 정부에서 최대주주 요건을 갖추기 위해 최소 12조 8954억 원가량을 출자해야 한다고 봤다. 이 같은 출자 규모는 3개 건설 관련 공제조합의 자본을 합친 것이다. 보고서에서는 출자 부담 감소 방안으로 △조합원 대상 우선주 발행 △감자 후 출자 전환 △현물출자 등을 제안했다.

재정 여력이 빠듯한 점도 문제다. 윤석열 정부는 62조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마저도 53조 3000억 원 규모의 초과 세수를 근거로 잡았다. 사실상 ‘외상 추경’인데 세금이 적게 걷히면 적자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이런 판국에 건설은행 설립에 따른 막대한 출자금 마련은 언감생심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공공 부문 효율화를 내세우고 있는 이번 정부의 국정 기조와도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경기변동에 취약한 건설업의 특성상 부실 대출이 국고로 전가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권혁준 기자·이수민 기자·노해철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