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동구 둔촌동 ‘둔촌주공(올림픽파크 포레온)’ 재건축 조합이 서울시의 중재안을 받아들였지만 사업이 제 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남아 있다. 시공사업단(현대건설·HDC현대산업개발·대우건설·롯데건설)은 조합이 중재안 수용 의사를 밝히기 이틀 전인 지난달 31일 중재안을 받아들일 법적·절차적 근거가 부족하다며 사실상의 거부 의사를 서울시에 전달했다. 조합은 소송 취하와 총회 결의 등을 통해 공사를 재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고 시공단은 기존의 완강한 자세를 풀어야 국내 최대 규모의 재건축 사업 시계가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조합, 중재안 수용 배경은=증액된 공사비 인정을 두고 수개월간 접점을 찾지 못하다 결국 공사 중단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은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 공사 중단 이후에도 조합과 시공단은 평행선을 달리며 협상 자체가 어렵던 차에 조합이 갑작스럽게 한 발 물러서며 서울시 중재안을 수용한 이유로는 공사 기간 연장에 따른 금전적 손실이 우선 꼽힌다. 또한 최근 들어 폭등한 건설 원자재 가격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그동안 조합이 대여한 사업비는 약 7000억 원으로 올 8월 24일이 만기다. 조합은 만기 연장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사업비를 대여한 대주단은 현 대치 국면이 해소되지 않는 한 만기 연장은 어렵다는 입장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시공단 또한 그동안의 요구 사항을 조합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공사 정상화를 위한 협의에 진전이 있을 수 없으며 이에 따라 대출 보증이 어렵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조합이 단독으로 채무를 변제할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전무한 상황에서 서울시 중재안 수용은 조합에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극심해지고 있는 원자재 가격 상승 또한 중재안 수용의 배경으로 지목된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통계에 따르면 건설 현장에서 주로 쓰이는 주요 자재의 가격 변동을 나타내는 ‘건설공사비지수’는 4월 기준 145.16으로 지난해 4월(128.65) 대비 12.8% 올랐다. 건설공사비지수의 주요 조사 품목은 철근, 레미콘, 벽돌, 알루미늄 거푸집 등이다. 신한은행 부동산자문센터장을 지낸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는 “사업 장기화에 따른 금융 부담과 원자재 값 상승으로 인해 조합 측이 협상에 대한 압박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강경한 시공단, 협상 나설까=시공단은 조합의 중재안 수용 표명이 있기 이틀 전인 지난달 31일 서울시 중재안을 받아들일 법적·절차적 근거가 부족하다며 사실상의 거부 의사를 서울시에 전달했다. 입장문에서 시공단은 조합이 서울동부지법에 제기한 ‘공사 도급 변경 계약 무효 확인 소’ 및 올해 4월 총회에서 의결한 ‘공사 계약 변경의 건’ 의결을 우선 취소해야 공사 재개에 대한 계약적·법적 근거를 확보할 수 있으므로 서울시 중재안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서울시 중재 및 조합과의 협상에 나서고 있는 시공단 관계자는 서울경제와의 통화에서 “시공단은 기존 계약서에 의거해 52%가량의 공정을 진행했는데 조합이 공사 근거가 되는 법적 계약을 무효화한 상황에서 공사를 재개할 수는 없다”며 “소송 취하 및 계약 무효 총회의 재무효화 등 조합의 선행 조치가 있어야 조합과의 협상 및 공사 재개 가능성이 열린다”고 말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공사비를 아무런 대가 없이 선투입한 상황에서 법적 보장 없이 시공단이 선뜻 중재안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관건은 조합 총회를 통한 계약 취소 조치 무효화에 있다”고 진단했다.
◇관건은 중재안 이행 시기 될 듯=서울시가 제시한 중재안을 조합이 큰 틀에서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나타내면서 논의가 진전될 가능성이 열렸지만 결국 관건은 중재안에 명시된 조합 측 이행 사항의 이행 시기에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중재안에는 시공단이 요구하는 계약 무효 소송 취하 등의 내용이 담겼지만 조합은 시공단이 공사 재개에 나선 후 이를 이행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 대표는 “조합과 시공단 모두 한 발짝 물러서 사태 진전을 위한 여지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