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김해수·정용진·션도 '이것' 줍줍하고 인증샷 남겼다 [지구용리포트]

■ MZ 트렌드 된 친환경활동

땅에 묻히고 바다 흘러들어간 쓰레기

결국 다시 식탁으로 돌아와 인류 위협

환경 보호 '쓰줍인' 게시물 1만개 넘어

'플로깅' '비치클린' '에코산행'도 유행

"생산단계부터 변화" 근본해결 목소리도

쓰줍인 리더 비키(맨 앞)와 회원들. 집 근처에서 홀로, 또는 도심에서 함께 쓰레기를 줍고 독서 모임 등을 통해 환경에 대한 시각을 공유하다 보니 끈끈한 전우애마저 생겨났다. 사진 제공=쓰줍인쓰줍인 리더 비키(맨 앞)와 회원들. 집 근처에서 홀로, 또는 도심에서 함께 쓰레기를 줍고 독서 모임 등을 통해 환경에 대한 시각을 공유하다 보니 끈끈한 전우애마저 생겨났다. 사진 제공=쓰줍인




“반려견 ‘감자’와의 첫 산책 후 길에 그렇게 쓰레기가 많은지 처음 알게 됐어요. 감자는 눈에 보이는 것을 물고 잘 놓지 않는 성격이라 길가의 쓰레기도 물고는 놓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어요.”



‘쓰레기를 줍는 사람들(쓰줍인)’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됐다. 쓰줍인 리더 박현지씨(활동명 ‘비키’)는 2020년 겨울 반려견을 위해 길가의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고 금세 뜻 맞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현재 쓰줍인의 인스타그램 팔로어는 2800명 이상. 해시태그(#) ‘쓰줍인’으로 검색되는 게시물도 1만 개가 넘는다.

지난해부터는 오프라인 쓰줍 모임이 시작돼 현재 서울·부산·제주·경기도 각지와 경상도 양산·진주·구미까지 범위가 넓어졌다. 쓰레기를 줍는 모습을 보고 “좋은 일 하신다”고 격려해주는 생면부지의 행인들, 근처의 쓰줍인을 보고 담배꽁초를 슬그머니 담뱃갑에 집어넣는 흡연자의 뒷모습에서 힘을 얻기도 한다.

부산에서 모인 쓰줍인들. 사진 제공=쓰줍인부산에서 모인 쓰줍인들. 사진 제공=쓰줍인


박씨는 쓰줍인을 “소셜미디어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온라인 환경보호 커뮤니티”라고 정의한다. 다양한 이유로 쓰레기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쓰줍인들은 자체적으로 비거니즘·환경 독서 모임과 스터디를 통해 시야를 넓혀나가고 있다. 쓰레기와 환경에 대해 비슷한 시각을 공유하는 이들이 뭉쳐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모임들이다. 박씨는 “다양한 온·오프라인 활동을 하다 보니 서로 끈끈한 전우애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과거의 쓰줍은 봉사활동 같은 특별한 행사 때나 하는 일로 여겨졌다. ‘쓰레기’의 이미지 탓에 ‘고생스러운 일’, 심지어 ‘더러운 일’이라는 시각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기후 위기의 심각성에 눈을 뜬 MZ세대들은 쓰줍을 조금 다르게 받아들인다. 누구나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일, 자랑스러울 뿐만 아니라 인스타그램에 인증샷을 올릴 정도로 ‘힙한’ 일이 된 것이다.



이 같은 인식의 변화는 ‘플로깅’이라는 트렌드와도 연결된다. 플로깅은 ‘이삭줍기’를 뜻하는 스웨덴어 ‘플로카 우프(Plocka upp)’와 영어 ‘조깅(Jogging·달리기)’을 합친 말이다. 건강을 위해 달리면서 쓰레기를 줍는다는 의미로 2016년 스웨덴에서 시작해 지금은 전 세계적인 트렌드가 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2·3년 동안 배우 김혜수·이시영·박진희, 가수 션,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등이 플로깅에 동참하면서 붐이 이어지고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플로깅’으로 검색되는 10만여 개의 한글 게시물 중에는 운동복 차림으로 쓰레기 봉투를 들고 홀로 또는 또래 친구들과 뛰는 인증샷이 그득하다.

불과 한두 시간 동안 주운 담배꽁초와 각종 쓰레기. 사진 제공=쓰줍인불과 한두 시간 동안 주운 담배꽁초와 각종 쓰레기. 사진 제공=쓰줍인


플로깅이 주로 도심이나 거주지 근처에서 흔하게 이뤄진다면 바닷가에서는 ‘비치클린(Beach clean)’이 성행하고 있다. 서핑을 즐기는 서퍼도, 바닷가를 산책하는 여행객들도 종종 발걸음을 멈추고 해변의 쓰레기를 줍는다. 바닷가에서 주운 쓰레기로 액세서리나 예술품을 만드는 ‘비치코밍’도 유행의 한편을 차지했다.

플로깅·비치클린에 이어 등산을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에코 산행’도 유행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유행은 길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쓰레기, 땅에 묻히고 바다로 흘러간 쓰레기가 결국 인간에게 되돌아오기 마련이라는 현실적인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예를 들어 전국에서 버려지는 담배꽁초의 수는 환경부 추산 매일 1246만 개에 이른다. 담배 필터의 주성분은 자연 분해에 최소 10년이 걸리는 플라스틱(셀룰로오스 아세테이트)이다. 이로 인해 하루 최대 0.7톤의 미세플라스틱이 바다로 유입되며 미세플라스틱을 먹은 물고기들은 다시 사람들의 식탁에 오른다. 이런 식으로 인간이 섭취하는 미세플라스틱의 양은 매주 신용카드 한 장 분량에 달한다. 이제 미세플라스틱은 수돗물, 살아 있는 사람의 폐, 임산부의 태반에서조차 검출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사람이 쓰레기를 줍는다 한들 한계는 분명하다. 담배 필터를 비롯한 플라스틱 제품은 애초에 미세플라스틱 걱정이 없는 생분해 소재로 만들고 다양한 소재가 섞여 재활용이 어려운 화장품 용기는 단일 소재로 제작하는 등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이유다. 쓰줍인과 플로거들, 환경 단체들은 “쓰레기 발생을 획기적으로 줄이려면 생산 단계에서부터 변화가 필요하다”며 생산자인 기업과 정책을 책임지는 정부·국회를 향해 점차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유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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