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싫어하는 보수적인 조직 문화와 주요 현안에 대한 언급을 꺼려 ‘한은사(韓銀寺)’로 불렸던 한국은행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서 8년 동안 근무했던 이창용 총재가 다양한 소통 방식을 한은에 접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총재가 취임하고 50여 일 동안 한은에는 새로운 회의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전례 없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등장했다.
먼저 한은은 매주 주요 경제 현안을 주제로 ‘서베일런스 미팅(surveillance meeting)’을 진행하고 있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자리로 총재가 일했던 IMF에서 따온 방식이다. 보안이 필요한 내용을 다루다 보니 다른 회의체와 달리 부서장급 임직원으로 참여가 제한돼 있다. 추후 팀장급까지 참석 대상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지금까지 기준금리나 물가 등 주요 현안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서베일런스 미팅에 참여했던 한 직원은 “참석자들이 예상외로 의견을 적극적으로 말해서 내심 놀랐다”라고 말했다.
타운홀 미팅도 새로 생겼다. 2일 처음 진행된 타운홀 미팅은 ‘경영 인사 혁신 방안’을 주제로 열렸다. 한은 조직 전체가 알아야 하거나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비정기적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직원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이 역시 주제에 제한이 없다. 2주에 한 번씩 열렸던 집행 간부 회의는 참석자를 늘려 확대 운용하고 있다.
그동안 한은에서 볼 수 없었던 개인 의견을 내는 공간도 만들었다. 금융·경제 주요 현안에 대한 임직원 분석과 견해를 담은 ‘블로그’를 운영하기로 한 것이다. 첫 타자로 한은 핵심 부서를 이끌고 있는 홍경식 통화정책국장과 김웅 조사국장이 나섰다. 한은 임직원이 개인적인 의견을 공개하는 것 자체가 드문 일이지만 통화신용정책을 총괄하는 통화정책국장이 금통위 기준금리 결정에 대해 언급하는 것도 이례적인 일이었다. 특히 홍 국장은 통화정책을 숙제로 비유하며 화제를 모았다. 이와 같은 블로그 역시 IMF에서 주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IMF는 임직원의 개인적인 의견을 낼 수 있는 별도 홈페이지를 운영 중이다.
총재에 직접 민원을 제기할 수 있는 창구도 만들었다. 매주 금요일 4시부터 5시까지는 ‘총재와의 대화’가 진행된다. 한은 직원은 누구나 혼자 또는 여럿이서 총재를 만나고 싶다고 신청할 수 있다. 이 총재는 한 팀당 20분씩 매주 세 팀씩 만난다. 주제도 제한이 없다. 누가 총재를 만났는지,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비밀에 부친다. 직접 만나는 것이 어렵다면 총재만 볼 수 있는 익명 게시판을 이용할 수 있다. 총재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여건이 조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이 총재 스스로도 조직에 변화를 주려고 한다. 지난달 16일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만나고 나온 자리에서 한은이 여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빅스텝(기준금리 0.50% 인상)’에 대해 “배제할 단계가 아니다”라고 발언해 시장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후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에 참석해 “커뮤니케이션을 조심하겠지만 직접적으로 얘기한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서로 간의 소통 방식을 이해했으면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알고 지냈던 삼성전자 임원에게 직접 연락해 만났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이 총재는 한은에 얽매이지 않고 필요하면 외부 인사도 적극적으로 만나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은 측은 삼성전자 임원과 만난 것도 반도체 경기와 환율 등 경기 현안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전했다. 다만 늘어나는 회의에 조직 피로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 총재가 취임하고 처음 단행되는 7월 정기 인사에서 조직 개편이 함께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이 총재는 11일 진행되는 한은 창립기념식에 참석해 조직 개편 방향 등을 언급할 것으로 보인다.
※ ‘조지원의 BOK리포트’는 국내외 경제 흐름을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도록 한국은행을 중심으로 경제학계 전반의 소식을 전하는 연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