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심상찮은 전쟁 후폭풍…식량위기 악몽의 재현[윤홍우의 워싱턴 24시]





“옥수수가 없다면 나라도 없다”

지난 2007년 멕시코 거리에 나붙은 시위 문구입니다. 당시 옥수수 가격 폭등으로 인해 멕시코의 주식인 또르띠야의 가격이 30% 이상이 올랐는데요. 참다 못한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왔습니다.



이른바 ‘또르띠야의 난’을 불러온 건 미국의 바이오 에탄올 확대 정책이었습니다. 옥수수를 원료로 하는 바이오 에탄올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정작 먹을 옥수수가 모자라게 된겁니다.

당시 멕시코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던 것은 물론이고, 옥수수 값이 인플레이션을 부추기면서 멕시코 채권과 화폐가치까지 흔들렸습니다. 옥수수 때문에 나라가 휘청거린 겁니다

우크라이나 남부 흑해 해협을 봉쇄한 러시아 해군/자료=워싱턴포스트(WP)우크라이나 남부 흑해 해협을 봉쇄한 러시아 해군/자료=워싱턴포스트(WP)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가 전 세계에 초유의 식량위기를 불러오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우크라이나는 세계적인 밀, 옥수수, 해바라기유의 수출 국가인데요. 유엔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미국, 캐나다, 프랑스에 이어 세계 5위의 밀 수출국입니다. 중동의 레바논의 경우 수입하는 밀의 90% 이상이 우크라이나산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현재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은 러시아 해군에게 틀어막힌 상태입니다. 우크라이나 흑해의 주요 항구인 오데사가 봉쇄된 상태구요. 오데사엔 2000만톤~2500만톤의 곡물이 대기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는 사이 곡물 수입 의존도가 큰 가난한 국가들의 식량 부족 사태가 시작되고 있는데요. 유엔 산하 기구인 세계식량계획(WFP)과 식량농업기구(FAO)가 세계적인 식량 위기가 임박했다고 경고했다.

문제는 이 식량 위기가 신흥국들의 심각한 사회적 정치적 분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겁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파장이 어디까지일지 가늠이 되기 힘든 수준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실제 지난 2007년 멕시코에서 벌어진 ‘또르띠야의 난’은 일부 국가의 정권 교체로까지 이어지는 도화선이 됐습니다. 당시에 옥수수 가격이 폭등하자 주요 곡물 수출국 농부들이 이전에 밀을 재배하던 땅에 옥수수를 심기 시작했는데요. 그 여파로 2008년 밀 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합니다.


주식인 밀 가격이 폭등하자 아르헨티나. 인도, 카자흐스탄, 러시아 같은 나라들이 곡물 수출 금지령을 선포했는데요. 이같은 폐쇄적인 정책은 식량 위기를 더욱 부채질 했습니다. 당시에 전 세계 37개국에서 기아 시위가 발생했구요. 이렇게 시작된 세계 식량위기는 중동 국가들의 반정부의 시위 운동인 2010년 ‘아랍의 봄’ 사태로까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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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당장 가장 큰 피해가 우려되는건 아프리카와, 중동 국가들입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합쳐서 세계 밀 수출의 30%를 차지하는데요. 여기서 생산하는 대부분의 밀이 이집트,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터키, 예멘 등으로 수출됩니다. 당장 이들 국가들이 식량 위기로 인해 사회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까. 식량 위기 때문에라도 우크라이나 문제를 어떻게든 이제는 해결해야 한다 이런 목소리가 확산하고 있습니다.

서방 진영에서 이에 대한 해법이 몇가지 제시되고 있는데요. 집중적으로 논의되는건 러시아가 봉쇄한 흑해를 국제 연합 함대로 뚫자는 방안입니다. 이른바 국제 연합 함대를 구성해서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함을 호위하자는 건데요.

최근 구원투수로 나선건 바로 터키입니다. 흑해의 관문인 보스포루스 해협 통제권을 가진 터키가 유엔의 후원을 받아서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을 위한 호위 함대를 구성하겠다고 나섰는데요. 이를 위한 터키, 우크라이나, 러시아, 유엔 간의 4자 회담이 조만간 열릴 예정입니다

또 하나의 방법은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가 아니라 인근의 유럽 국가 항구로 곡물을 옮겨서 수출하는건데요. 예컨대 폴란드를 통해서 발트 3국 항구로 우크라이나 곡물을 보내고 여기서 다시 수출을 하자는 겁니다. 다만 육로 운송으로 옮길 수 있는 양이 제한적이고 화물을 옮기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런 논의 과정에서 러시아가 어떻게 나올지도 여전히 큰 변수입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현재 식량을 볼모로 서방 진영과 협상을 하고 있는데요. 서방에서 대러 제재를 해제 한다면 러시아가 식량과 비료를 대거 수출하고 흑해에서 우크라이나 선박의 곡물 운송 문제도 해결해 주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는 서방 진영에서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카드로 보입니다.

이런 교착 상태 속에서 세계 식량위기는 벌써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이미 있습니다. 앞서 유엔 세계식량계획(WFP) 사무총장은 "앞으로 몇 달간 식량 위기와 관련해 참사 이상의 참사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는데요. 과연 이 전쟁의 끝이 어디일까요. 오늘 윤홍우의 워싱턴 24시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불러온 식량 위기를 한번 짚어 보겠습니다.

워싱턴=윤홍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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