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성공한 팬도 카밀라(이만 벨라니)를 이길 수 없다. 마블 유튜브, 팬아트, 각종 포스터와 굿즈까지 모으는 일명 '마블 덕후' 카밀라는 마침내 전 세계를 구할 히어로가 된다. MCU 세계관의 열렬한 팬이라면 이 소녀의 성장을 지켜보며 미소 짓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이국적인 배경과 설정, 여성 캐릭터들의 연대는 영화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미즈 마블'(감독 아딜 엘 아르비,빌랄 팔라)은 어벤져스와 캡틴 마블(브리 라슨)의 열렬한 팬이자 히어로를 꿈꾸는 16살 카말라가 슈퍼 파워를 얻게 되면서 히어로 '미즈 마블'로 거듭나는 이야기다. 카밀라는 자신만의 상상 속에서 세상을 구하는 꿈을 펼치는 평범한 소녀지만 어른들의 눈엔 그저 학업에 관심 없는 괴짜일 뿐이다. 친구들에게까지 은근한 무시를 당하는 카밀라, 보장된 진로 따위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그에게도 꿈을 이룰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온다. 오빠의 약혼식 물건이 담긴 할머니의 택배 상자에서 우연히 발견한 뱅글 팔찌가 슈퍼 파워를 가져다 준 것. 카밀라는 히어로로서 흥분으로 가득한 인생 2막을 연다.
해당 시리즈는 마블 역사상 최초의 무슬림 여성 히어로를 다룬다. 덕분에 배경부터 의상, 인물까지 지금껏 마블 시리즈에서 보지 못한 새로운 볼거리로 가득하다. 파키스탄계 미국인 카밀라가 이제껏 마블 시리즈와는 또 다른 분위기의 시리즈를 탄생시킨 것. 무슬림 사원에서 예배드리는 모습부터 파키스탄 전통의상까지 이국적인 감성이 물씬 풍겨 온다.
작품은 단순히 히어로물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한 소녀가 겪는 정체성 혼란과 아이의 성장담을 통해 특별함, 그리고 보편적인 이야기를 동시에 내포한다. 카밀라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님과 주변의 시선으로 인해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 빠진다. 그런 카밀라에게 유일한 탈출구는 상상과 공상이다. 엄마의 잔소리가 시작되면 창밖을 바라보며 세상을 구하는 상상을 펼치고, 불안한 자아가 자신을 덮칠 땐 캡틴 마블을 떠올리며 기분을 환기한다. 이러한 설정은 괴짜라 분류됐던 세상 모든 10대를 대변하는 이야기 구성으로 멀게만 느껴졌던 슈퍼 히어로와의 거리를 한층 좁히는 데 기여한다. 이제 마블 히어로는 신적인 존재로 구분되기 보다 누구든 꿈꿀 수 있는 영웅으로 현실성을 더하게 됐다.
뿐만 아니라 '미즈 마블'은 첫사랑, 친구 관계, 가족과의 갈등까지 사춘기 소녀가 겪을 법한 모든 성장 소재를 다 다룬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전학생을 보고 첫눈에 반하고, 자신을 좋아하는 친구의 애정을 그저 우정으로 생각하는 카밀라 모습은 여느 10대 소녀와 다를 바 없다. 이처럼 아이가 겪는 소소한 일상, 그리고 세상을 구할 히어로가 되어가는 격변 사이 절묘한 전개는 공감과 대리만족 두 마리 토끼를 가져다준다.
극 중 카밀라는 올해 최대 코스프레 대회 어벤져콘에 참석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아빠와 함께 헐크 분장을 해야 콘서트에 가는 것을 허락해 주겠다는 부모님의 어린애 취급을 극복해야 하고, 대회에서 우승하기 위해 코스튬도 가장 멋지게 소화해야 한다. 굳은 의지에도 상황은 그를 도와주지 않자 카밀라는 친구 부르노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저지시티에 사는 외국 소녀가 세상을 구한다니, 솔직히 말도 안 되지". 그런 카밀라를 유일하게 믿어주는 친구 브루노, 그는 따뜻한 위로를 통해 카밀라의 마음에 작은 불씨를 지핀다.
"왜 안돼? 넌 카밀라 칸이잖아. 세상을 구하고 싶어? 그럼 세상을 구해!"
대망의 어벤져콘 당일, 카밀라는 부모님의 따가운 눈총을 따돌리고 무사 도착하는 데 성공한다. 마침내 코스플레이 무대 위에 선 카말라. 터져 나오는 카메라 플래시에 압도갑을 느껴 주춤한 순간 팔찌에서 비롯된 슈퍼 파워가 현장을 장악한다. 강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옴과 동시에 신체가 늘어나는 능력을 갖게 된 카밀라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엄청난 힘을 갖게 된 것. 팔찌가 지닌 비밀은 가족 저녁 식사 시간 아빠의 말을 통해 유추 가능하다. 카밀라의 아빠는 외할머니가 어린 시절 겪은 기묘한 사건을 마치 무용담을 읊듯 이야기한다. 여기에 뱅글 팔찌의 주인이 증조할머니 아이샤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슈퍼 파워를 둘러싼 비밀이 하나씩 그 윤곽을 드러낸다. 증조할머니를 둘러싼 흉흉한 소문까지 더해져 뱅글 팔찌를 둘러싼 한 집안 여성들의 연대와 갈등이 분명해지기 시작한다.
사실 미즈 마블 시리즈의 다양성은 단순히 최초의 무슬림 여성 히어로를 다루는 것을 넘어 여성 캐릭터들의 깊은 연대 서사가 의미를 더하는 작품. 슈퍼 히어로 카밀라 뿐만 아니라 그의 친구 나키아 역시 현실에 안주하기 보다 모스크 이사회에 출마하며 적극적인 여성의 태도를 보인다. 누구보다 갑작스레 히어로가 된 카밀라가 혼란스러워할 때 나키아는 그의 가장 옆에서 용기를 북돋아 준다.
"난 평생 너무 백인 같다거나 외국인 같다는 취급을 받았어. 처음엔 사람들 입을 다물게 하려고 히잡을 썼지. 근데 생각해 보니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증명할 필요는 없더라."
애니메이션같은 가벼운 연출은 아쉬움을 남긴다. 기존 마블 시리즈의 웅장하고 화려한 화면 효과를 기대한다면 아쉬운 작품으로 느껴지기 쉽다. 카밀라의 에너제틱 한 슈퍼파워라든가, 팔찌로부터 힘을 얻는다는 설정은 그간 마블 영화와 분명한 차별점을 만든다. 웅장함보다는 유쾌함을 선호하고, 마블 코믹스의 만화적인 느낌을 최기한다면 음미해 볼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시식평 : 더 거대해진 마블 세계관, 다양화의 문을 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