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동구 성수동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1970년대부터 신발을 만드는 장인들이 몰려들어 ‘수제화 동네’로 불렸던 곳은 젊은 이들이 좋아할 만한 카페들이 즐비하고 4차산업 관련된 아이템으로 창업한 청년들의 사무실도 많다.
중장년층과 대학생, 직장인들로 붐비는 성수동에는 오래전부터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상점들이 있다. 바로 수제화 전문점들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대부분의 소상공인들이 쓰러진 가운데 수제화 거리 역시 직격탄을 맞은 곳 중 하나다.
19일 수제화 거리에서 만난 박동희 성동제화협회 회장 겸 한국소공인협회 회장에 따르면 2019년까지 성수동에는 1800여개의 수제화 전문점이 있었지만 코로나19 장기화로 사람들이 외출을 자제하면서 신발산업에도 불황이 찾아와 현재는 200개 정도만 남아 있다. 최근 3년 사이 수제화 전문점 88% 가량이 없어진 것이다.
30년째 수제화를 만들고 있는 양성석 가벵양 대표는 이제 거리두기 완화로 사람들의 외출도 늘게 돼 신발수요도 증가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양 대표는 10여년 전 가벵양이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성수동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성수동 수제화가 쇠락의 길을 가고 있는데 한국 수제화 산업의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는 수제화 거리가 없어질 위기에 처해 있다”며 “수제화는 배워놓으면 평생 일을 할 수 있는 기술인데 당장 큰돈을 못 벌다 보니 젊은 사람들이 배우려 하지 않는다”고 실정을 전했다.
지금 성수동 수제화 거리는 더 이상 명맥을 이어갈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수제화를 배우려는 청년들은 없고 기존의 수제화 소공인들은 고령화 되고 있어 생산성도 떨어지고 있다.
수제화 거리에서 만난 수제화 소공인들의 공통된 목소리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이다. 특히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코로나19 피해 보상에서 소공인들은 빠져 있다는 게 가장 큰 불만이다. 박동희 성동제화협회 회장(한국소공인협회 회장)은 “성수동에서 수제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모두 직원 10명 미만을 둔 소공인들인데 이번 코로나 피해보상에서 제외돼 있다”며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에서 수제화 거리의 상점들 역시 큰 피해를 봤는데 정부와 지자체가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수제화 거리의 쇠락은 곧 국가적인 손해라는 게 이곳 소공인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성수동에서 20년째 수제화점을 운영하는 한 소공인은 “지금 세계는 한류 바람 속에 K팝을 필두로 K의료, K뷰티 등 한국산들이 장악하고 있다”며 “성수동 수제화 전문점들을 국가와 지자체가 전략적으로 키우면 세계 신발시장에서 K제화도 충분히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성수동 수제화 전문점들의 가장 큰 자부심은 역시 품질이다. 대량생산을 하는 국내 신발제조 업체들이 오래전부터 중국이나 베트남·인도네시아 등 해외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을 맡기면서 신발의 품질이 저하됐지만 성수동은 아직 국산 기술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이곳의 소공인들이 직접 한 땀 한 땀 바느질 해가며 만드는 수제화는 그 어느 브랜드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최상의 품질을 보증한다”며 “성수동의 쇠락은 곧 이런 기술이 사라진다는 것인데 이런 명맥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성수동 수제화 소공인들은 불안정한 앞으로의 삶이 막막하지만 또 전성기 시절이 다시 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놓지 않고 있다. 한 수제화 전문점 대표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수제화 팔아서 자식들 대학은 물론 외국 유학까지 다 보냈는데 요즘은 한 달 순수입이 200만원도 안 되는 상점들이 많은 게 현실이다”며 “우리같은 기술자들은 제대로 된 지원만 있으면 금방 일어설 수 있으니 새롭게 출범한 정부가 부디 우리 소공인들을 외면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도와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