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100점 기부하고 떠난 수집가…반전 정체 '충격'

호주에서 100점에 달하는 미술품을 기부하고 세상을 떠난 동유럽 출신 유명 수집가가 과거 나치에 협력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호주 사회가 충격에 휩싸였다.

호주 매체 디오스트레일리안은 “리투아니아계로 알려진 미술품 수집가인 고(故) 밥 스레데르사스가 나치 독일 보안기관의 정보 장교로 일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스레데르사스는 1950년 호주로 건너와 울런공시(市)의 BHP 제철소에서 근무하면서 30년 넘게 미술품을 수집했다. 아서 스트리턴, 마거릿 프레스턴, 노르만 린제이 등 호주 유명 예술가들의 작품을 다수 보유한 그는 사망 5년 전인 1982년에 수집품을 울런공시 미술 갤러리에 기증했다. 시는 그의 공헌을 기리기 위해 전시회를 열고 명판을 새겼다.

그러나 올해 초 마이클 사마라스 전 울런공 시의원이 스레데르사스의 친나치 경력 의혹을 주장하면서 시의회와 뉴사우스웨일스 유대인 위원회가 조사에 나섰다.



집단학살 사건 전문 역사가인 콘래드 크위트 교수가 제출한 조사 보고서에는 스레데르사스가 1941년부터 1945년 1월까지 나치 보안대(Sicherheitsdienst·SD) 소속 정보장교로 근무했다고 적혀있다. 또 그는 나치 친위대장인 하인리히 히믈러가 이끌던 친위대 SS의 하위 조직이던 SD에서 적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의 출생과 국적 변경에 관한 정보도 구체적으로 밝혀졌다. 1910년 크림반도 내 크림시에 거주한 독일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스레데르사스는 독일이 구 소련을 침공하기 직전인 1941년 6월 독일 시민권을 얻고 '브로니슬라우스 슈뢰더스'로 개명했다.

나치 독일이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스레데르사스는 리투아니아식으로 또 다시 이름을 바꿨다. 그는 자신을 실향민이라고 소개하며 국제난민기구에 난민 신청을 했다.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스레데르사스는 독일계 이민을 불허하는 규제가 풀린 1952년 호주에 입국했다.

보고서는 "스레데르사스가 리투아니아에서 나치 정책을 수행하는 정보 장교로 일하면서 나치 협력자들이 자행한 끔찍한 범죄에 공모했다는 점에서 그 또한 협력자로 분류할 수 있다"면서 "다만 집단학살에 직접 가담했다는 기록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보고서를 쓴 크위트 교수는 "스레데르사스는 격동의 시기에 전략적으로 경력을 엮어낸 기회주의자이자 진정한 카멜레온"이라고 거세게 비판했다.

울런공시는 이 사안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고든 브레드버리 울런공 시장은 "스레데르사스의 수집품을 갤러리에서 빼는 데에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면서 "미술품 기증은 지역 문화에 중요하지만 이번 조사 결과가 확정된다면 우리는 스레데르사스의 과거를 인정할 적절한 방법을 강구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