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8.6%로 시장 예상치(8.3%)를 넘어섰다는 발표가 나온 10일부터 금융시장은 충격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정점을 지나지 않았다는 평가와 함께 미국 연방준비제도(Feb·연준)가 자이언트스텝(0.75%포인트 인상)을 단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고 그대로 이뤄졌다. 외국인 매도세에 20일 코스피와 코스닥은 나란히 연저점을 경신했고 원·달러 환율은 2009년 이후 13년 만에 최고치로 튀어 올라 1300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러한 시장 혼란 속에서 채권 시장은 오히려 외국인 자금 유입세가 뚜렷하게 관찰되고 있다. 미국 CPI 충격이 국내 시장에 본격 반영되면서 주가 하락과 금리·환율 상승이 나타났던 13일 외국인은 주식 4575억 원을 순매도하고 채권 2477억 원을 순매수했다. 외국인은 이날부터 14일(3776억 원), 15일(5931억 원), 16일(3080억 원), 17일(3339억 원), 20일(1조 4542억 원)까지 6일 동안 채권 3조 3145억 원을 사들였다. 20일 통안증권 1조 원을 산 것을 제외하면 국채를 집중 매수했다. 같은 기간(13~17일) 주식은 2조 5320억 원을 순매도했다.
외국인 매수에도 보유 채권 잔액은 감소했다. 보유 채권 잔액은 9일 기준 224조 9000억 원에서 17일 221조 1000억 원으로 3조 8000억 원 감소했다. 13일에는 219조 6000억 원까지 줄어들었다. 다만 잔액이 감소한 것은 6월이 국고채 만기가 끝나는 달이기 때문에 외국인 자금 유출로 볼 수 없다는 설명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만기가 도래한 금액이 크기 때문에 외국인 순매수가 있어도 잔액 기준으로는 줄어든 것”이라며 “만기가 도래해도 재투자가 이뤄지는데 결제일과 시차가 하루 이틀 있다 보니 잔액이 일시적으로 감소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은 미국의 정책금리 인상으로 한미 금리 격차가 좁혀졌어도 그만큼 스와프레이트가 하락했기 때문에 차익거래 유인(내외금리차-스와프레이트)이 발생한 결과로도 설명했다. 스와프레이트는 선물 환율에서 현물 환율을 뺀 값을 현물 환율로 나눈 것이다. 이론적으로 내외금리차는 스와프레이트와 일치해야 하기 때문에 내외금리차가 축소되면 스와프레이트는 확대된다. 최근 미 연준의 금리 인상으로 국내서 달러 조달 비용이 오르면서 스와프레이트가 큰 폭 하락했는데 이로 인해 외국인이 환헤지를 통해 채권 투자해 차익을 얻을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다. 스와프레이트는 이달 7일 -0.29%에서 16일 -0.96%로 하락해 코로나19 사태 초반 수준까지 떨어졌다.
다시 말해 스와프레이트는 달러를 원화로 바꾸는 데 필요한 비용인데 이 지표가 마이너스인 것은 달러를 원화로 바꿀 때 오히려 웃돈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그만큼 국내 외화자금 사정이 좋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외국인 입장에서는 달러를 들고 국내 채권에 투자하면 스와프레이트에 채권 투자 이익까지 얻을 수 있어 투자할 이유가 커진다.
시장 변동성이 극심한 상황에서도 외국인 채권 순매수가 나타나는 것은 주식과 달리 공공자금 중심으로 투자가 이뤄지는 특성도 반영됐다. 세계 각국 중앙은행이나 연기금 등은 지난해 말이나 올해 초 투자 계획을 세워놓은 만큼 미 CPI 충격이나 자이언트 스텝 등 돌발 변수가 생겨도 영향이 크게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외국인 주식 투자자는 원화 값이 더 떨어질 것으로 보고 주식을 팔고 나가는 상황이다. 한은은 한미 금리 역전이 이뤄지더라도 과거 사례 등을 봤을 때 채권 자금이 급격히 빠져나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달러를 바꾸는 비용이 많아졌기 때문에 달러를 한국에 가져오면 돈을 버는 상황에서 채권에 투자해 이자까지 받을 수 있어 외국인 채권 투자가 늘어난 것”이라며 “채권 투자자는 환율과 확정된 수익을 계산해서 들어오는 거라 주식 투자자와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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