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순위라도 좋으니 지원할 때 꼭 저희 회사를 기억해주세요.”(LG그룹 계열사 직원)
“간단한 이력서만 보내주면 인턴 포지션 바로 찾아서 연락드릴게요.” (애플 엔지니어)
22일(현지시간) ‘국제 컴퓨터 비전 및 패턴 인식 학술대회(CVPR) 2022’가 열린 미국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의 로어 가든 디스트릭트 일대는 38도가 넘는 폭염에도 9000명이 넘는 참가자들의 열기로 들썩거렸다. 컴퓨터 비전 분야에서 난다 긴다 하는 인재들이 모여드는 이 학술대회는 연구자 중심으로 최신 연구 트렌드를 공유하는 자리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2년 만에 오프라인으로 열린 올해는 전 세계 기업들의 치열한 AI 인재 유치전의 장이 됐다. 전체 참가자 중 석·박사 과정을 밟는 학생이 28%인 2500여 명에 그친 반면, 애플, 구글, 테슬라 등 빅테크를 비롯해 LG와 네이버 등 총 102개 기업에서 참가한 관계자는 절반에 가까운 48%에 달했다.
이날 포스터 세션에서 텍스트를 이미지로 변환하는 ‘멀티 모달’ 연구 결과를 발표한 서울대 박사 과정의 김광현씨는 “연구 발표 시간에 학계 뿐만 아니라 많은 기업 관계자들까지 찾아서 놀랐다”며 “스냅, 소니 등 글로벌 테크 기업들이 따로 연락을 해 식사나 커피 타임을 마련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일부 기업들은 연봉과 복지 혜택 등을 팸플릿 전면에 내세우는가 하면 부스 전시보다도 학생들과의 상담에 열을 올리는 모습을 보였다. 현직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실리콘밸리의 헬스케어AI 회사에서 일하는 엔지니어 람씨는 “기술 시연을 보기 위해 들른 다른 회사에서 바로 새로운 일자리를 제안받았다"며 “행사장 앞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즉석으로 약식 면접을 보는 경우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AI휴먼을 개발하는 마인즈랩의 송형규 연구원은 "기업이 직접 연구를 소개하면서 인턴십을 할 의향이 있는지 묻는 곳도 있었고 연구실과 기업간 협력 관계를 통해 인재 유치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경우가 눈에 띄었다"며 "부스마다 머신러닝, 딥러닝 연구원들이 직접 소개에 나서 연구가 잘 맞을지 살펴볼 수 있었다"고 전했다.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번째로 많은 460명이 참가한 우리나라도 뜨거운 인재 유치전의 중심에 섰다. 기업별 전시가 끝난 저녁 시간에는 행사장인 모리얼 컨벤션 센터 주변으로 20여 분 거리의 호텔까지 저녁마다 각기 다른 회사가 여는 네트워킹 행사가 진행됐다. LG AI연구원을 중심으로 6개 계열사가 총출동한 네트워킹 자리에는 석·박사급 학생만 200여 명이 참여했다. LG AI연구원은 특히 해외에서 연구를 하고 싶어하는 수요를 고려해 올 3월 세계적 석학인 이홍락 최고AI과학자(CSAI)를 중심으로 미국 미시간주 앤아버에 LG AI리서치센터를 설립하고 인재 유치 거점을 확보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LG 관계자는 “인재 유치를 위해 계열사 역량을 집결했다”며 “전략적으로 임원 대신 주니어급 연구원들을 섭외하고 연구실 단위로 네트워킹을 해서 질의응답을 주선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네이버도 AI연구 조직인 클로버를 중심으로 두 번에 걸쳐 ‘네이버 나이트’를 열고 200여 명을 대상으로 질 높은 연구 환경과 AI에 대한 회사 차원의 투자를 강조했다. 한 참가자는 “전날은 네이버에서 연 행사에 참여하고 다음 날은 LG 행사에 참여했다”며 “기업들이 박사 학위 과정을 계속하면서도 연구 실적을 쌓을 수 있다는 것과 자율성을 강조한 점이 인상적이었다”고 전했다.
이 밖에 현대자동차 합작사인 모셔널을 비롯해 슈퍼브에이아이, AI반도체 회사 퓨리오사 등 스타트업도 부스를 크게 차렸다. 백준호 퓨리오사 창업자는 전시 기간 내내 직접 부스에서 참가자들에게 기술 설명을 진행하기도 했다. 컴퓨터 비전 분야 권위자인 한보형 서울대 교수는 "자연어 처리, 음성 인식 등에 있어 기업들의 수요는 몰리는 데 연구자가 적은 편이라 인재 확보 경쟁이 치열하다"며 “기업 차원에서도 손흥민급 인재를 영입하려면 글로벌 기업처럼 큰 프로젝트를 만들고 동기 부여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