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사랑 아닌 학대'…혜화역 다섯 강아지 이야기 입니다 [지구용]

'혜화역 폐지 할아버지', 중성화 없이 키우다 2마리→5마리로

경제적 능력 없는 '무능력한 보호자' 유형…애니멀호딩으로 분류돼

십여명이 동원된 설득 작전…아쉬운 취약계층 반려동물 지원 정책

사진제공=동물권행동 카라사진제공=동물권행동 카라




얼마 전, 인터넷에 퍼진 서울 혜화역 폐지 할아버지 사진 기억하는 분? 강아지 다섯 마리를 쇠사슬로 묶어 다니는 분인데, 사진 속의 강아지들은 길에 버려진 도시락을 먹고 있었어요. 작년 말까지는 두 마리였는데 새끼를 낳아서(중성화 수술을 하지 않았단 얘기) 다섯 마리로 늘어났다고. 거의 매일같이 강아지들과 이 일대를 도는 분이라 주민분들 모두 할아버지와 강아지들을 알고 있었고, 동물학대로 신고한 분들이 적잖이 계셨대요. 왜 신고했는지, 동물권행동 카라가 할아버지를 찾아간 이유가 뭔지 사연 풀어볼게요.

비좁은 현관에서 자는 다섯 강아지


비좁은 할아버지의 집. /사진=카라비좁은 할아버지의 집. /사진=카라


에디터가 카라 활동가님들을 따라 할아버지를 만난 건 지난 5월 말 서울의 어느 주택가였어요. 집에 직접 들어가보진 못했지만, 앞서 방문했던 활동가님들이 보여준 사진을 보면 상당히 열악한 주거환경(사진)이었어요. 일반 가정집 현관 정도 면적에 가재도구나 옷가지가 놓인 공간을 제외하면 사람 한 명 눕기에도 버거워 보였으니까요. 강아지들은 사람 한 명 서 있을 정도의 문가에서 뒤엉켜 잔다고 했어요.

할아버지는 사진으로 본 강아지 다섯 마리를 쇠사슬로 묶어 함께 나오셨어요. 첫인상은 생각보다 밝고 대화가 잘 통할 것 같더라고요. 강아지들은 할아버지를 정말 잘 따랐고, 한 마리는 특히 장난기가 심해서 만져주는 사람 손을 자꾸 물고 싶어하긴 했지만 공격적이진 않았어요.

목줄에 묶인 쇠사슬은 아이들 힘이 점점 세지다 보니(중형견 정도고 새끼 세 마리도 이미 부모견과 비슷한 몸집이었어요) 일반 목줄은 자꾸 끊겨서, 어쩔 수 없이 쇠사슬을 목걸이 부분에 연결해 쓰는 거라고. 다섯 마리는 각자 ‘부채도사’ ‘바둑이’ ‘터프맨’ 같은 이름을 갖고 있었어요.

강아지들은 행복해 보이는데, 할아버지도 이 녀석들을 정말 가족같이 아끼시는데...하지만 이대로 살 수는 없는 상황. 사료는 어찌저찌 동물단체나 시민들의 지원을 받는다고 해도, 병원비는 할아버지가 도저히 감당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거든요. 실제로 작년 말 부모견이 낳은 새끼는 모두 네 마리였는데 한 마리는 병으로 죽었어요. 당연히 병원 문턱에도 못 갔고요.

그리고 중성화 문제. 서울시는 취약계층의 반려동물 중성화 비용을 20만원 지원하지만, 당연히 이걸로는 모자라요. 다섯 마리나 되니까요. 중성화를 안 한 채로 앞으로도 다섯 마리가 함께 한다면 금세 새끼가 불어날 거예요. 심지어 근친상간까지 이뤄질 거고요.

4마리의 강아지를 중성화하지 않고 키우다가 수년 후 130여마리까지 늘어나 감당 못하게 된 애니멀 호더의 사례. /사진=카라4마리의 강아지를 중성화하지 않고 키우다가 수년 후 130여마리까지 늘어나 감당 못하게 된 애니멀 호더의 사례. /사진=카라


이날 현장에서 만난 카라의 김나연 활동가님은 “과거 애니멀 호더의 사례를 보면 4마리가 계속 번식해서 2, 3년 후에는 130여 마리로 늘어난 경우(사진)도 있었다”고 설명해주셨어요. 그렇게 되기 전에 할아버지를 설득하러 카라 활동가님들, 그리고 지자체 사회복지 공무원분, 마지막으로 수의사이자 유튜버인 재끼찬님과 TV에 자주 출연해서 익숙한 이찬종 동물훈련사님까지 합류했죠(재끼찬 채널에서 현장 영상 보기).

조곤조곤 설득하면 될 줄 알았죠


이날 모인 사람들의 목표는 일단 이랬어요. 할아버지의 동의를 얻어서 다섯 마리 모두 중성화 수술을 할 수 있도록 병원으로 데려가고, 할아버지가 가장 아끼는 두어 마리를 제외한 나머지는 좋은 가정에 입양될 수 있도록 카라에서 보호하자...! 할아버지가 아이들을 아끼는 건 분명해 보였고, 경제적으로 어려울뿐 일부러 아이들에게 고통을 준다거나 하진 않으니까 나름의 절충안을 생각해낸 거죠.

할아버지에게 소유권포기동의서에 대해 설명하는 카라 활동가님. /사진=카라할아버지에게 소유권포기동의서에 대해 설명하는 카라 활동가님. /사진=카라


카라 활동가님들이 조근조근 설득하기 시작했어요. 폐지 할아버지와 카라가 만나기까지 큰 도움을 주신 시민분이 계셨는데, 그 분이 워낙 많은 대화를 시도했던 덕분인지 할아버지도 중성화와 입양에 대해 상당히 열려 있으신 것 같더라고요. 서울시 취약계층 지원정책에 따라 할아버지의 주거환경 개선(청소, 에어콘 설치 등)을 앞으로도 도와주실 공무원님도 합심해서 대화를 이어나갔고요.

서로 어느 정도 합의가 됐다 싶을 때쯤, 카라에서 강아지들에 대한 소유권 포기 각서를 내밀었어요. 오늘 다섯 마리를 데려가서 중성화 수술을 하고, 두 마리 정도만 남기고 나머지 세 마리는 입양을 보내야 하니까요. 하지만 이 때부터 할아버지의 말이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마리당 100만원을 받아야겠다고 갑자기 조건을 내세운 거예요. 그 정도는 낼 수 있는 사람이어야 안심하고 보낼 수 있다면서요.

이 때가 할아버지를 만나 대화를 시작한 지 두 시간쯤 됐을 무렵인데...청천벽력같은 말이었죠. 당연히 카라에서는 마리당 백만원을 ‘지불’할 수 없어요. 애초에 동물 매매에 반대하는 단체고 기부와 후원으로 운영되는 곳인데 그런 식으로 돈을 쓸 수 없으니까요. 마리당 백만원을 내고 아이들을 입양해갈 사람도 없을 테고요.

할아버지 설득에 가세한 재끼찬(왼쪽) 수의사님과 이찬종 훈련사님. /사진=카라할아버지 설득에 가세한 재끼찬(왼쪽) 수의사님과 이찬종 훈련사님. /사진=카라


조금 늦게 현장에 도착한 재끼찬 수의사님과 이찬종 훈련사님도 설득에 가세했어요. 새끼들이 한 살쯤 되면 기르기가 더 힘들어질 거고, 줄에 묶여 사는 데다 집이 좁아 스트레스를 받아서 서로 싸울 거라고요.

하지만 긴긴 설득에도 할아버지의 고집은 꺾이지 않았어요. 강아지들의 병원비와 좀더 행복한 환경을 위해 도와주십사 말씀드려도 소용이 없었어요.

급기야 카라 같은 시민단체와 지자체에 대한 불신을 점점 토로하시더니 “국가 폭력”을 외치시면서 더이상 이야기하지 않겠다고 자리를 뜨셨어요. 언성이 높아지면서 동네 주민 분들도 나와서 지켜보시는데, 관심이 엄청 많으셨어요. 모두들 할아버지를 알고 있고 강아지들을 걱정하시더라고요. 나중에는 할아버지가 세들어 사는 집의 소유주인 분도 나타나셔서 “할아버지가 강아지 다섯 마리 말고도 토끼 두 마리를 화장실에서 기르고 있다”고 알려주셨고요. 집주인도 설득해봤지만 실패했다고.

그동안 카라에서 구조·지원한 애니멀호딩 사건들. /사진=카라그동안 카라에서 구조·지원한 애니멀호딩 사건들. /사진=카라


그동안 카라에서 구조·지원한 애니멀호딩 사건들./ 사진=카라그동안 카라에서 구조·지원한 애니멀호딩 사건들./ 사진=카라


이날 현장을 이끈 최민경 활동가님은 지친 얼굴로 이렇게 설명해주시더라고요. “이런 게 바로 동물 학대의 사각지대”라고요. 동물복지 선진국에선 명백한 학대가 아닌 행위, 예를 들어 방치 같은 소극적인 행위만으로도 전문가의 평가를 거쳐 조치를 취할 수 있대요.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전혀 그럴 수 없죠.

아무리 반려동물을 아낀다 해도, 정작 아플 때 병원에 데려갈 수 없는 무능력한 보호자라면 애니멀 호더예요. 애니멀 호딩은 “능력 이상으로 많은 동물을 키우면서 적절한 보살핌을 제공하지 못하고 방치하는 행위”를 의미. 동물의 수가 많지 않더라도 제대로 돌볼 수 없다면 애니멀 호딩이고 동물학대래요.

취약계층에 속하는 분들이 반려동물을 키울 때 받을 수 있는 지원이 미미하단 점도 아쉬워요. 경제적으로 곤란한 상황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건 이론적으로다가 말리는 게 맞아요. 데려오는 건 쉬워도 10년, 20년 키우면서 비싼 동물병원 치료비를 감당하는 건 참 어렵거든요.

하지만 ‘이론’과는 별개로 반려동물을 아끼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취약계층 분들이 현실에 이미 존재하고, 이 분들이 의도치 않게 애니멀 호더가 되는 걸 막으려면 ▲취약계층에 대한 반려동물 의료비 지원을 늘리거나 ▲지자체에서 해당 동물을 대신 보호할 수단이 생겨야 할 것 같아요. ▷서울시의 취약계층 반려동물 지원사업이 궁금하다면 여기



카라 활동가님들은 며칠 후 다시 할아버지를 찾아갔지만, 할아버지는 대화를 거부했어요. 그래서 카라 활동가님들은 지자체를 통해 계속 설득해서 다섯 마리의 중성화를 마치고 모두 할아버지에게 되돌려 보내는 방법, 처음 계획대로 일부 입양을 보내는 조건으로 할아버지에게 지자체 차원의 다양한 경제적 지원을 제시하는 방법 등 다양한 차선책을 고민 중이에요.

이렇게 결론은 고구마지만(죄송...), 우리도 같이 고민해봐야 할 것 같아요. 도살이나 폭력 행사 같은 명백한 학대는 아닌 그 어딘가의 지점에 놓인 동물들에 대해서요.

사람 먹고 살기도 힘든데...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겠죠.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뭐든 나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게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하단 뻔한(그치만 옳은) 이야기로 오늘도 마무리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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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환경을 생각하는 뉴스레터 ‘지구용’에 게재돼 있습니다. 쉽지만 확실한 변화를 만드는 지구 사랑법을 전해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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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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