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인 사회 초년생, 주부 등을 겨냥한 신종 금융 사기는 피해자들을 유인하는 미끼책, 사기 사이트 운영자, 상담원, 대포통장 모집책 등으로 나뉘어 ‘체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특히 과거와 달리 채팅 애플리케이션 등을 통해 친밀도를 높인 후 조직적으로 진행되는 신종 금융 사기의 피해 규모는 계좌당 적게는 수백만 원, 많게는 수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금융 사기 계좌, ‘문어발’로 쓰인다
28일 서울경제 취재에 따르면 이 모(39) 씨는 올해 4월 모 은행의 A 계좌를 포함한 3개 계좌에 총 9800만 원을 입금했다. 이 씨가 당한 방식은 ‘대리 베팅 사기’다. 사기 조직 일당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누구나 부업으로 고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글을 올려 피해자들을 유인했다. 게시 글에 적힌 카카오톡 대화방 주소로 들어가 “SNS를 보고 연락했다”고 하면 운영자는 바로 돈을 요구했다. 프로그램으로 정답을 미리 알고 도박 사이트에 베팅하기 때문에 1시간 안에 100% 수익을 낼 수 있다고 유혹했다. “구조를 이해하느냐, 안 하느냐보다는 신뢰가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며 “사이트를 해킹해 수익을 내는 게 아니니 법적 문제는 전혀 없다” 등의 말을 늘어놓았다. 실제로 1시간 뒤에 이 씨는 사이트 운영자로부터 “출금할 수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하지만 이 씨가 출금을 신청하자 해당 사이트 상담원은 “신규 고객은 300만 원 이상의 출금 기록이 필요하다” “첫 출금 수수료 20%가 필요하다” 등 갖가지 핑계를 대며 돈을 요구했다. 약 20차례에 걸쳐 이 씨가 수천만 원을 입금하자 해당 사이트와 인스타그램 아이디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사기 조직은 이 씨의 돈만 노리지 않았다. A 계좌는 돈을 날린 후에도 전히 남아 이후 또 다른 피해자인 김 씨 등을 노린 채팅 환전 사기에 사용됐다. 김 씨 이외에도 금융 사기 피해 정보 공유망 ‘더치트’에 등록된 A 계좌 피해 사례 7건의 피해 규모가 1억 1600만 원에 달해 실제 피해액은 최소 수억 원대로 추정된다. A 계좌와 관련된 27건의 금융 사기 범행을 병합해 수사하고 있는 인천 서부경찰서 관계자는 “영장을 받아 계좌를 추적 중”이라며 “신고가 계속 들어오고 있어 사건을 추가하다 보니 피해 규모를 아직 정확히 추산하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다수의 금융 사기에 이용되는 ‘대포통장’은 비단 A 계좌만이 아니었다. 조 모 씨 명의로 개설된 B 계좌와 관련해 올 5월 말 약 열흘 동안 더치트에 총 4건의 피해 사례가 올라왔다. 해당 계좌에 당한 피해 유형 역시 채팅 환전 사기, 대리 베팅 사기, 직거래 사기 등으로 다양했다. 접수된 4건의 피해 규모는 약 3800만 원 수준이었다. 이 밖에 다수 시중은행의 계좌에 대해서도 최근 3개월 새 총 17건의 피해 사례가 더치트에 등록됐다.
◇“조직원끼리도 서로 몰라” 조직적 금융 사기
신종 금융 사기는 계좌를 돌려서 사용할 뿐만 아니라 웹사이트도 같은 디자인을 복제해 옮겨다니고 있다. 대리 베팅 사기에 이용된 한 사이트와 또 다른 대리 베팅 사기에 활용된 사이트의 디자인이 마치 ‘복사, 붙여 넣기’를 한 듯 똑같이 구성됐다. 사이트 주소 역시 한두 글자만 바꿔 나타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예를 들어 ‘○○○.com’이라는 주소의 사기 사이트가 있다면 ‘○○○1.com’ 사기 사이트가 만들어지는 방식이다. 눈 뜨고 코 베어 간다는 말처럼 뻔한 수법에도 채팅이나 SNS를 통한 친밀감에 순식간에 당하는 형태다.
코로나19 이후 금융 사기는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는 대표적 금융 사기인 보이스피싱 검거 현황에서 바로 드러난다. 이명수 국민의힘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2018~2022년 상반기 보이스피싱 현황’에 따르면 올해 보이스피싱 발생 건수는 5월 말 기준 총 1만 707건에 달했다. 피해액은 총 2622억 원으로 하루에 약 17억 원의 보이스피싱 피해가 발생한 셈이다. 검거 건수와 인원은 각각 9350건, 9279명에 이른다. 하지만 검거된 피의자들은 꼬리에 불과하다. 전체 검거 인원의 63.4%가 하부 조직원이다. 통신업자·환전책 등을 담당하는 기타 인원과 계좌 명의인도 각각 1712명(18.5%), 1413명(15.2%)이었다. 사기의 ‘핵심’인 조직 상선 검거 인원은 272명(2.9%)에 그쳤다. 결국 꼬리를 자른 머리는 로맨스 스캠 등 신종 금융 사기로 수법을 진화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범죄 특성상 점조직 형태를 이뤄 조직원 간에도 서로의 인적 사항을 알지 못해 추적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개인 정보를 유통하는 조직과 콜센터, 대포통장 등 대포 물건 공급 조직 등으로 분화돼 있는 데다 조직원 간에 가명을 사용해 서로 신분을 모르게 한다는 것이다. 이명수 의원은 “돈을 옮기기 위한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거나 상품권 등을 요구하는 수법이 지난 5년간 증가하고 있다”며 “해가 갈수록 다양한 신종 수법이 나오고 있어 철저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