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지역 국민의힘 의원들이 고준위 방사선 폐기물 저장과 관련된 법안을 잇따라 발의하고 있다. 영구정지된 원자로에서 폐기물을 보관할 수 없도록 하거나 다른 시·도에서 나눠 보관하자는 내용이다. 고준위 방사선 폐기물 처리장 건설 논의에 불을 붙이겠다는 의도라지만 무작정 다른 지역으로 옮기자는 식이어서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동만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24일 영구정지된 원자력발전소 부지 내에 방사성 폐기물을 보관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방사성 폐기물 관리법’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폐로된 고리 1호기와 월성 1호기에서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보관할 수 없게 된다. 정 의원은 고리 원전이 위치한 부산 기장군을 지역구로 하고 있다. 개정안 공동 발의자 10명 중 7명도 부산 지역 의원들이다.
부산 중·영도구의 황보승희 의원은 한술 더 떠 고준위 방사선 폐기물을 원전이 없는 시·도에 저장 시설을 만들어 인구에 비례해 나눠 보관하자는 내용의 ‘방사선 폐기물 관리법’ 개정안을 28일 내놨다. 황보 의원의 개정안 역시 서명한 의원 대부분(11명 중 10명)이 부산 의원들이었다.
현실적으로 지정 처리 시설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고준위 폐기물을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강한 방사선이 방출되므로 인간 생활권과 완전히 분리되는 지하 깊은 곳에 다중 방벽 시스템이 갖춰진 처리 시설을 만들어야 해서다. 지질학적으로 안전한곳을 선별해야 하고 지역 주민의 동의도 필요해 부지 선정에만 십수년이 소요된다.
그럼에도 부산 지역 의원들이 법안을 발의한 것은 고준위 방사선 폐기물 보관에 대한 지역 주민의 걱정이 상당해서다. 방사능이 상대적으로 약한 중·저준위 폐기물은 경북 경주시의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에 저장되고 있지만 ‘사용후핵연료’라고 불리는 고준위 방사성 페기물은 각 원전의 임시 저장 시설에 보관 중이다. 정부는 지난 1987년부터 방폐장 건설을 추진했지만 적합한 곳을 찾을 때마다 번번이 지역 주민의 반대에 부딪혀 아직 건설 부지조차 정하지 못했다. 각 원전의 임시 저장 시설들은 2031년 한빛 원자력 발전소를 시작으로 차례대로 포화될 예정이다. 이에 방폐장 건설 논의가 지지부진할 경우 사실상 원전 부지에 고준위 방사선 폐기물이 영구 보관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동만 의원실 관계자는 “개정안이 발의된 그대로 통과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지역에서 고준위 방사선 폐기물이 영구 보관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심화되고 있어 이를 해소하자는 차원”이라고 법안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황보승희 의원실 역시 “방폐장 건설 문제는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며 “이 문제를 사회적으로 공론화 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