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주워 아무리 돈을 많이 번다고 어르신들의 생활이 나아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자존감만 낮아질 뿐이죠. 어르신들은 젊은 세대가 갖고 있지 못한 소중한 삶의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이를 비즈니스로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면 할아버지·할머니의 삶도 나아질 수 있고 자존감도 높일 수 있습니다.”
폐지 줍는 어르신들을 디자이너로 채용하는 아립앤위립의 신현보(32·사진) 대표는 29일 서울 천호동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노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일자리”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2017년 설립된 아립앤위립은 신 대표를 포함한 3명의 청년들이 16명의 어르신들과 함께 달력이나 문구류를 만들어 판매하는 예비 사회적 기업이다.
원래 신 대표의 전공은 경영학이다. 졸업 후에도 대기업과 스포츠 마케팅 기획사를 다녔다. 그런 그가 노인 일자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자신의 할머니 때문이다. 소일거리로 폐지를 모으던 할머니를 본 후 폐지 줍는 어르신들의 문제에 눈을 뜨게 됐다고 한다. “어르신들의 삶을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시청과 연구 기관을 찾아다니며 얘기를 들었습니다. 얻은 결론은 하나, 바로 ‘노인들에게 맞는 일자리’였습니다.”
그가 제시하는 노인 일자리는 공공 일자리처럼 아무 의미 없는 지원이 아니다. 어르신들의 자존감을 높이고 삶의 경험을 젊은 세대에 전함으로써 세대 간 교감을 이루는 것이 포인트다. 이들과 나누는 이야기 속에서 소재를 찾고 이를 바탕으로 제품을 디자인하는 방식이다.
대표적인 것이 ‘절기 달력’이다. 1월부터 12월까지 해당 월에 등장하는 절기를 그림과 글로 설명하는 데 초점을 맞춘 달력이다. 예를 들면 6월 달력에는 망종과 하지의 뜻을 적고 그 시기에 가장 많이 나는 농작물인 감자를 넣거나 동지가 들어 있는 12월에는 동지팥죽 그림을 넣는 것이다. 결과는 대만족. 판매와 동시에 매진이었다. 원래 200부만 판매하기로 했던 것을 1500부까지 늘렸지만 이도 순식간에 다 나갔다고 한다. 신 대표는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예전 달력이 없을 때는 농사일 때문에 절기를 기준으로 1년을 나눴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며 “절기 달력을 통해 노인 세대의 경험과 젊은 세대를 연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일자리가 가져온 효과는 컸다. 먼저 어르신들이 활기를 되찾았다. 사업 콘텐츠가 자신이 살아왔던 삶의 경험에서 나온 것들이기 때문에 신이 나서 얘기를 하고 서로 친분을 쌓는다는 것이다. 새로운 사업 아이템도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7월에는 화투 게임을 소재로 하는 제품도 내놓는다. 코로나19 시기 젊은이들 사이에 보드게임이 유행했던 것처럼 노인들은 화투로 하루를 보냈다는 데 착안한 것이다.
노인들의 일자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세대 간 격차를 줄이는 일이 중요하다. 문구류의 경우 주요 구매자가 2030세대이기 때문이다. 2030세대가 묻고 7080세대가 답하는 ‘시니어 상담소’를 만든 이유다. 여기에서는 다양한 질문과 대답이 오간다는 게 신 대표의 전언이다. ‘사는 게 너무 재미없다’는 호소에 ‘그러면 허허 웃어요’라는 할머니의 조언이 나오는가 하면 ‘학교나 직장에 다니는 게 너무 힘들다’는 하소연에 할머니들이 ‘그러게, 어쩌지’ 하며 안타까움을 표하는 것을 보다 보면 저절로 위안과 격려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청년들이 진정 듣고 싶은 애기는 ‘잘해라’가 아니라 ‘괜찮다’는 격려와 위로”라며 “어르신들이 건네는 한마디 한마디가 청년들에게는 정말 큰 힘이 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현재 아립앤위립의 어르신 직원은 모두 16명이다. 이 중 1명은 정규직이고 나머지는 파트타임으로 근무한다. 신 대표의 목표는 나머지 15명도 조만간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것이다. 물론 많은 보수를 주기는 힘들다. 정규직 직원의 근무시간은 주 15시간. 월급은 60만 원이 채 안 된다. 많지는 않지만 일정한 수입이 없는 어르신들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 그는 “할머니·할아버지들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최저 시급 정도의 임금 수준이지만 몇 년 안에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려 한다”며 “현재 상황으로 본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