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미술 다시 보기]사비니의 여인들

신상철 고려대 문화유산융합학부 교수

혁명의 시대에 화해의 메시지를 담다





프랑스 신고전주의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의 주요 작품들은 대부분 대혁명 시기에 제작되었다. 신고전주의는 그리스·로마 시대에 제작된 고전 미술에서 이상적인 미의 원형을 찾으려했던 미술 운동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신고전주의 양식이 18세기 중·후반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미술계를 주도하게 된 배경으로는 고대 유적에 대한 고고학적 발견과 계몽주의 사상의 출현이라는 두 가지 요인이 거론된다. 그리스·로마 문명을 유럽 문화의 황금기로 간주하며 신분제와 기독교적 가치관에 기반을 둔 왕정 시대와의 단절을 추구한다는 점 그리고 이성에 대한 믿음을 근간으로 부도덕한 현실을 개선하려 노력한다는 점에서 계몽주의와 신고전주의는 서로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 프랑스 혁명 시기 새로운 사회 질서를 구축하려했던 정치 세력들이 신고전주의 미술을 선호했던 이유는 프랑스 혁명과 신고전주의 미술이 계몽주의라는 동일한 사상적 기반을 가지고 형성되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다비드는 프랑스 미술사에서 매우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로 분류된다. 그는 기법적으로 완벽한 신고전주의 화가이자 존경받는 미술교육자였고 또한 선동적인 정치가이기도 했다. 그는 혁명 시기 발생한 프랑스 정치사의 주요 사건들을 자신만의 독창적인 방식으로 시각화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다비드의 회화는 그리스 조각을 연상시키는 견고한 형태미와 간결한 색채를 통해 웅장한 분위기를 창출하는 특징을 지녔다. 단순한 형식으로 관람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는 그의 화풍은 주제 전달에도 매우 효과적이었다. 로베스피에르나 나폴레옹이 다비드를 총애했던 이유는 그의 그림이 정치적 선전에 유용했기 때문이었다. 1799년 12월 21일 파리에서 처음 공개된 대형 유화 작품 <사비니의 여인들>은 격동의 시대를 경험한 다비드의 정치적 신념이 가장 직접적으로 표출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 로물루스 편에 서술된 로마 건국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그는 권력 다툼에 염증을 느끼고 있던 프랑스인들에게 화해와 협력의 가치를 환기시키고자 했다. 아이들을 대동한 여인들의 역동적인 등장으로 전투를 중단한 채 정지 상태로 서 있는 로마 건국의 전설적인 영웅 로물루스와 사비니의 수장 타티우스의 모습은 혼란스러운 주변 상황과 극단적인 대조를 이룬다. 이 그림 속에서 풍겨 나오는 폭풍우가 일순간에 멈춘 듯한 고요한 긴장감은 이들의 선택에 담긴 역사적 무게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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