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타자와 동반 플레이는 늘 부담스럽다. 있는 힘껏 쳤다고 생각했는데 볼은 한참 뒤에 떨어져 있다. 두 번째 샷 때 상대보다 긴 클럽을 들어야 해서 불리한 것은 물론이고 알게 모르게 주눅도 든다. 그러다 보면 스코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십상이다.
3일 강원 평창의 버치힐GC(파72)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맥콜·모나파크 오픈 최종 라운드. 임진희(24·안강건설)는 장타자 윤이나(19)보다 드라이버 샷이 20야드쯤 덜 나갔다. 임진희도 거리가 안 나가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300야드를 넘나드는 윤이나 앞에서는 작아 보였다. 윤이나에게 2타 앞선 단독 선두로 출발했지만 안심할 수 없는 처지였다.
하지만 경기가 끝난 뒤 스코어는 임진희가 3라운드 합계 11언더파 205타, 윤이나는 9언더파 207타로 2타 차였다. 상금 1억 4400만 원을 받은 임진희는 시즌 상금 20위에서 8위(약 2억 9000만 원)로 점프했다. 첫날부터 내내 선두를 놓지 않는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 기록도 썼다.
임진희는 티샷이 떨어진 지점에서 윤이나보다 한두 클럽 긴 채를 들어야 했지만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더 먼 거리에서 핀에 먼저 잘 붙여 놓으면 부담을 느끼는 쪽은 윤이나였다. 지난해 데뷔 첫 우승 경험이 있는 5년 차 임진희는 첫 승이 간절한 신인 윤이나를 그렇게 몰아붙였다.
14번 홀(파4) 상황이 상징적이었다. 82야드를 남기고 친 임진희의 두 번째 샷은 그린에 떨어진 뒤 백스핀이 걸려 핀 옆에 예쁘게 멈춰 섰다. 이후 58야드 지점에서 윤이나의 손을 떠난 샷은 다소 부정확해 홀 5m 거리에 섰다. 윤이나의 버디 퍼트가 빗나간 뒤 임진희는 가볍게 버디를 넣어 4타 차로 달아났다.
앞서 윤이나가 9~12번 네 홀 연속 버디로 추격에 불을 댕길 때 임진희는 버디 2개와 결정적인 파 세이브를 곁들이며 맞불을 놓았다.
임진희의 15·16번 홀 연속 보기 뒤 윤이나가 17번 홀(파3)에서 먼 거리 버디를 낚으면서 2타 차로 들어선 18번 홀(파5). 윤이나는 핀까지 242야드를 남기고 2온에 성공하면서 이글 찬스를 만들었다. 연장으로 끌려갈지 모를 위기라 이제 심리적으로 쫓기는 쪽은 임진희였다. 하지만 아무런 표정 없이 76야드짜리 세 번째 샷을 한 임진희는 핀 60㎝에 붙여 갤러리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윤이나의 7m 이글 퍼트가 들어가지 않고 임진희가 버디 퍼트를 놓치지 않으면서 막판 들어 뜨겁게 달아올랐던 승부는 2타 차로 마무리됐다.
지난해 6월 말 우승 뒤 1년 만에 2승째를 챙긴 임진희는 “첫 승 때는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행운의 우승에 가까웠다면 이번은 하나하나 스스로 쌓아 올린 거라는 느낌이다. 자신감이 많이 올라갈 것 같다”며 “시즌 상금 7억과 시즌 2승을 목표로 달리겠다”고 했다. 버디 5개와 보기 2개로 3타를 줄인 이날 경기에 대해서는 “윤이나 선수가 무서운 기세로 연속 버디를 하기에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같이 공격적으로 나갔다”고 돌아봤다.
선두에 3타 뒤진 공동 3위로 출발한 박결은 6타를 잃어 1오버파 공동 22위로 내려갔다. 임진희·윤이나와 같은 조에서 타수를 잃지 않고 선방하고 있던 박결은 15번 홀(파4)에서 무려 5타를 잃으면서 제동이 걸렸다. 세 번째 샷이 짧아 벙커 턱 바로 밑에 박히면서 ‘사고’가 났다. 결국 트리플 보기로 홀아웃 했는데 이내 2벌타가 부과돼 ‘퀸튜플 보기’가 됐다. 경사가 심한 벙커에서 스탠스를 만들다가 모래가 흘러내렸고 이에 경기 위원은 서있는 자리를 평평하게 만들려는 규칙 위반 행위로 봤다. 상금 1·2위 박민지와 임희정은 출전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