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방문한 경기도 이천의 보험개발원 자동차기술연구소. 자동차 한 대가 달려오더니 또 다른 자동차의 측면과 부딪히면서 귀를 찢는 듯한 굉음이 들렸다. 시속 40㎞로 달리던 국산 자동차를 전기차 테슬라와 충돌시키는 이 실험에서 달려오던 차는 정면 보닛 부분이 망가졌고 측면을 부딪힌 테슬라도 운전석 쪽이 움푹 패였다. 하지만 두 자동차 모두 운전자의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파손은 아닌 듯했다. 오승철 보험개발원 자동차기술연구소 AOS실장은 “자동차가 고속으로 달리다가 브레이크를 밟으면 시속 30~40㎞인 상태에서 충돌하게 된다”며 “이 정도 속도로 충돌하면 실제로는 굉장히 큰 사고”라고 설명했다.
이번 실험은 보험개발원 자동차기술연구소가 올해부터 처음 시작한 전기차 충돌 실험이었다. 5월에 한 차례 진행했고 이날은 두 번째 충돌 실험이었다. 그동안 보험개발원에서는 내연기관 차량에 대한 실험만 진행했을 뿐 전기차에 대한 실험은 하지 않았다. 전기차 판매량이 적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전기차 실험이 올해 처음 시작된 것은 최근 전기차 판매량이 빠르게 증가하는 반면 전기차에 대한 보상 기준은 없어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기차의 사고 후 평균 수리비는 245만 원으로 비전기차 188만 원보다 30%가량 비쌌다. 보상 기준인 수리비가 비싸니 당연히 보험료도 비싸다. 개인용 전기차의 계약 건당 평균 보험료는 94만 3000원으로 비전기차보다 18만 원 이상 비쌌다.
보험개발원은 이르면 올해 안에 실험과 연구를 거쳐 전기차 보상 기준을 산출해낼 계획이다. 보험개발원이 전기차 보상 기준을 마련하면 보다 합리적인 보험료와 사고 수리비 기준 등이 제시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보험개발원 관계자는 “앞으로 전기차와 수소전기차 등 새로운 형태의 자동차에 대한 최신 정비 관련 연구 자료를 생산하고 작업 시간을 산출해 교육 자료를 만들 예정”이라며 “초기 시장 확대 시점에 잘못된 관행이 정착되지 않도록 전기차 수리 가이드도 마련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보험개발원 자동차기술연구소는 보험개발원 부설기구로 삼성화재·현대해상 등 국내 자동차 보험사 14곳이 출자해 운영하고 있다. 1년에 많게는 자동차 100대가 이곳에서 충돌한다. 출시되지 않은 신차는 물론 이미 출시된 차의 충돌 실험도 진행된다. 실험을 통해 충돌 속도에 따른 차량의 파손 정도를 파악해 수리비 적정성을 분석하고 모델별 보험요율을 차등화하기 위한 정확한 자료를 얻고 있다. 이곳에서는 충돌 실험뿐 아니라 자동차 부품별로 드는 공임과 부품비 표준화 작업 등에 대한 연구도 진행된다. 예컨대 접촉사고가 났을 때 가장 수리가 빈번한 차량 페인트 연구도 이곳에서 진행한다.
전기차 보상 기준 마련 이외에도 자동차기술연구소가 최근 집중하고 있는 분야가 자동차수리비 온라인서비스시스템(AOS)이다. 인공지능(AI)이 사고 차량의 사진을 보고 부품 종류와 손상 정도 등을 스스로 판독해 예상 수리비를 자동으로 산출해주는데 AOS 심사 비율이 확대되면 손해사정사가 대손상 고액사고에 대한 정확한 손해사정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