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에도 메타버스(가상세계) 소재를 활용한 작품이 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 ‘늑대아이’를 연출한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최신작 ‘용과 주근깨 공주’(2021)는 사고로 엄마를 잃은 뒤 더 이상 노래를 할 수 없게 된 주인공 ‘스즈’가 가상 세계 ‘U’에 접속하며 만나는 신비로운 경험을 그린다. 제74회 칸영화제 ‘칸 프리미어’ 부문에 공식 초청됐다.
호소다 마모루는 일찍이 ‘시간을 달리는 소녀’(2006), ‘썸머워즈’(2009)를 통해 시공간을 초월하는 가상 세계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 왔다. ‘용과 주근깨 공주’가 더욱 사람들 기대를 모은 이유다. 영화 내 등장하는 ‘보디 셰어링’(생체정보 연동 과정) 연출을 위해 실제 보디 셰어링 전문가 조언을 듣는 등 감독이 가상세계의 유려한 구현을 위해 힘쓴 점이 돋보인다.
영화 속 가상세계인 ‘U’는 등록 계정 50억 명을 돌파한 대규모의 인터넷 공간이다. 그 안에서 또 다른 나 ‘As’를 만들 수 있다. As에서는 현실 세계의 생체 정보와 연동(보디 셰어링)되고, 이를 통해 숨겨진 능력까지 발현할 수 있다.
주인공 스즈의 As는 스즈처럼 주근깨를 지닌 ‘벨’이다. 엄마를 잃기 전 뛰어난 노래 실력을 지녔던 스즈는 벨이 되어 다시 노래한다. 벨은 단숨에 2,000만 팔로워를 모으며 U의 인기 스타로 거듭난다. 세계적 이목이 집중된 벨의 콘서트 날, 공연장에 의문의 ‘용’이 등장한다. 공연장은 U를 수호한다고 알려진 ‘저스티스'와 용의 격렬한 전투로 아수라장이 된다. 사람들은 용의 진짜 모습을 밝혀야 한다며 현실 세계에서 용을 색출하려 든다. 이때 벨은 어두워 보이는 용에 대한 호기심에 그를 직접 찾아 나선다.
다른 As들은 용의 정체에 대해 근거 없이 추측하며 ‘사이버 불링’을 서슴지 않는다. U를 수호한다고 알려진 저스티스는 정의라는 이름 아래 폭력을 일삼는다. 왠지 모르게 익숙한 광경이다. U를 유토피아가 아닌, 현실 세계의 어두운 면을 그대로 지닌 곳으로 표현한 점이 독특하면서도 씁쓸하다.
그러나 보는 내내 눈과 귀가 즐겁다. 영화는 독특한 설정 덕에 관객에게 시공간 제약 없이 다채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U의 최고 인기 가수 벨은 공중에서 고래를 타며 노래한다. 현실 세계에서는 불가능한 화려한 무대 효과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꿈에서나 등장할 법한 몽환적 분위기의 음악이 극에 몰입을 더했다. OST인 'millennium parade'는 유튜브에서 4,300만 회 조회수를 돌파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다른 As들에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를 건네는 벨의 무대는 신비로운 뮤지컬과 같다.
U의 볼거리가 눈에 띄게 화려하고 다양해서일까. 현실 세계와의 이야기 개연성은 아쉽다. 벨은 용을 비난하는 AS들을 등지고 그가 사는 성에 혼자 찾아간다. 벨은 용의 아픔에 공감하고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용을 돕는다. 이 과정에서 벨(스즈)의 감정 변화는 찾아보기 어렵다. 시노부와의 로맨스 아닌 로맨스는 이야기 흐름을 따라가는데 혼란을 주기도 한다. 감독의 전작들이 섬세한 표현력을 강점으로 지닌다는 걸 고려하면 아쉬움은 더욱 커진다.
개연성에 대한 아쉬움은 있지만 스즈의 감동적인 성장 서사임은 틀림없다. 스즈는 물가에서 한 아이를 살리려고 스스로 희생한 자신의 엄마를 원망했다. 하지만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스즈는 엄마의 희생을 이해하고 성장한다. 감독은 ‘메타버스’라는 소재를 활용해 뻔한 얘기를 뻔하지 않게 극적으로 그렸다. 현실에서 벗어나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뮤지컬을 즐길 수 있는 건 덤이다.
'자, 세상을 바꿉시다.'
영화의 마지막 대사다. 벨은 용의 세계를 바꿨다.
◆시식평 - 메타버스 속 환상적인 뮤지컬 위 성장 스토리 한 스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