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 가격을 올리지 않는 대신 추가 단무지는 안 드립니다.”
취업준비생 박 모(27)씨가 얼마 전 자주 가던 김밥가게에서 본 안내문이다. 물가 상승에도 김밥 가격을 올리지 않는 대신 포장할 때 따로 넣어주던 단무지를 주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박 씨는 “음식 양은 줄었지만 김밥 가격이 그대로니 나쁘지 않은 방안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식재료를 비롯해 전방위적인 물가 상승이 이어지면서 상품의 가격을 올리지 않는 대신 양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이 곳곳에서 확산되고 있다. 음식에 들어가는 재료의 양이나 종류를 줄이거나 레시피를 비싼 재료에서 저렴한 재료로 변경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일부 자영업자들은 손님 눈치보느라 가격을 인상을 망설이며 슈링크플레이션에 해당하는 방식으로 물가 급등에 고육지책으로 대응하고 있다. 서울 동대문구의 한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A(23)씨는 “사장님이 가격 인상보다는 우선적으로 음식의 양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A씨는 “베이컨 한 줄이 다 들어갔지만 이제는 반 줄만 넣고 있다”면서 “베이컨과 버섯이 들어가는 파스타는 상대적으로 단가가 낮은 토마토 파스타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사장님이 가격을 올리려니 손님 눈치가 보여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자영업자들이 많이 이용하는 ‘아프니까 사장이다’ 등 온라인 카페에도 쌈채소를 푸짐하게 제공하기 힘들다거나 메뉴 가격 인상을 고민하는 자영업자들의 고민이 이어지고 있다. 한 자영업자는 “다른 집에서 족발을 시켜보니 배추 3장에 깻잎 5장 밖에 안 들어있었다”면서 “상추값이 올라서 제공이 힘들면 공지라도 해야 하지 않나 싶다”고 적었다. 다른 자영업자들도 “채솟값이 너무 올라 쌈채소를 추가하면 추가금을 받아야 할 지 고민”이라고 밝혔다.
한국소비자원 가격 포털사이트 ‘참가격’에 따르면 상추값은 100g 당 2,580원으로 지난해 같은 달 1,131원에서 1,449원 올라 가격이 두 배 이상 뛰었다. 지난달 상추값이 100g 당 1,740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한 달 만에도 840원 급등했다. 에너지·원자재 가격과 외식 등 서비스 가격이 계속 오르면서 6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작년 같은 달보다 6.0% 올랐다. 외환위기였던 1998년 11월(6.8%) 이후 23년 7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고객들도 메뉴의 양과 토핑의 가짓수가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몸으로 체험하고 있다. 샐러드를 자주 구매해 이용하는 대학생 윤 모(25)씨는 “항상 가던 가게에서 오랜만에 샐러드를 구매했는데 양과 토핑 가짓수가 줄어 놀랐다”고 말했다.
가격이 오르는 것과 달리 상품의 양이 줄어드는 슈링크플레이션은 소비자가 변화를 즉각적으로 인지하기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전문가들은 슈링크플레이션의 경우 소비자들의 저항감은 가격 인상보다 적지만 소비 이후 공급자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가격이 오르면 소비자가 즉각적으로 저항감을 느끼지만 슈링크플레이션은 가격이 오르지 않으니 안도감을 가질 수 있다”며 “하지만 소비 이후 불편함을 느끼기 쉽고 공급자의 진정성에 대한 불신이 커진다”고 지적했다.
◇슈링크플레이션=슈링크(shrink·줄이다)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 제품 가격은 그대로 둔 채 제품의 크기 및 중량을 줄이거나 품질을 낮춰 간접적으로 가격 인상 효과를 거두는 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