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맨발


- 문태준


어물전 개조개 한 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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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

아- 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

아- 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





맨발이라도 돌아갈 집은 있었던 것이다. 딸깍 닫아걸면 혼자 흐느껴도 울음이 안 새는 캄캄한 단칸방이 있었던 것이다. 비좁아서가 아니라 열대야를 피해 마루 끝에 내놓은 발목이었을 것이다. 사고팔 수 없도록 몸과 집이 연결된 1인1주택제도가 진화의 과정에서 확립되었을 것이다. 탁발을 다녀도 노숙은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가난해 보여도 영롱한 진주를 품고 있을지 모른다. 집이 있다고 슬픔이 없을 리 없다. 우리는 상대에게서 자기 슬픔을 발견하고 운다. 개조개의 당면한 불행은 시린 맨발보다 뜨거운 연탄구이 석쇠일 것이다.

-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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